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 감독
- 알버트 브룩스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샤론 스톤, 앤디 맥도웰, 알버트 브룩스, 제프 브리지스, 롭 라이너, 제임스 카메론,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초등학생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간 방송반에서 나는 영상 송출 담당이었다. 아나운서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여자애들은 전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방송반에 들어갔다). 영상 송출 담당이란 조회 시간에 타이밍에 맞춰 애국가 제창 화면을 틀고, 교가 비디오를 틀고, 다시 화면을 전환해 강단을 비추는 일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방송실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던 기억. 고등학생 때는 영상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집에서 안 쓰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영상을 찍었고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나름 성과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가서도 영상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내방송국도 아니고 영화동아리도 아닌 영상제작이라는 모호한 분과만을 노렸던 행보에 대해서는 늘 약간의 해명이 필요했다. 영화는 멀고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반면, 영상은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대상처럼 친밀하고 가까웠다. 영화를 의식적으로 챙겨보거나 영화 비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러니까 영상제작 활동을 했던 시기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내내 의문이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단 찍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2. 글 쓰는 사람의 손 위에서 시간은,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으로 대체된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밀려나는 리듬이 있을 뿐. 이건 마감의 불안으로 또 다른 층위의 불안을 지우는 일. 불안으로 불안을 다시 쓰는 일.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주춤거림 없이 글쓰기가 어렵다. 그건 글쓰기에 가로막힌 사람이 쓰던 원고를 거칠게 구긴 뒤 새 종이를 꺼내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는 착각을 통해서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느끼는 아주 상투적인 장면인 동시에, 대부분의 내 글쓰기가 출발하는 장소다. 눈치 챘겠지만, 글을 시작하기 위해 쓰나 마나한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자꾸만 미루게 된다. 곤란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만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나’여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글은 불순하다고 말해야 한다. 종종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아래에서(Under The Table-‘불법적인 일’을 뜻하는 관용 표현)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종종 영화 전문 매체에 글을 쓰고, 힘을 북돋아주고 싶은 어떤 영화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을 따질 새도 없이 글이 공적인 경로로 유통된다는 사실은 특권적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줄곧 이런 불안이 따라붙었다. 왜 정녕 영화여야만 할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읽으며 이보라 평론가가 쓴 구절에서 멈칫했던 기억도 난다.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만 할 수 있나?” *주1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비평철학』에서 저자는 기술과 해석이 서로 다른 작업이며 기술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한 증언인 반면, 해석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해석은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는 미완의 작업이다. *주2 어떤 것이 명백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공통의 합의들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새로운 이야기조차 사실은 통속적인 것의 배후에 있다는 깨달음이 글쓰기의 날카로운 기쁨이라면, 나는 그 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매혹적인 동시에 끝나지 않는 악몽 같다. 불만족스러운 마감을 했다는 불안이 들 때면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 *주3 (일명 ‘데이비드 매닝 사건’)의 유령이 나타난다. 이 자리는 언제 백지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허구가 아닐까. 그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어느 날 꿈에서는 내가 데이비드 매닝으로 판명 난다. 그리고 깨어나면, …이 세계는 꿈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간단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4 '데이비드 매닝'의 평을 실은 영화 광고 (사진: " Dave Manning ", The Museum of Hoaxes) 3. 영화를 둘러싼 불안과 수치심, 글쓰기의 곤란함이 맞닿는 장소가 영화 비평이라는 밀실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묘연하다. 미치더라도 이들과 함께 써나가야 하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 비평을 수행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 수행성이란 현실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개입이 아니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돌입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멀지만 영상은 찍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현실이라고 감지되는 최전선을 향해 두드려보는 무모함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일단 돌입하고 나면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문제는 다음이 항상 너무 빨리, 그리고 시시각각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비평은 무언가를 걸치고 말하는 작업이기에 제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비평은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으며 여전히 창조적인 활동에 가깝다. 두 진술은 양립 가능하다. 