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 2
- 감독
- 대니 팽, 옥시드 팽 천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곽부성, 정이건, 임달화, 사정봉, 채탁연, 임설, 탕연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90년대 말. 영화적 테크놀로지가 극대화되자 할리우드엔 다시 재난영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재난물이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재미였다면 90년대 말에 불어 닥친 재난물의 주인공은 단연 비주얼이었다. 가공할만한 시각효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으로 그 어떤 아날로그 효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영상과 소리를 얻게 되자 재난영화는 날개를 달았다. 1995년 역사에 기록된 우주적 재난을 다룬 < 아폴로 13 >을 필두로, 96년엔 토네이도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 < 트위스터 >와 람보가 터널로 들어간 < 데이라잇 >이, 97년엔 두 편의 화산 영화 < 볼케이노 >와 < 단테스 피크 >, 그리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쓴 < 타이타닉 >이 개봉됐다. 98년엔 소행성이 두 번이나 지구를 찾아 < 딥 임팩트 >와 < 아마겟돈 >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폭우를 다룬 < 하드 레인 >과 산불을 다룬 < 파이어 스톰 >이 제작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유행에 불을 지피고 확실한 인장을 찍은 건 1996년 전미/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빛나는, 외계인 침공의 SF 재난영화 < 인디펜던스 데이 >였다. 90년대 각종 재난영화들 영화는 크게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7월 2일,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7월 3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최종 결전에 나서는 7월 4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윈 앨런표 고전 재난물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팍스아메리카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날짜와 제목에, 외계인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조종사와 닭살 돋는 연설을 늘어놓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미국 대통령, 맥OS와 호환되는 외계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음모론 로스웰사건까지 난입하며 황당무계하고 게으른 설정과 오글거리는 캐릭터들로 재난 영화에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희생정신과 감동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멍청하고 한심한 영화, 미 패권주의 영화로 낙인찍히고 놀림 받는다. 그러나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화끈하게 터져나가는 백악관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하늘을 뒤덮는 장관의 거대 우주선과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공중전, 도시의 아비규환 등을 담은 다양한 볼거리로 단순한 플롯과 바보 같은 설정을 마취시키며, 미국에서만 3억 불, 전 세계적으로 8억 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지구파괴 미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그는 < 투모로우 >와 < 2012 >에 이르며 더 강렬하고 큰 스케일로 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애국심을 잔뜩 고취시키는 장엄한 음악으로 영화 보는 동안이나마 논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데이비드 아놀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아놀드 1993년 학창시절 친했던 대니 캐논 감독의 요청으로 < 영 아메리칸 >의 음악을 맡아 데뷔한 데이비드 아놀드는 그 사운드트랙에서 같이 작업한 브욕의 ‘Play Dead’로 UK차트 12위까지 오르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탁월한 멜로디 솜씨를 주목한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 콤비는 자신들의 첫 번째 협업작 < 스타게이트 >를 위해 데이비드 아놀드를 픽업했고, 마치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 스타워즈 >를 섞은 듯한 이국적이고 장엄한 에픽 사운드로 찬사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실패한 서부극이지만 역시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스코어로 숨은 걸작 사운드트랙이란 평을 받은 < 라스트 도그맨 >을 거쳐 다시 에머리히/데블린 콤비와 뭉친 <인디펜던스 데이>은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극찬을 안기며 그를 성공적으로 메이저에 안착시켰다. 단 네 작품 만에, 3년이란 단기간에 그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어 18번째 007시리즈 < 네버 다이 > 음악에 전격적으로 기용, 존 배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전통적인 사운드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훌륭하게 메꿨으며, 비록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음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 고질라 >를 담당해 ‘사이즈의 영화음악’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던 걸까. 그는 그 이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5편의 007 시리즈와 존 싱글턴과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의 유대, 에드가 라이트 같은 젊은 피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 지평을 넓혔지만, 데뷔 초기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임팩트에 비하면 현재의 필모가 다소 주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최근 BBC 드라마 < 셜록 >의 성공과 30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 음악 감독을 맡으며 역량을 다시금 뽐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의 규범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최대한 신디와 일렉트릭 악기를 배제한 채 100인조에 이르는 풀 오케스트라와 46인조의 코러스를 대동해 압도적인 고전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펼쳐 보인다. 