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역습
- 감독
- 어빈 캐슈너
- 제작년도
- 1980
- 출연
- 해리슨 포드, 마크 해밀, 캐리 피셔, 프랑크 오즈, 알렉 기네스, 제임스 얼 존스, 빌리 디 윌리암스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애초 작성한 리스트에는 23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0편만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여러 편의 영화를 제외해야 했다. 2014년의 영화로 선택한 < 보이후드 >의 리뷰에 앞서 전체 리스트를 수정 공개함을 알려 드린다. 이용철 영화평론가의 23편 2014년의 영화 보이후드 Boyhood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다섯 편의 장르영화 나를 찾아줘 Gone Girl , 데이비드 핀처, 2014 더 홈스맨 The Homesman , 토미 리 존스, 2014 다크 밸리 Das Finstere Tal , 안드레아스 프로차스카, 2014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 마틴 스콜세지, 2013 콜드 인 줄라이 Cold in July , 짐 미클, 2014 로버트 패틴슨이 나온 두 편의 영화 더 로버 The Rover , 데이비드 미쇼드, 2014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4 다섯 편의 아트하우스 더 원더스 Le meraviglie , 알리체 로바허, 2014 도원경 Jauja , 리산드로 알론조, 2014 실스 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 올리비에 아싸야스, 2014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 장 뤽 고다르, 2014 에덴 Eden , 미아 한센 로브, 2014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땅 Pays Barbare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위로공단 , 임흥순 , 2014 두 편의 한국 드라마 절경 , 남근학 , 2014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 2014 여섯 편의,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한 영화 호스 머니 Cavalo Dinheiro , 페드로 코스타, 2014 사랑스러운 자매 Die Geliebten Schwestern , 도미닉 그라프, 2014 프랑스 공주 La Princesa de Francia ,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아프리오리 Mula sa kung ano ang noon , 라브 디아즈, 2014 신이 되기는 힘들다 Trudno Byt Bogom , 알렉세이 게르만, 2014 위플래쉬 Whiplash , 데미언 차젤, 2014 (링클레이터는 < 스쿨 오브 락 >의 개봉 후에 아역 배우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 도중 그 편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멋진 시간을 함께 보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배우의 길을 걸어가라고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인생에서 보낸 하나의 좋은 챕터가 곧 가장 좋은 시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신 곁에 머무는데, 나는 그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긍정적인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그게 완성된 것이 아닌 경험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부모의 이혼으로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는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멀리 알래스카에서 일한다고 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엄마는 공부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친정이 있는 휴스턴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아빠도 근처로 거처를 옮긴 차였다. 이후 12년 동안의 시간 흐름을 담은 < 보이후드 >는 제목 그대로 메이슨의 소년기이자 누나 사만다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의 기록이다. 촬영은 실제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사실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감탄을 불러낼 만하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비포 연작’을 통해 (동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그리고 < 스쿨 오브 락 >(2003)이나 < 배드 뉴스 베어즈 >(2005)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 때면 어김없이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사람이다. 그에게 <보이후드>가 뜬금없는 작업이 아니란 이야기다. 기실 영화가 12년 정도의 시간 흐름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열광할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앱티드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지나도록 ‘업(Up) 연작’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소년의 성장을 20년 넘게 극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또 어떤가. 그래서 <보이후드>에서 우선 관심이 갔던 것도, 시간 속에서 인물을 포착하는 감독의 태도였다.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된 ‘업 연작’은 매번 유명한 문구 - ‘7살 때까지 아이를 맡겨 달라. 그러면 인간을 보여주겠다’ - 로 문을 연다. 이 문구를 살짝 바꾸면 곧 < 보이후드 >의 모토가 된다. ‘7살짜리 꼬마를 맡겨 달라. 그러면 소년 시절을 보여주겠다.’ <보이후드>를 본 평자들은 누구나 ‘업 연작’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링클레이터 또한 인터뷰에서 앱티드의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2012년의 <56 업>까지 매 7년마다 한 편씩의 영화로 발표된 ‘업 연작’은 현실의 인물에서 ‘가족, 친구, 애정, 교육, 계급, 타자, 빈부, 정치, 기회, 종교, 도덕, 꿈’을 읽어내 영국의 미래를 논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대한 실험장으로 발전한 ‘업 시리즈’의 감동은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신비롭게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삶의 전개 방향이야말로 다큐멘터리로서 ‘업 시리즈’가 드러낸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보이후드>의 주인공 엘라 콜트레인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6살 아이였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12년 사이에도 배우로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이후드>는 콜트레인과 직업 배우들이 서로 소통하며 찍은 반 다큐의 느낌을 준다. 