나는 비평과 픽션의 일치를 소망하고, 그런 소망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 속에서 쓴다. 오히려 나를 쓰게끔 만드는 것은 그런 오래된 불가능성이다. 2년 전 언파운디드랩의 초대를 받아 비평과 픽션의 상호 침투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비평과 픽션을 이어주는 가능한 다리들을 다소 산만하게나마 떠올려보고자 했는데, 당시에는 비평의 픽션을 비평의 형식(적 다양성)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비평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무용한 일을 벌이고 매번 실패하지만 형식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비평의 새로움이란(물론 매우 드문 확률로 형식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품과 그것이 놓이거나 영향을 미치는 현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평가의 수행성은 ‘담론 만들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 서동진은 한국단편영화 섹션의 특정 경향을 분류하며 영화들이 특정한 문화적 부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쓴다.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나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영화 찍기가 갖는 수행적 측면에 주목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이미 만들어진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재현된 이야기와 이미지의 언어적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을 헤아리려는 것과, 영화를 하나의 수행적 언어, 즉 일종의 ‘하기(doing)’로 간주하고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다른 접근이다. *주5 서동진은 이 글에서 영화를 특정한 주제나 담론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단편영화 찍기라는 문화적 수행성과 그 활동의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제작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감독이라는 텍스트와의 관계를 특권화하는 용어에 불신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6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작품에 대한 논의는 그것의 주제나 의미, 의도 같은 것들에 의해 휩쓸려가기 쉽다. 반면 영화를 활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영화를 이미 제작된 것이라는 한정된 텍스트가 아닌, 감독과 작품 사이에 놓인 관계의 완고함을 슬며시 흔들며 제작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고 구성되는지를 조망하게 하는 다층적인 텍스트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의 수행성이 공동체의 발견과 자기 구성의 쾌락에 있다면 이것은 비평의 수행성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나 영화 비평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논할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을 둘러싼 믿음이나 애정을 그러모으면서 특정 집단을 호명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수행성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성립하는 것과 달리 비평은 단순히 ‘나’를 등장시키거나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비평적 효용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비평은 영화를 완결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작품과 나’를 연루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를 현실을 향해 연장시킬 수 있다. 비평은 담론의 부피를 가지지 않은 것,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주변부적인 것, 일상과 비슷한 층위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다시 응시하자고 청할 수 있다. 비평의 수행성은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의 속성을 재규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차원에서 작품을 현실과 매개하는 일은 분명 픽션의 기능을 지닌다. 이는 ‘나’라는 주어를 등장시킬 때만 어떤 활동이 수행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선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운용하는 것이 비평의 수행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 비평가의 일상이 식별 불가능한 상태로 용해되어 있다. 영화의 수행성을 중점에 둔다는 것은 감독의 지위를 특권화하는 관점으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때 더욱 잘 보이게 되는 작품들의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덜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 조악한 영화, 그럼에도 사로잡는 영화. 카메라를 다루는 치기 어린 몸짓에서 순간적으로 묻어나는 광채가 있다면 그를 이야기해 봄 직한 것으로 부풀리고, 영화의 담론적 영토를 재구성하는 것은 비평가의 수행이 아닐까? 비슷한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청하고 싶은 것은 청소년 제작 영화 들이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영화들과 영상 제작 문화를 단지 아마추어적인 것이나 미성숙한 단계로 한정시키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이 수치스럽다면, 수치심이라는 바로 앞에 놓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청소년 영화의 한때라는 비가시적인 기억을 담론이라는 공통의 영토로 구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청소년 영화의 스타일을 논해 볼 수도 있을까? <D-?> 중 유소라 의 < D-? >(2003)은 수험생이었던 유소라 감독이 직접 자신과 주변을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인 유소라 감독은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본인의 일상을 기록한다.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화면 안에 등장해 가상의 청중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학교생활과 가정에서의 일상, 충분히 사사롭지만 문제적일 정도로 내밀하지는 않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고3 수험생의 나날들. 입시제도에 대한 심정이나 수험생활의 고충, 장래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묻고 답하는 인터뷰는 짧은 호흡으로 리드미컬하게 쪼개어지고 재조합되면서 특정 무리의 집단적 고백으로 조성된다. 이때 아이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동급생을 바라보고 있다. 