스매시 히즈 카메라(Smash His Camera)
- 감독
- 레온 개스트
- 제작년도
- 2010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기억을 잃은 전직첩보원은 자신의 이름 하나와 의지할 수 있는 여자 친구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건들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도망이고 회피였지만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꿈틀대는 그에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느 밤 스멀스멀 찾아온 기억의 잔재만 아니었다면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걸 잊은 줄 알았던 그에게 떠오른 아픈 과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임무 중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들이 조각조각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찾아온 것이다. 반복되는 악몽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자신이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진즉 알았지만 막상 그것을 감당하기에 그의 상처는 아직 다 치유되지 못했다. 겨우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 서려고 용기를 가질 무렵, 불쑥 나타난 그들은 여자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이름 하나를 걸고 그동안 도망쳐온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긴 속죄의 여정이 될 그 길을 막는 것들은 모조리 파괴되고 처치될 것이다. 누구도 용서해주지 않겠지만, 또 용서받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이 될 테지만,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거침없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았으니까. 그는 더 이상 제이슨 본이 아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데이비드 웹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이 될 것이다. ‘본’ 3부작 ‘본’ 시리즈는 2000년대 액션 영화의 지형도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자신의 원형이자 근본이었던 007마저 시리즈를 새로 쇄신시킬 만큼, 이 작지만 영리한 첩보액션물은 3부작을 통해 완벽하게 반(反)영웅의 신화이자 네오 스파이물의 장대한 모험담을 완결지었다. 로버트 러들럼의 인기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가져온 건 콘셉트와 캐릭터뿐, 현재라는 시공간에 맞게 재창조돼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고 강력한 첩보물로 탈바꿈했다. 애초 브래드 피드와 매튜 매커너히에게 타이틀 롤을 맡기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확정된 건 액션 스타와는 거리가 먼 범생 타입의 맷 데이먼이었다. 이에 맞춰 예산도 그리 크지 않은 6천만 달러로 책정되었고, 독립영화의 신성이었던 더그 라이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제작비 대비 두 배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슬리피 히트작이 되었고, 다음 해 렌탈 시장에서도 선전하면서 빠르게 속편 < 본 슈프리머시 >가 기획되었다. 더그 라이먼이 제작으로 물러서며 감독에 오른 이는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폴 그린그래스였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 블러디 선데이 >로 이제 막 자신의 스타일을 발현한 상태였다. 이미 스태디 캠의 활용과 각 샷 당 평균 4초가 넘어가지 않았던 짧고 빠른 감각적인 영상으로 호응을 얻었던 전작이었지만,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에 한 발 더 나가 상업영화에선 잘 시도되지 않았던 핸드헬드 촬영에 각 샷 당 평균 1.9초라는 초필살 쪼개기 편집으로 속도감과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다. <본 슈프리머시>는 전작보다 나은, 그리고 마지막 편을 잇는 중요한 가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영리한 속편의 길을 착실히 밟았다. 감독이 교체되면서 몇몇 스태프들의 변동도 눈에 띄는데, 전작과 흐름을 이어줄 핵심 멤버들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켰다. 각본의 토니 길로이와 촬영의 올리버 리드, 그리고 시리즈 내내 음악을 담당한 존 파웰이 그들이다. 196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존 파웰은 트리니티 음악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록과 재즈, 클래식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졸업하며 영화음악가 패트릭 도일의 어시스턴트를 하며 비로소 영상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5년 광고와 TV물 작업을 하던 그는 한스 짐머의 눈에 띄게 되며 1997년 < 페이스 오프 >로 전격적으로 극영화에 데뷔하였다. 여기서 짐머보다도 더 짐머다운 액션 스코어를 펼쳐 보인 파웰은 이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와 손잡고 드림웍스의 초기 애니메이션 음악들(< 개미 >, < 치킨 런 >, < 슈렉 > 등)을 담당하며 자신의 발판을 넓혔으며, 액션과 코미디,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왕성한 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드림웍스와 디즈니 외에 소니 계열의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와 유니버설 계열의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까지 애니메이션 빅4를 넘나들며 음악을 과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도의 도를 따지기 전에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이기도 하다. 2010년 < 드래곤 길들이기 >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첫 지명 되었고, 그 다음해 < 나잇&데이 >를 끝으로 실사를 떠나 지금은 애니메이션 음악에 올 인하고 있다. 