링클레이터는 매해 소년에게 일어난 변화를 영화에 반영했음은 물론 콜트레인이 직접 소년기의 대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업 연작’이 시간의 경과 위로 사회와 문화의 지도를 그리려 한 작품이라면,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얼굴 그리기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긴 세월에 걸쳐 콜트레인이라는 배우와 메이슨이라는 인물이 은연중에 작가처럼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의 성장을 연대순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 보이후드 >는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트뤼포는 앙투안 역할을 맡을 배우로 어린 장 피에르 레오를 선택했고, 감독과 배우와 인물이 어우러진 다섯 편의 영화 - < 400번의 구타 >(1959), < 앙투안과 콜레트 >(1962), < 훔친 키스 >(1968), < 부부의 거처 >(1970), < 사랑의 도피 >(1979) - 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런데 트뤼포 자신이 말했듯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드라마이며, 그러한 성격은 <보이후드>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향점과 어느 정도 상치되는 부분이다. 꼭 그 점이 아니어도 나는 <보이후드>와 비교되어야 할 작품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이 아니라 장 외스타슈의 < 나의 작은 연인들 >(1974)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년 다니엘의 딱한 형편은 <보이후드>의 메이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니엘은 할머니와 살다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게 된 소년이며, <나의 작은 연인들>도 소년 다니엘이 성장해 어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단, 외스타슈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링클레이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후드>와 상반되게) <나의 작은 연인들>은 극 중 소년의 외모가 별로 변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며 외부의 세계와 단절된 인상을 강화한다.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나의 작은 연인들>을 굳이 불러내 비교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짧은 장면 때문이다. 다니엘은 한 소녀와 노변 풀밭에 누워 있다. 곧 어른이 돼 순수의 시대와 작별을 고할 소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다. 이 장면은 <보이후드>의 첫 쇼트 - 여섯 살 메이슨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흡사 링클레이터는 고통스럽고 아픈 소년 시절을 보낸 다이넬의 시간을 돌려 메이슨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른 태도로 새롭게 쓰려는 듯하다. 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애쓴다. 자신을 포함해 당신들도 소년 시절의 통증을 겪었음을 알고 있는 까닭에, 극에 뛰어들어 아파하는 척하지도 않는다. 링클레이터 영화의 특징은 ‘단순한 자연미’다. 장르 영화를 찍을 때도 그렇지만, 그것이 더 잘 드러나는 경우는 그만의 소품을 찍을 때다. < 비포 미드나잇 >(2013)이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해보라. 영어에 ‘Don’t make a scene(야단법석을 떨지 마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의미는 달라도 링클레이터 영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매년 사나흘 동안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여 15분 분량의 촬영을 거듭한 < 보이후드 >에는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업영화로서 너무 심심해 보일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어느 날 어느 십 대 소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한 장면을 손질하지 않고 내놓는 것, 그 이상을 영화는 욕심 내지 않는다. 지금 장면이 어떤 해에 벌어진 일인지 구분해 밝히지 않기에, 흐르는 음악과 열중하는 게임과 구경 간 스포츠 경기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대충 어느 정도 지점의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보는 실수를 하는데도 숨기지 않아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모를 비롯한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소년이 겪을 성싶은 일들이 그저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다인 것 같은데 <보이후드>는 시간의 에센스를 놓쳤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건 소년의 얼굴 덕분이다. 그냥 몸이 커지고 머리 스타일이 바뀌는 게 다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흘린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메이슨의 얼굴에 자국을 남긴다. 16살 생일을 맞는 해에 메이슨의 얼굴은 밉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했던 콜트레인은 무슨 일인지 잔뜩 우울한 표정과 지저분한 얼굴로 메이슨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사춘기여서 그랬을 터인데, 링클레이터는 일부러 예쁘게 분장하지 않았고, 콜트레인도 통과 중인 시기가 입혀준 표정을 거짓 마스크로 가리지 않는다. 링클레이터는 < 보이후드 >를 찍는 과정이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상영시간이 165분인 영화가 대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막을 내릴까. 평범한 영화였다면 메이슨이 차를 몰고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끝났을 것이다. <보이후드>로 인해 유명해진 인디그룹 ‘패밀리 오브 더 이어’가 부른 <히어로>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큰사람이 될 마음이 없어요. 