유소라는 철저하게 카메라에 매개된 존재로 등장한다. ‘셀프 카메라’라는 형식이 충분히 어떤 문법으로 자리잡지 않았던 때에 스스로와 스스로의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형식이 이미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사후적인 자리에서 그것이 최초로서 유효했을 풍경을 생생하게 가늠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당연해지거나 진부해졌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스타일화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일상의 기록이 자연스러워졌지만 2002년에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동급생들의 반응에는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유소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어서 누구도 특별히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4년 독립영화 기획전의 GV에서 유소라 감독은 학생이었던 당시 이미 영상 제작에 관해 여러 성과가 있었기에 제지를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유소라 감독은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의 붐을 이끌었던 <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이선희 외 9인, 1998)를 제작한 영파여중 방송반의 일원이었다. 제1회 서울 YMCA 청소년영상페스티발(주제: ‘오늘, 우리의 모습: 우리의 자화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이 영화는 실제 일진회 무리였던 학생들을 연기자로 섭외하고 그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당사자가 직접 폭력을 재연한다는 측면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러한 작품의 분류와 계보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분한 장선우 감독의 < 나쁜 영화 >(1997)에 대한 청소년들의 응답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김종현 선생이 영파여중 방송반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지도하에 함께 제작된 것이기에 어른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의 형식은 어떤 미학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제도가 문제적인 것으로 낙인찍거나 방출시키려 하는 대상의 이야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제도와의 마찰을 일으키기 위한 사건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가 발표된 뒤 방송반 담당이었던 김종현 선생이 학교에서 퇴출당했다는 일화가 설명해 주듯. 그리고 몇 년 뒤 선생은 다시 영파여고로 복직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의 영상 제작이라는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동시에 이는 더 이상 ‘포스트 서태지 세대’가 가진 문화적인 정체성의 공유지대를 내보이는 수행성이 갖는 반격이 이전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D-?>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처럼 문제적인 아이들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수험생이 학교에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다소 위험한 장면(수업하는 장면이나 체벌하는 영상 등)을 촬영하는 데도(비록 이것이 녹화 중이라는 카메라 신호를 가리고 몰래 찍은 것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영화는 같은 학급 친구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계속 비슷한 설명을 동어 반복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 남자가 너무 궁한 나머지 담임 선생님을 보며 윤계상을 떠올린다는 지극히 소녀적인 차원에서 도발적인 고민들도 담겨있다. 영화는 수능을 두 달 넘게 앞둔 D-70부터 수능 당일을 거쳐 졸업식, 그리고 졸업 이후 대학에 입학한 정황까지 시간을 내림차순으로 충실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유소라 감독이 수험생활 당시 촬영한 푸티지를 편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이토록 사소한 내용이 정녕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의아함과 더불어 영화가 청소년 섹션인지, 성인 섹션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 영화가 졸업 이후의 시점에서 회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록을 촬영한 자가 수험생 당사자이며, 자신을 둘러싼 현장을 증언하고 있고, 카메라가 학교라는 제도의 규칙과 규율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는지 의문에 부치는 식으로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시점에서 청소년기의 기억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기를 단순히 입시라는 제도의 전환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수능이 끝나고 처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듣거나 재수를 결정하는 순간에? 졸업식 날 어설프게 화장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 어쩌면 청소년기는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시스템 내부에서 그것과의 마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하는 <D-?>는 영화의 수행성이 청소년이라는 지위와 범주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영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제작 주체의 나이가 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 영화가 바탕으로 하는 수행성의 범주에 따라 청소년 영화라는 스타일을 정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악하거나 서툰 화면이 일정 부분 청소년기 특유의 풋풋함과 열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흥했던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을까? 디지털이 보편화된 전환기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세대의 갈급함이 맞닿는 지대에서 탄생한 스타일. 특정한 영화적 실천의 계보나 아카데믹한 것을 의식하지 않(못하)고 그저 찍겠다는 충동이 자제할 길도 없이 먼저 앞서나가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교육과 창작, 반발심과 순응 사이에서 지글거리는. <D-?> 중 이우정 감독의 < 애드벌룬 >(2011)을 다시 살펴보는 게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정신없이 등교 준비를 하는 여고생의 아침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는 두 여자애의 혼란스러운 친밀함과 한밤의 일탈이라는 비일상적인 소동극으로 향한다. 아파트 옥상의 애드벌룬 안에서 술을 마시던 아이들이 질식사했고, 주인공은 운 좋게 사고를 면한다. 그러나 거기 휘말린 지봉이라 불리는 여자아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청소년기에서 영영 불가해한 추문으로 떠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도 이야기가 이미지화되는 방식이다. 2011년에 제작된 <애드벌룬>은 의도적으로 열화된 화질로 촬영되었다. 