존 파웰과 그의 작품들 액션영화 음악으로 입봉한 작곡가답게 존 파웰은 ‘본’ 시리즈에서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켜 발휘했다. 이미 <페이스 오프>와 < 칠 팩터 >, < 디-톡스 > 등을 통해 짐머 스타일의 액션 스코어를 재해석한 바 있기에 그는 새로 맡은 첩보 스릴러에서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공고히 다지려 하는데, 두텁게 중첩되는 미니멀한 현악 오스티나토를 바탕삼아 감각적인 일렉트로니카의 색채를 입혀 묘한 트랜스 상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듣기 좋은 테마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철저히 리듬과 루프에 의존하는 큐들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의 이미지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엠비언트에 가까운 과도한 효과와 일렉트릭이 점철된 날카로운 사운드, 둔중한 베이스와 타악의 울림은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며 절반에 가까운 성공에 그치고 마는데, < 본 아이덴티티 >의 그런 실패를 발판 삼아 심기일전한 <본 슈프리머시>에선 전혀 다른 완성형의 사운드를 선사한다. 기억을 모두 잃은 채 기계처럼 반응하는 신체에 당황하던 첩보원 본에게 속편에선 보다 인간적인 고뇌와 속죄의 의미를 부여하듯, 전면에 나선 일렉트로니카 믹싱을 줄이고 현악 오스티나토가 주도권을 잡으며 보다 풍성하고 위용 있는 사운드로 인간적인 감정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인디언 콩가 드럼 같은 라이브 퍼커션을 선호하며 보다 울림은 깊어졌고 묵직함을 갖게 됐다. 여전히 희미한 주제부를 들려주는 바순은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의 심정을 대변하며, 상승과 하강을 빠르게 반복하는 스트링의 배치는 쳇바퀴 도는 자신의 상황과 정부 간의 작전을 상징하듯 의미심장하게 진행된다. <본 아이덴티티> 이후 < 이탈리안 잡 >과 < 페이첵 >을 거치며 보다 발전된 그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본 슈프리머시>는 2000년대 액션 스코어의 진화이자 진보이다. Jason Bourne 솔로로 거의 쓰이지 않는 바순이 본의 메인 모티브를 살짝 연주하고는 바로 이국적인 퍼커션 리듬과 낭만적인 기타 사운드로 이어지는 ‘Goa’는 영화 중 가장 특별하고 도드라지는 큐로, 도입부의 평온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도는 인도에서의 일상을 스케치한다. 이후 영화상, 아니 시리즈 상 그런 감정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인데, 그것이 뒤의 액션 큐들을 더욱 파워풀하고 질주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첩보물답게 감정을 배제한 채 현상만 묘사하듯 담아내는 긴장감 넘치는 큐들이 일품인데, 빠른 샷들의 점프와 더블을 받아주는 규칙적인 비트감과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현악 오스티나토는 가히 집중도를 높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독적이고 몽롱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Gathering Data’, ‘To The Roof’나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등이 대표적인 트랙으로 특히 ‘To The Roof’는 점층과 증폭이란 단어가 어떤 것인지 몸소 깨우치게 만든다.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단조로운 일렉 비트 위로 촘촘하게 현악으로 층층이 쌓아나가는 중첩되는 사운드의 무게감은 본의 신중하면서도 집요한 추적과 맞물리며 환상적인 스릴러 음악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물론 액션 큐도 빠질 수 없다. 인도 추격전을 담은 ‘The Drop’과 베를린의 추격씬에 흐르던 ‘Berlin Foot Chase’,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모스크바 시퀀스의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는 아드레날린 과다분출에 한몫하는 스코어들이다. 특히 시퀀스 자체에 딱 맞춰 계산되고 재단된 ‘Moscow Wind Up’와 ‘Bim Bam Smash’의 일련의 흐름은 찬탄을 불러일으키는데, 하이라이트에 어울리는 최정점의 효과를 발휘한다. 제목이 주는 포스만큼이나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사운드의 ‘Bim Bam Smash’는 사정없이 몰아치고 부딪히고 박아대는 큐로 영상과 물아일체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스피드와 박력이 가히 액션 스코어의 미학으로 불릴만하다. 그간 거의 들리지 않았던 혼과 브라스까지 합세해 시종일관 쿵쾅대며 카 체이스 씬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리고 충돌!! 찾아오는 정적은 압도적인 사운드와 현실감 넘치는 영상, 딱 맞는 스코어의 절묘한 조합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장면이다. car chasing 시리즈의 마지막엔 언제나 이 노래가 나온다. 모비의 "Extreme Ways". 싸이렌처럼 울리는 도입부가 마치 제이슨 본의 무서운 위력을 알리는 경고음 같다. 허나 실상은 막다른 길에 치달은 자의 고독과 슬픔에 대한 경고음인지 모른다. 시리즈 내내 관통하는 모비의 음울하고 떨리는 음색이 남은 여운과 잔향을 짙게 만든다. 제이슨 본을 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내의 절규와 질주를 담아낸 비가인 셈이다. Track List 1. Goa 2. The Drop 3. Funeral Pyre 4. Gathering Data 5. Nach Detschland 6. To The Roof 7. New Memories 8. Berlin Foot Chase 9. Alexander Platz / Abbotts Confesses 10. Moscow Wind Up 11. Bim Bam Smash 12. Atonement 13. "Extreme Ways"-Mo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