나는 여기저기서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요. 나를 놓아줘요’라는 가사가 엄마의 품을 떠나는 장면과 썩 어울려 이 정도면 엔딩으로 훌륭하다 싶었다. 끝없이 뻗은 텍사스의 도로를 보며 누구나 감동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링클레이터는 그런 감상을 빚을 생각이 없다.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소년은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배경음악으로 ‘콜드플레이’의 <옐로>가 흐른다. 노래의 가사는 ‘별을 바라봐, 별은 너와 너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어’이다. 소년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나는 대낮인데 설마 별을 보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또는 내 생각과 달리 소년이 자신만의 별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년이 보는 것은 화면 바깥에 놓인 무엇이었다. 곧 누군가 소년을 부르고 소년은 극 중 현실로 돌아온다. 이어 12년의 시간을 산다. 내성적인 소년은 사진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제 소년은 하늘이 아닌 자기 앞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조금 슬픈 얼굴의 여섯 살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띤 열여덟 살 청년으로 컸다. 변하지 않은 것 하나,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메이슨은 화면 바깥을 응시한다. 청년이 된 메이슨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메이슨에 해당하는 자신을 바라본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앞에 펼쳐진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보이후드>는 시간을 과거에 흘러간 어떤 것이라는 개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살아가야 할 매 순간이자 현실이라고 <보이후드>는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소년기를 향수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년기 혹은 삶의 한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있었던 거다. 메이슨의 알싸한 성장통이 나의 것인 양 내 몸이 반응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고다르의 첫 번째 장편 3D 영화 < 언어와의 작별 >에 대해 무언가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한 번의 감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는 식의 편리한 변명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일단 보고 나면 그것에 관해 자꾸 무엇인가 말하고, 쓰고 싶게 만든다. 우리를 언어를 향해 돌려세운다. 그렇게 다시 돌아서서 언어와 마주하고 나면 고다르적 연상의 벡터를 따라 온갖 상념이 흐르고, 갈라지고, 또 퍼져나간다. 이건 작별(‘언어여 안녕’)의 말 한가운데 자리한 모음이 돌아서면 환대(‘언어야 안녕’)의 말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니, 한국어로는 ‘언어와의 작별’보다는 ‘안녕, 언어’라는 제목이 영화의 무드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원제 ‘adieu au langage’는 고다르의 언어유희를 따라 ‘Ah dieux, Oh langage’(오 신들이여, 오 언어여)로 읽히는 데 그치지 않고 - 그런데 왜 신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 호명되는 것일까? 왜 언어는 여전히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일까? - ‘a dieu, au langage’(신에게로, 언어에로)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작별, 호명 그리고 지향. D: 차원(Dimension) 고다르가 즐겨 인용하는 앙드레 바쟁의 금언 가운데 하나는 “원근법은 서구 회화의 원죄”라는 것이다. < 언어와의 작별 >이 3차원의 환영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입체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겠지만, 이토록 단순한 방식으로 3D의 개념을 전복하는, 혹은 혁신하는 영화가 될 거라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다르는 때로 (‘3D 안경’을 쓰고 볼 때) 좌우 양쪽 눈에 아예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입사되도록 함으로써 중첩(superimposition)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입체적이라기보다는 ‘입체파적’(cubist)으로 여겨진다. 두 대의 분리된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두 개의 눈에 각각 입사시켜 3차원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스테레오스코프의 원리는 고스란히 차용하되, 좌우 양안에 비치는 두 이미지가 반드시 시각적으로 유사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순진한, 하지만 매우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고다르가 3D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미지의 특성에 대한 그의 오랜 사색의 노정에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이미지란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시각적 정보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지란 사실 반드시 시각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 이미지란 무엇보다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상이한 리얼리티의 ‘관계’이자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그것을 통한 ‘생성’이다. 이미지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가 < 열정 >(1982), <리어 왕>(1987), < JLG/JLG: 12월의 자화상 >(1995) 그리고 < 영화의 역사(들) >(1988~1998) 등에서 즐겨 인용해 온 피에르 르베르디의 「이미지」(1918)에 잘 나타나 있다.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그것은 얼마간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리얼리티에 의해 생성되는데 그들 간의 비교가 아니라 조화를 통해서다. 