윤성호 감독은 <애드벌룬>이 ”요새 안 쓰는 베타캠(정식 명칭은 베타캠betacam 비디오 캠코더. sony에서 개발한 방송용 ENG 카메라, 설명은 필자)을 굳이 대여해 특정 시기의 스탠다드(1990년대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와 중고등학교 영상제작반의 의욕적인 과업 사이 어딘가)를 일부러 서툴게 재현한다” *주7 라고 말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 또한 캠코더로 촬영된 푸티지를 활용한다. 몰래 교실을 촬영한 듯한 영상과 함께 또래 여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을 무심하게 읊조리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이 푸티지는 사실상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는 무관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촬영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다. 이유리와 김애숙, 한혜정이 누구인지도. 오히려 영화와 상관 없어 보이는 오프닝을 영화와 접속시키는 것은 출처 미상이라는 이미지의 익명성과 화면의 질감이다. 정제되지 않은 캠코더 화면과 서사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이미지 자체의 활력, 저화질의 푸티지는 베타캠으로 촬영된 장면과 큰 낙차 없이 어우러진다. <애드벌룬>의 오프닝씬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여자 청소년기라는 특정한 시기의 혼란스러움, 잔인함, 기억과 감각에 대한 인용이다. 영화는 효정이라는 인물과 친구 지봉(지연)을 중심으로 벌어진 하루의 해프닝이라는 특정한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영화의 앞과 뒤에 기록 푸티지를 삽입해 드라마를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애드벌룬> 중 화면과 편집, 대화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 영화의 의도적인 서투름은, 윤성호의 말대로 청소년 드라마의 외피를 차용해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고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허나 이러한 고유함은 청소년 드라마의 스타일과 영상제작반 과업의 활기를 연상시킨다는 공통의 기억지대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영상제작반의 활동은 묘사되지 않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 미숙한 듯한 연출과 편집, 방송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질감은 분명 아마추어적인 활동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쩌면 뉴진스의 디토(ditto)식으로,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캠코더를 든 여자 청소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앞뒤로 삽입된 익명의 푸티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지나치게 밀접하고 실시간적인 이미지는 이것이 촬영되었을 방식의 내밀함을 은연중에 연루시킨다. 영상이 암시하는 것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관음하는 내부자적 시선의 은밀함이며, 이는 <애드벌룬>을 보는 내내 이상한 불길함으로 달라붙어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서브 장르는 공포다. 나레이션이 덤덤하게 들려주는 괴담 같은 소문, 과고에 진학했던 한 여학생이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청소년기 특유의 잔인함과 서늘함을 증폭한다. 학원물에 등장하는 캠코더 영상이 노스텔지어뿐 아니라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가 보여준 적 있다. 무분별한 일상의 순간을 충동적으로 기록하는 캠코더의 조작 방식과 그렇기 때문에 거기 무엇이 찍혀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유령을 불러들이기에 좋은 환경이다.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만큼 모르는 청소년들의 직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정제되지 않음은 실은 매우 사실적인 동시에 장르적인 감각이다. <애드벌룬>은 성인 연출자(청소년들이 제작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가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학교라는 시스템 내부의 생태계와 그 혼란을 거의 피부로 맞닿아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이 영화가 진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리얼리즘 영화의 수사를 애써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영화라는 수행의 아마추어적인 특징을 전유해 서사로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서사와 무관하지 않은 어떤 불안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표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툴고 미숙한 것을 부족함에 그치지 않고, 담론적 부피로 만드는 것. 4. 청소년이 제작 주체가 된 영화들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오세섭 은 청소년들이 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논픽션을 제작하면서 자기 재현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청소년 제작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주8 이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학교폭력과 성적, 진로문제, 가족 관계와 사회에 대한 관심 등이라는 주제의 큰 경향 안에서 반복된다.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 제작 영화에서는 초창기의 관행이 반복되고 있으며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9 확실히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는 입시 제도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자주 경유할 수밖에 없다. <D-?>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입시 생활의 부조리함으로부터 출발하는 홍다예 의 < 잠자리 구하기 >(2024) 또한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수험생인 감독 자신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후에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시절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예감, 그리고 반쯤은 입시 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유소라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홍다예 감독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잠자리 구하기>가 보여주는 현실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감각은 대상과의 영점조절을 의도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내가 너를,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한다.