마치 존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70년대 재난물과 80년대 블록버스터의 기운을 모두 한데 합쳐놓은 이 엄청난 스코어의 박력은 지구를 박살 내는데 혈안이 된 에머리히의 비주얼적 야심에 못지않다. 그는 특히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3개의 인상적인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인간과 외계인들 간의 혈전에 집중하는데, 가장 귀에 쉽게 들리는 건 <인디펜던스 데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테마, 애국심을 팍팍 고취시키는 영웅적인 팡파르다. 승전보를 알리는 듯 희망적이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곡조는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을 때 얇고 높은 피콜로와 마칭 스네어를 곁들어 군악대스러운 편곡으로도 사용되는데, 브라스와 혼, 퍼커션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격의 나팔을 힘차게 불던 과거 전쟁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로부터 전쟁영화음악에 있어 말콤 아놀드나 존 에디슨, 론 굿윈과 벤자민 프랑켈 등 걸출한 작곡가가 많았던 영국이기에 그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두 번째 모티브 세 번째 모티브 두 번째 모티브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연을 풀어내던 멜로드라마적인 테마로 스트링이 주가 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에 여백과 여운을 불어넣는다. 종종 숭고하고 거룩한 합창대의 목소리를 빌어 더 강력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주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팡파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거나 다양하게 파생·변주돼 가족애 및 캐릭터들의 상호 연대감을 복돋아 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모티브는 외계인 침공을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혼돈의 사운드로 울부짖는 혼과 질주하는 브라스를 전면에 배치해 압도적인 힘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정했다. 마치 존 윌리엄스의 ‘임페리얼 마치’나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듣는 듯 고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압감을 선사하는데, 다양한 퍼커션과 드럼을 활용해 침공에 대한 긴박감과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큐이기도 하다. 편곡자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스 도드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으로 이 3개의 주된 선율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입체적인 깊이와 실감 나는 무게감을 던져주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이 사운드트랙으로 그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사운드트랙은 96년 영화 개봉에 맞춰 BMG에서 발매되었지만 온전한 음원을 다 담은 건 아니었다.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2010년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5,000매 한정으로 CD 2장, 총 130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전판을 발매했다. 데뷔 초기 번뜩이던 데이비드 아놀드의 위력적인 사운드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차기작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일로 개봉일마저 공개한 상태다. 2000년 <패트리어트> 부터 공동 작업이 불발된 이후 에머리히는 같은 독일 태생의 영화음악가 해롤드 클로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부디 제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에선 그들이 다시 재회하길 기대해본다. Victory Track List DISC ONE 1.1969: We Came In Peace 2.S.E.T.I.-Radio Signal 3.Mysto Bridge/Satellite Collision/ Destroyers Disengage/Russell Casse-Pilot 4.First Sighting/AWAC·Attack 5.The Darkest Day 6.Moving Day/Countdown 7.Cancelled Leave 8.Commence Lift-off/Parabolic Indenwhat? 9.Evacuation 10.Firestorm 11.Aftermath 12.Base Attack 13.Marilyn Found 14.Area 51/The Big Tamale/Formaldehyde Freak Show 15.El Toro Destroyed 16.Slimey Wakes Up 17.Target Remains/Rescue 18.The Death of Marilyn/Dad’s A?Genius 19.Alien Ship Powers Up 20.International Code 21.Wedding 22.The President’s Speech DISC TWO 1.Just In Case/Attacker Fires Up 2.The Launch Tunnel/Mutha Ship/Virus Uploaded 3.Hide!/Russell’s Packin’ (The Day We Fight Back) 4.He Did It 5.Jolly Roger 6.Victory 7.End Credits BONUS TRACKS 8.1969: We Came In Peace ?Alt. 9. Destroyers Disengage (No Choir) 10. Cancelled Leave -Alt. 11. Commence Lift-off -Alt. 12. Base Attack (Segment-Film Version) 13. Marilyn Found (No Choir) 14. Target Remains/Rescue -Alt. 15. Dad’s A?Genius -Alt. 16. Attacker Fires Up (Original Version-No Choir) 17. Virus Uploaded -Alt. 18. The Day We Fight Back (Original Version) 19.Jolly Roger -Alt. 20. End Credits (Segment, No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