이러한 두 개의 리얼리티의 관계가 멀고 진실한 것일수록 이미지는 더욱 강력해지고 보다 감정적인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 유추(analogy)는 창조의 매개체이다.” 두 대의 카메라,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두 개의 눈이 지향해야 할 것은 시각적인 깊이의 환영이 아니라 유추를 가능케 하는 거리를 둔 둘(deux)의 관계로부터(만) 생성되는 정신적 이미지, 사유의 이미지다. 말라르메가 자신의 시에서 선언했듯, “모든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를 불러낸다.”(Toute pensee emet un coup de des) 하지만,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못할 것이다.”(Un coup de des jamais n’abolira le hasard) 그리고 “아무것도 [...]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그 장소 밖에서는 [...] 아마도 [...] 하나의 별자리 [...] 를 제외하고는.”(rien [...] n’aura eu lieu [...] que le lieu [...] excepte [...] peut-etre [...] une constellation) 여기서 이어지는 생각, 주사위 던지기와 별자리. D: 주사위(Dice) < 언어와의 작별 >에 대한 예고편과도 같았던 3D 단편영화 <세 가지 재앙>(2013)에서 고다르는 ‘3D’의 ‘D’를 ‘재앙들’(desastres)로, 거기서 더 나아가 ‘주사위들(des)―별들(astres)’로 바꿔 읽었다. 말라르메적 상상? 물론이다. <세 가지 재앙>에서 고다르는 말라르메의 시와 수리철학자 고트롭 프레게의 언급을 다음과 같이 (멋대로?) 포갠다. “프레게는 사유가 수(數)를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를 구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고다르는 왜 말라르메의 주사위―별자리에서 프레게를 떠올린 것일까? (혹은 프레게에서 말라르메로 간 것일까?) 혹시 프레게의 다음과 같은 언급 때문이었을까? “주사위의 네 눈(目)에 대한 표상에서 우리는 ‘넷’이라는 낱말에 대응하는 그 무엇이 나타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 수는 자립적 대상으로도 외부 사물의 성질로도 표상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는 감각적인 것도 외부 사물의 성질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수 0의 경우 가장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0개의 별을 표상하려고 해보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상상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 ‘별’이란 낱말이나 0에 대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 아무 별도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표상할 뿐이다.”(「산수의 기초」 제59절) <세 가지 재앙>은 세 개의 주사위를 통한 세 번의 주사위 던지기로 진행된다. (위 사진 참조) 의미심장하게도, 세 번째에 가서는 텍스트가 주사위들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지 않고 그저 검은 화면 위에 떠오른다. (3D는 아직 그에 걸맞은 가능한 이미지 생성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고다르식의 일갈일까?) 이 주사위 놀이 클립 영상은 1977년에 고다르가 안느-마리 미에빌과 함께 만든 12부작 시리즈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두 명의 아이들을 통한 프랑스 여행’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심지어 영상 위에 입혀진 내레이션까지 고스란히 가져왔다. “괴물의 진화는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미시적 사건들과 돌연변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이러한 개념은 시간적으로나 수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에서는 이 뒤로 “계속되는 주사위 던지기, 하나의 하부단위에 이은 또 다른 하부단위의 생성, 이러한 우연의 게임으로부터 괴물의 신체를 형성할 수십만 번의 연쇄작용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태양계의 수명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 괴물들과 관련된 두 개의 가장 중요한 발명은 섹스와 죽음이다.”라는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의 주사위 놀이가 세 개의 주사위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3D 테크놀로지에 대한 숙고의 과정에서 고다르가 사후적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에 따라 ‘괴물’의 의미도 달라진다.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대중에서 디지털 독재로. 이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 언어와의 작별 >에서 고다르는 (다시 세 개의) 주사위로 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 다시 한 번, 근본문제(Grundproblem)에 대한 접근은 순진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D: 디지털(Digital), 0과 1이라는 거짓된 둘 <세 가지 재앙>에서 고다르는 “디지털은 독재자가 될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디지털 영화, 폭넓게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다르의 사유는 텔레비전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과 맞닿아 있다. < 언어와의 작별 >에서 그는 블라디미르 츠보리킨이 텔레비전을 발명한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선출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츠보리킨이 텔레비전 시스템을 고안한 것은 사실 1933년이 아닌 1923년이다. 이러한 연대 착오는 두 개의 일견 무관해 보이는 역사적 사실을 몽타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영화의 역사(들) >에서 텔레비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오늘날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다르의 진단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전 세계의 스펙터클을 허름한 침실들로 가져간다는 레옹 고몽의 꿈이 텔레비전을 통해 실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목동의 머리 위의 광활한 하늘을 엄지동자 톰(Tom Thumb)의 높이로 축소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언어와의 작별>에서 한 등장인물은 스마트폰 화면의 아이콘을 엄지동자 톰이 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조약돌과 비교한다.) ‘텔레-비주얼’(tele-visual)이 도처에 존재하는 것(독재)이 된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서이다. 