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경향을 범주화하는 관점의 부작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충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분화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입하는지 추상화한 채 단순한 치기 어림으로 노이즈와 아우성을 뭉뚱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평이 언제나 상대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일이라는 세간의 오해에 따르면 비평은 항상 성인의 시점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비평의 청소년성이 가능한지 묻고 그 치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잠자리 구하기>에서 입시에 실패한 감독은 재수를 택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이 유예기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분노, 우울감은 입시라는 사건으로부터 멀어진 뒤에도 여전히 그 사건의 후유증과 싸워야 하는 과업으로 남는다. 감독의 나레이션처럼 우리는 “아직 유예기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도 바깥에 놓인 시간이 있을지언정 삶 바깥으로 잠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삶의 일부란 없다. 청소년기와 아직 끝장을 보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기분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 가진 우울의 궤적을 표면화하는 기록들,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편집해야겠다는 충동으로 남아서 영화의 수행성과 접속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식의 낙관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제도적 나이가 아니라 스타일로 확장될 수 있는 특정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할 때 종종 불가해한 활력을 띤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지반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소음과 신음, 반발심, 특정 시기가 지나면 부끄러운 것으로 판명 날 어떤 충동들, 미래에 무감한 투신을 마주하는 기쁨이 있고 그 충격이 글을 쓰게 한다면 기어이 그렇게 할 것이다. 왜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앞으로도 나는 너무 모르고, 모를 거라는 예감 속에서 쓰겠지만, 모르면서 일단 앞서나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부정하거나 배신하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발각될 미래의 수치심을 감수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수치심을 기다리는 일. 부정확함을 견디는 것. 글쓰기는 언제나 불안이라는 뒤축을 밟고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일이니까. 거의 넘어지듯이. <잠자리 구하기> 중 *** 주1. 이보라, 「쓰러진 활자들을 일으키기.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는가.”」,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2023, 106쪽. 주2. 노엘 캐럴, 이해완 옮김, 『비평철학-On Criticism』, 북코리아, 2015, 159~164쪽. 주3. 2001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는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가 작성한 < 기사 윌리엄 >(브라이언 헬거랜드, 2001), < 애니멀 >(루크 그린필드, 2001) 등의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인용한다. 코네티컷주의 소규모 신문 릿지필드프레스의 필자라고 알려진 이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는 그러나 가상의 인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평론가의 이름으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게재하고 이를 광고에 활용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유령적일뿐 아니라 영화 비평이 산업의 가장자리에서 니콜 브레네즈의 표현대로 ‘부역자들’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온전한 의미의 비평 활동이 수용될 장소가 희박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주4. 스즈키 이즈미, 최혜수 옮김, 『여자와 여자의 세상』, 문학과 지성사, 2024, 407쪽. 주5. 서동진, 「전주국제영화제가 소집한 19편의 한국 단편 영화」, 《독립영화》 통권9호, 2001, 10쪽. 주6. 같은 책, 7쪽. 주7. 윤성호, “ [초이스]애드벌룬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2012. 3. 6. 주8. 오세섭, 「청소년 제작 영화에 나타난 자기표현으로서의 재현의 의미」, 《씨네포럼》 제35호, 2020, 89쪽. 주9. 같은 책, 94쪽. 김예솔비(영화평론가) l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
< 노트북 >의 제작연도는 매체에 따라 상이하게 기록되어 있다. 1963년이 자주 눈에 띄고 1962년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1940년부터 1962년이라는 기록을 따른다. 이 또한 정확하지는 않다. 아담스 시트니는 <노트북>을 마리 멘켄이 영화 작업을 했던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완성된 작품으로, 그 시기를 대략적으로 기술하였다. <노트북>의 제작연도가 특히 불명확하지만, 멘켄의 작품들이 대체로 제작연도를 정확하게 표기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멘켄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정한 기간 내에 이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주목을 끄는 순간들이나 대상들을 기록해두었다가 여러 조각들을 모아서 한 작품으로 편집하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0년에 멘켄이 사망하기 직전, 그녀의 스튜디오에 홍수가 들어서 그나마 남아있던 기록들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작품에 관한 정보들도 상당히 부실한 편이다. 또한 멘켄은 작품의 최종본을 거의 만들지 않았고 첫 상영 이후에도 작품을 계속 수정했다. 멘켄의 작품들에 스크래치나 먼지가 많은 이유는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이후 네거티브 프린트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영사기에 돌려서, 원본 필름 자체가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열한 단편적인 정보들로 미루어볼 때, 멘켄은 ‘작가’로서 ‘작품’을 만든다는 자의식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멘켄의 작품들이 그녀의 생전에 널리 상영되어 주목을 끌었던 것도 아니고,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멘켄과 관련된 주요 문서들은 그녀가 남긴 인터뷰나 그녀와의 일화를 떠올리는 친구들의 인터뷰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켄을 중요 작가로, < 노트북 >을 미국 실험영화사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꼽는 이유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친구들이 1960년대 이후 미국 실험영화의 양대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조나스 메카스와 스탠 브래키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친구들의 목록에는 그녀의 작품 제목에도 등장하는 이사무 노구치, 케네스 앵거, 앤디 워홀 등이 계속 추가될 수 있다. 