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저린 드림: The Video Dream Mixes
- 제작년도
- 1996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크리스마스를 앞둔 싱글들의 푸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할 거 없이 비슷한 모양이다. 시카고 철도국 개찰구에서 일하는 루시에게도 다가올 연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직을 떠맡게 되었고,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건 고양이 한 마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낙이 있다면 매일 아침 지나치는 어느 잘 생긴 남자만 바라보는 것뿐인데, 그나마도 짝사랑이라 말 한번 못 붙여본 채 전전긍긍 앓고 있다. 그런 그녀를 하늘도 불쌍히 여긴 걸까. 연휴 아침 불량배들에게 떠밀려 철로로 떨어지는 남자를 보게 된 루시는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 그를 구하게 된다. 아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그러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문안조차 허락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망상(!) 하나가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결혼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귀신같이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면회를 허가하고, 그때 마침 나타난 남자의 가족들에게 루시를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아뿔사! 이를 어째. 솔직히 아니라고 고백하려 하지만 남자네 할머니가 심장마비 전력이 있어 더 이상의 충격은 안 된다며 겁을 준다. 더욱이 뒤늦게 나타난 남자의 동생은 그녀가 형 타입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그녀를 의심한다. 아니 솔직해지자. 그는 형수가 될 이 여자가 마음에 든다. 그녀도 그가 싫지 않다. 이게 모두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산드라 불록과 빌 풀먼 1994년 < 스피드 >로 일약 스타가 된 산드라 블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 달달한 홀리데이 시즌용 로맨틱 코미디는 재밌게도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1995년 4월에 개봉되었다. 그러고도 전 세계적으로 2억불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며 그해 깜짝 히트작이 되었다. 남자 주연을 맡은 빌 풀만은 미소가 멋진 배우였지만 당시 상업적인 필모그래피와는 거리가 멀었고, 제작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1,700만 달러짜리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피터 갤러거나 피터 보일, 잭 워든과 글리니스 존스 등 뛰어난 조역진들의 포진과 대작들을 피해 한참 연애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비수기 봄철에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성공했다.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로 생애 최초 골든 글로브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감독 존 터틀타웁은 전작 < 쿨러닝 >으로 주목받기 시작해서 경력의 대부분을 디즈니에서 보낸 인물로, 그 영향 때문인지 주로 휴먼 코미디에서 장기를 보여 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그런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유쾌한 소동극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맥을 충실히 따르며 감미롭고 착한 서민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행복한 이야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빠져서는 곤란, 80년대 중반부터 많은 종류의 할리우드 코미디를 책임졌던 랜디 에델만이 크레딧에 올라 상큼 유쾌 발랄 3종 세트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랜디 에델만 Randy Edelman 지금은 영화음악가로 정평이 났지만, 사실 랜디 에델만은 70년대 영미권 팝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싱어 송 라이터였다. 신시내티 음악대학 졸업 후 소울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의 킹 레코드 편곡자로 들어가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동시에 당대 히트 가수였던 카펜터스와 배리 매닐로우, 프랭크 자파,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와 올리비아 뉴톤 존 등에게 곡을 써주며 유명해졌다. 자신 또한 72년부터 79년까지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수준급의 AOR(Adult Oriented Rock)을 들려줬으며, 천재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인 재키 데샤논과 결혼하는 등 안팎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몰두한 그는 85년부터 92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TV시리즈 < 맥가이버 >의 테마로 주가 폭등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일련의 코미디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코미디 외에 액션과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했으며, 무엇보다 대중음악에서 탄탄히 다져진 매력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라인에 깔끔하고 인상적인 편곡으로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 라스트 모히칸 >이나 < 게티스버그 >, < 드래곤 하트 > 등과 같은 스코어들은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인기리에 사용되며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랜디 에델만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영화답게 본편 내 캐럴이나 홀리데이 시즌 송이 많이 삽입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로지 랜디 에델만의 스코어만 떠오를 정도로 그가 맡은 음악의 위력은 대단하다. 풀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기보다 가벼운 팝적인 어프로치의 컨템포러리 스타일로 유쾌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무엇보다 귀에 쏙 파고드는 깜찍한 멜로디의 테마들이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린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테마는 모두 세 곡으로 친절하게도 사운드트랙 1, 2, 3번에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다. 제일 먼저 활력 넘치는 건반에 리드미컬한 스윙감이 결합돼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잡는 ‘Opening’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엉뚱하고 의뭉스러운 유쾌함을 선사하는 ‘Peter’s Family’, 그리고 플루트와 피아노로 가슴 시린 외로움과 고독을 스르르 녹여주는 따뜻한 선율의 ‘Love Theme’가 바로 그들이다. 나머지는 이들 테마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거나 합쳐지면서 색다른 분위기와 긴장, 드라마를 생성해낸다. 스트링과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과 역동적인 사건들을 묘사해 가는데,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랜디 에델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링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외에도 사건이 벌어지는 마법의 순간을 담아낸 ‘An Untimely Accident’에선 변화무쌍한 다이내믹함을, 루시의 플로렌스에 대한 꿈이 담긴 ‘Dreaming of Florence’에선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선보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에 삽입곡들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데, 이는 영화 개봉 시기가 봄철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관련 곡들을 소개해보면 초반 루시가 홀로 궁상맞게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때 블루지한 코코 테일러의 ‘Merry Merry Christmas’가 흐르고 있고, 가족의 초대를 받아 집 밖에서 망설이다 들어갈 때는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Winter Wonderland’가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그 뒤를 이어서 가족사진 찍을 때도 역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버전의 유명한 시즌 송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가 나지막이 깔리며, 가족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장면에선 엘라 피츠제럴드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를 불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연 파티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두 남녀를 위해 Li’ll Ed and The Blues Imperials의 신명나는 로큰롤 ‘I’m your Santa’가 배경에 깔린다. 그러나 이런 노래들을 모두 지워버리는 랜디 에델만의 로맨틱한 스코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로, 싸늘해진 겨울 가족과 연인의 온기를 되찾게 만드는 반가운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이후 그는 < 식스 데이 세븐 나잇 >, <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 < 27번의 결혼 리허설 >, < 프로포즈 데이 > 등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Opening Track List 1. Opening 2. Peter's Family 3. Love Theme 4. An Untimely Accident 5. Phone Tag 6. Dreaming of Florence 7. He's Alive 8. Riverside Walk 9. A Testacular Situation 10. Jack and Lucy 11. Leave It to Sol 12. The Dream is Over 13. Sound Advice 14. Tear Jerking Tale 15. Bumpy Encounter 16. A Happ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