이를테면 마리 멘켄은 불특정 다수인 관객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작가라기보다는 우정에 기초한 작가들의 공동체 안에서 정의될 수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멘켄의 <노트북>을 조나스 메카스와 스탠 브래키지 그리고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이 각각의 요소들을 다시 나열하면, 일기영화(diary film), 신체적(somatic) 카메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윌러드 마스(Willard Maas)와 함께 했던 작가 집단인 그리폰(Gryphon)이다. < 노트북 >은 총 9개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들을 만든 시기 순으로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9개 부분들의 소제목은 ‘빗방울 Raindrops’[사진1], ‘신현 축일 Greek Epiphany’, ‘달 놀이Moonplay’, ‘흉내쟁이 Copycat’, ‘종이 자르기 Paper Cuts’, ‘전등들 Lights’[사진2], ‘밤-쓰기Night-Writing’, ‘알 The Egg’, ‘기타 등등 etcetcetc’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 부분은 흑백이고, ‘흉내쟁이’는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며 나머지는 컬러이다. 부분들의 소제목을 보면 ‘빗방울’, ‘신현 축일’, ‘전등들’처럼 촬영한 대상들로 이름을 붙이거나, ‘달 놀이’, ‘종이 자르기’, ‘밤-쓰기’처럼 촬영한 대상과 자신이 수행한 행위가 결합된 제목들이 눈에 띈다. 놀이와 쓰기는 카메라를 흔드는 행위를 지시하고, 종이 자르기는 말 그대로 종이를 잘라서 종이조각들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노트북>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습작들이 미완결인 채로 나열된 것처럼 보인다. ‘달 놀이’와 ‘전등들’ 부분은 각각 동일한 제목의 개별 작품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트북>은 마치 나는 이때 이러한 것들을 보았고, 그때 볼렉스(Bolex) 카메라를 이렇게 흔들어 보았거나 이런저런 기능을 써서 촬영해보았다는 정도 외에는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사진1] <노트북>의 ‘빗방울’ 부분 스틸 이미지 [사진2] <노트북>의 ‘전등들’ 부분 스틸 이미지 < 노트북 >이 아마추어의 습작과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하나의 통일된 의도나 주제, 혹은 구조 없이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대상이나 사건이 우발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에 준하는 문학 장르는 일기 혹은 에세이(앞으로 일기로만 표기)이다. 일기는 시나 소설과 같은 진지한 장르와는 달리 신변잡기적이고 주변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문학이라고 간주되어 오지 않았다. 특히 일기의 작가가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에, 일기는 타인에 대한 깊은 성찰과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여성만의 장르라는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계급보다는 개인 속에서 정치적인 문제들을 발견하고 삶과 예술의 구분을 폐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일기는 문학 장르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일기가 한 개인의 유아론적인 진술들이 아니라, 주체가 형성되는 데 개입되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기를 발견하고 혁신하는 실천적인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 문화 전반에 걸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소설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들이 증가하고, 자기 고백적인 시 양식으로서 일기와 거의 구별하기 힘든 시들이 발표되었다.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미국의 몰락 The Fall of America」(1965-71)과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의 「노트북 Notebook」(1967-68) 같은 시집들이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마리 멘켄은 일기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첫 작가로, < 노트북 >은 일기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다. 물론 일기 형식에 준하는 영화는 그 이전에도 찾을 수 있다. 만 레이는 1923년부터 파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기록하여 <홈 무비 Home Movies>(1938)[사진3]를 만든 바 있다. 또한 험프리 제닝스(Humphrey Jennings)는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를 새로 태어난 아이를 위한 일기처럼 기록하고 구성한 다큐멘터리 <티모시를 위한 일기 A Diary for Timothy>(1946)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일기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마리 멘켄 이후 1960년대부터였다. 멘켄뿐만 아니라 아말리 로스차일드(Amalie Rotschild),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 클라우디아 웨일(Claudia Weill)과 같은 여성 감독들이 일기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기영화가 북미 실험영화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로 나타나는데, 앤드류 노렌(Andrew Noren), 로버트 하우트(Robert Hout), 하워드 구텐플랜(Howard Guttenplan) 같은 작가들이 일기영화를 만들게 된다. [사진 3] <홈 무비>의 스틸 이미지 ( https://www.youtube.com/watch?v=Fl4U01zKI0I ) 멘켄 이후 일기영화를 만든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였지만, 일기영화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며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작가는 조나스 메카스이다. 메카스는 「빌리지 보이스 Village Voice」의 ‘무비 저널 Movie Journal’ 칼럼에서 멘켄을 자신의 영화적 스승으로 언급하기도 했었다. 메카스는 1962년 1월 4일 자 ‘무비 저널’에서 마리 멘켄의 < 노트북 >을 포함한 네 편의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었다. 마리 멘켄의 작품은 산문(드라마, 에피소드, 스토리) 영화의 반대편에 있다. 시(poetry)를 내포하는 픽션 작품들은 있지만, 산문을 내포하는 좋은 시, 특히 좋은 서정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리 멘켄은 서정 시인이다. 멘켄의 영화적 문장들, 그녀의 움직임들, 그녀의 리듬들의 구조는 시이다. 그녀는 현실을 시로 바꾼다. 시를 통해서 멘켄은 우리에게 현실의 미묘한 측면들을, 세계의 신비들을, 그녀의 영혼의 수수께끼를 드러내 준다. 멘켄과 메카스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으로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멘켄이 사망한 직후(멘켄이 죽고 4일 뒤에 그녀의 남편 윌러드 마스도 사망했다), 메카스는 1971년 1월 14일 자 ‘무비 저널’에 멘켄과 마스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메카스는 멘켄과 함께 했던 어느 시점을 다음과 같이 추억했다. 우리는 그녀(멘켄)가 엄마로부터 들어서 기억하고 있던 오래된 리투아니아 노래를 같이 부르곤 했다. 그 노래들은 매우 서정적이었다...우리가 같이 부르곤 했던 노래들의 일부는 꽃 정원(flower garden)과 그 정원을 가꾸는 어린 소녀에 관한 것이었다. 메카스는 1949년에 뉴욕에 도착했는데, 이때부터 1963년까지 촬영했던 푸티지들로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Lost, Lost, Lost>(1976)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고향을 상실한 비탄, 외로움, 향수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다루다가, 시와 영화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느꼈던 희열 등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의 초반부에서 비 내리는 장면[사진 4]은 멘켄의 < 노트북 > 중에서 ‘빗방울’ 부분의 인용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메카스가 만든 <월든 Walden>(1969)의 막간(interlude) 중의 하나는 그 제목이 ‘마리 멘켄을 위한 꽃들’이라고 붙여졌다. 이 제목은 메카스가 멘켄을 추모하며 언급했던 노래를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고, 멘켄이 만들었던 <정원을 언뜻 봄 Glimpse of the Garden>(1957)을 연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카스의 작품에서 즐거운 순간들이나 친구들과의 우정과 자연을 예찬하는 장면들이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특성은 멘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메카스의 <월든>는 필자의 연재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룬다). [사진 4]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초반부의 스틸 이미지 ‘신체적 카메라’는 아담스 시트니가 멘켄의 작품들을 압축하여 표현했던 용어이자, 멘켄이 브래키지에게 미쳤던 영향을 핵심적으로 지시하는 용어이다. 신체적 카메라는 서정영화(lyrical film)와도 통하는 개념이다. 시트니는 서정영화를 영화의 1인칭 시점 주인공으로서 카메라 뒤의 영화작가를 상정하는 영화로 정의했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작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찍음으로서 관객이 작가의 현존을 의식하게 되는 영화가 서정영화이다. 관객이 서정영화를 볼 때에는 작가가 보았던 시각적 대상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가 보았던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까지 함께 보게 된다. 서정영화에는 주인공이 없지만, 작가의 몸짓이 화면 자체의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작가의 몸짓을 행위(action)라고 표현하면, 행위를 강조하는 경향은 미술에서 추상표현주의와 같고, 몸짓을 즉흥이라고 표현하면 음악에서 재즈와 같다. 멘켄의 < 노트북 >의 9개 부분은 모두 촬영 대상과 작가의 몸짓이 결합된 형태로 제시된다. ‘흉내쟁이’와 ‘종이 자르기’는 애니메이션으로서 그리는 행위와 종이를 자르는 행위가 전제되고, 나머지 부분들에서는 들고 찍기나 스톱 모션과 같이 카메라를 조작하는 행위가 화면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시트니가 멘켄의 작품을 ‘신체적 카메라’로 함축해서 표현하는 이유이다. 브래키지는 「필름와이즈 Filmwise」에 실은 ‘제라드 말랑가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Gerard Malanga’라는 글에서 자신이 멘켄에게 받은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마리 멘켄이 내게 ‘열려라 참깨’와 같았던 것은 < 노구치에 관한 시각적 변주들 Visual Variations on Noguchi >이 카메라를 손으로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활용했던, 내가 본 첫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장 콕토가 젊은 영화작가들에게 핸드-헬드 카메라의 자유를 기회로 삼으라고 했던 조언을 그 당시에 가장 순수하게 따랐던 제자이다...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리가 기여한 것이 너무도 단순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내게 하나의 보는(seeing) 방식 혹은 다수의 방식과 관련해서 영화의 실재 전체를 질문하기 시작하도록 했다. < 노구치의 시각적 변주들 >(1945)은 멘켄이 노구치의 스튜디오에서 그의 조각 작품들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브래키지가 멘켄에게 받은 영향은 그의 표현대로 너무 단순해서, 손으로 들고 찍는 것뿐일 수 있다. 그러나 멘켄이 미친 영향의 실제적 의미는 본다는 것이 눈에만 국한된 시각적 봄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라는 생각에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에 있다. 브래키지의 작품 중에서 멘켄의 영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밤의 예감 Anticipation of the Night>(1958)[사진 5]이 일반적으로 뽑힌다. 이 작품에서는 < 노트북 > 중에서 ‘달 놀이’, ‘밤-쓰기’와 같은 부분에서 두드러지는 들고 찍기의 효과가 유사하게 발견된다. [사진 5] <밤의 예감>의 스틸 이미지 이제 마지막으로 검토가 남은 사항은 멘켄이 그녀의 남편 마스와 함께 만들었던 작가 공동체로서 그리폰이다. 이 사항은 미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실천적인 문제일 수 있고 아니면 멘켄의 성품과 관련된 지엽적인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멘켄이 메카스나 브래키지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과 영향을 주었던 것은 미학적인 측면에서보다 그녀의 성품 혹은 작가적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측면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멘켄은 1910년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뉴욕 순수와 산업예술 학교(the New York School of Fine and Industrial Arts)와 예술학생연맹(the Art Students’ League)에서 회화를 공부했었다. 졸업 후, 추상회화 뮤지엄(the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 나중에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재명명되었다)의 첫 번째 큐레이터였던 힐다 르베이(Hilda Rebay)의 비서로 일했다. 멘켄은 1937년에 야도 재단(Yaddo Foundation)에서 장학금을 받아 레지던시를 갔는데, 거기서 마스를 만나 같은 해에 결혼했다. 1942년에 멘켄과 마스는 미육군 통신대(Army Signal Corps)의 애니메이션 부서에 고용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그 당시 노먼 맥라렌의 동성 애인이었던 가이 글로버(Guy Glover)를 만났고, 그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멘켄과 마스는 1942년 습작으로 <코니 섬Coney Island>를 만들었고, 이듬해 그들의 두 번째 작품으로 < 몸의 지형 Geography of the Body >(1943)을 만들었다. 그리폰은 멘켄이 타임-라이프(Time-Life)에서 일할 당시에 받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1950년대 중반에 등록한 프로덕션 회사의 이름이다. 그러나 마스는 그의 회고록에서 그리폰의 시작은 맥라렌이 뉴욕에 머물렀던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언급했었다. 그리폰이라는 이름이 그 당시에도 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작가 집단으로서 활동하려는 멘켄과 마스의 생각은 맥라렌이 뉴욕에 머물렀던 1940년 즈음에 그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맥라렌은 영국에서 일하다가 1940년에 뉴욕으로 이주했고, 힐다 르베이를 찾아가서 제작 지원을 받았다. 이때 멘켄과 맥라렌은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마스도 함께 어울렸다. 마스의 회고록을 보면, 그 행간에서 마스와 맥라렌이 한때 동성 연인 관계로 지냈다는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브래키지가 쓴 ‘마리 멘켄’이라는 글에는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스와 멘켄의 관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마스는 멘켄과 결혼한 직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여러 남성 작가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지만 멘켄은 죽을 때까지 마스와 함께 했다. 멘켄이 사망한 후 4일 뒤에 마스 역시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드라마적이다. 브래키지는 이 사실을 마스가 멘켄에게 해준 유일하게 로맨틱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브래키지는 마스를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가득 찬 이기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멘켄을 사랑과 우정으로 충만했고, 놀라운 직관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브룩클린 하이츠에 있던 마스와 멘켄의 아파트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머물기도 했고,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 작가들의 목록에는 브래키지 외에도 케네스 앵거, 그레고리 마코폴로스, 로버트 휘트먼, 스탠 반더빅, 앤디 워홀 등이 포함된다. 마스와 멘켄의 아파트가 우정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한때 머물렀던 케네스 앵거는 그들의 주말이 얼마나 자주 전쟁처럼 끝났었는지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마스와 멘켄이 주축이 된 그리폰은 단순히 작가들과 교류하거나, 영화 장비를 공유하고 상영회를 조직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리폰은 일종의 비관습적인 삶을 조직화하려는 확장된 시도로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작가들이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아서 그 에너지를 새로운 영화 만들기로 향하게 하고자 했던 의도적인 공동체였다. 일상과 예술의 구분을 거부하고, 관습에 벗어나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도모하려고 했던 분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욕 아방가르드에서, 특히 비트 세대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그리폰은 영화 작가들의 공동체라는 이상을 향한 과도기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이상이 실험영화 제작과 상영의 현실적 토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메카스가 주도한 뉴욕작가조합(New York Film-makers’ Coop)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멘켄이 메카스와 브래키지에게 미친 실제적인 영향은 어쩌면 영화와 일상을 구분하지 않고 일상을 혁신하는 실천이 새로운 영화적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발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화이론을 설명하면서 일찍이 일기와 영화를 비교했던 세자르 자바티니(Cesare Zavattini)는 “일기와 영화는 존재의 윤곽을 확대하는 스크린을 통해서 관찰될 수 있는 존재의 비가시적인 구성요소들을 재현하고, 일기는 현실을 지시하며 즉각적인 분석을 생산하는 카메라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생각과 그 생각을 영화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 사이의 간극을 제거하기 위해서 카메라의 즉각성과 생생함을 옹호하였다. 자바티니는 “나는 일기가 영화의 가장 완벽하고 진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우리는 현실에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노트북 >은 생각과 영화 찍기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무시하고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보는 영화의 즐거움을, 예술가라는 자의식이 부재한 아마추어의 자유로움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영화들과 마리 멘켄에 관한 사실들은 다음의 책과 논문들을 참고하였다. P. Adams Sitney, Visionary Film: the American Avant-Garde, 1943-2000,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P. Adams Sitney, Eyes Upside Down: Visionary Filmmakers and the Heritage of Emers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David E. James(ed.), To Free the Cinema: Jonas Mekas & the New York Undergroun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Jonas Mekas and Gregory Smulewicz-zucker(ed.), Movie Journal: the Rise of the New American Cinema, 1959-1971,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Stan Brakhage, Film at Wit’s End: Eight Avant-garde Filmmakers, McPherson, 1991. Juan A. Suarez, “Myth, Matter, Queerness: the Cinema of Willard Maas, Marie Menken, and the Gryphon Group, 1943-1969,” Grey Room 36, Summer 2009, pp.5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