고다르는 1970년대부터 그의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노이즈’에 대한 관심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그에 맞선다. 디지털적 이미지가 우리의 보는 방식을 표준화한다면, 고다르는 디지털적 이미지 생산의 기제들을 총동원해 그것들을 충돌시키고 각각의 차이와 부조화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즉 디지털적 이미지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는 <언어와의 작별>을 제작하기 위해 일곱 가지 다른 종류의 카메라 - 캐논의 DSLR, 파나소닉의 Lumix 그리고 ‘웨어러블’(wearable) 카메라인 GoPro에 이르기까지 - 를 활용했는데, 촬영된 영상들은 균질하게 마름질되지 않은 채 뒤섞여 가히 ‘시각적 노이즈’의 카니발이라 할 만한 광경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도래하는 건, 적어도 예견되는 건, 오직 이 소란 속에서다. 적잖은 평자들이 <언어와의 작별>을 보며 스탠 브래키지의 < 독 스타 맨 >(1964)을 떠올렸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연으로 향하는 통로로서 은유를 활용”(블레이크 윌리엄즈)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닮아 있다. 또 하나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D: 만남으로 개시되는 둘(Deux) 은유(metaphor)란 무엇인가? 그것은 응축된 픽션이다. 그것은 픽션의 한계이자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픽션이다. < 언어와의 작별 >이 하나의 시청각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 것은 여기서 고다르가 어떻게든 이야기(하기)의 가능성을 붙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두 커플에 대한 두 번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라고 한 고다르의 말을 믿어야 한다. <필름 소셜리즘>(2010)에 출연한 바 있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고다르와 작업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고다르의 차기 작품에서 저는 어쩌면 호화 유람선 횡단에 참여한 철학자-강연자 역할을 맡아 한 장면에 출연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고다르에게는 사랑이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랑과 저항 사이의 접속에서 고다르와 저의 차이는 바로 멜랑콜리인데, 이것은 고다르에게 모든 것의 색깔을 의미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사랑 예찬」) <언어와의 작별>과 관련해서, 여기에 바디우의 다른 텍스트를 겹쳐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만남을 통해 개시된 둘, 사랑이 그 진리를 실행하는 둘은 그 자신에게 닫힌 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둘은 통로이고 중심점이며, 최초의 수적 성격이다.”(「베케트에 대하여」) <언어와의 작별>을 구성하는 한편 작품 곳곳에 산포된 여러 ‘둘’들, 영과 무한, 자연과 은유 그리고 고다르적 픽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영화를 다시 본 다음에나 가능하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남아 있다. 고다르적 멜랑콜리? < 언어와의 작별 >이 고다르의 고별사일까? 이 글에서는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고다르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원기 왕성하며 활력으로 넘쳐난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 네 멋대로 해라 >(1960)를 당대에 보았던 이들은 꼭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 보곤 했다. 영화의 폐허 속에서 ‘영화 같은 무엇’의 섬광이 춤추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16편 영화천구 Celestial Sphere of Cinema (2013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까지) [북극]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장-뤽 고다르, 2014 야만의 땅 Barbaric Land,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 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서유 Journey to the West, 차이밍량, 2013 물 속의 도시, 김응수, 2014 [황도] 시인 요아브 The Kindergarten Teacher, 나다브 라피드, 2014 도원경 Jauja, 리산드로 알론소, 2014 자유의 언덕, 홍상수 프랑스 공주 The Princess of France,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적도] 더 홈스맨 The Homesman, 토미 리 존스, 201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웨스 앤더슨, 2014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마틴 스콜세지, 2013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데이빗 크로넨버그, 2014 [남극] [TV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True Detective, 캐리 후쿠나가, 2014 [필름 퍼포먼스] 간섭의 셀룰로이드 Cellule d’intervention, 메탐킨 평행 I~IV Parallel I~IV, 하룬 파로키, 2012~2014 사진측량, 변재규, 2013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요청한 것은 개봉작과 미개봉작을 모두 고려해 2014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까지 제작, 공개된 영화의 베스트 10 리스트를 꼽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있지 않은 이상, 지난 1년 간 나온 영화들을 신속히 폭넓게 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고민 끝에 나는 가능한 이 설문의 취지를 존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리스트의 각 ‘구역’이 (그저 ‘최고의 영화들’의 나열이 아니라)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지난 1년 간 내가 관측할 수 있었던 ‘영화천구’의 짜임을 추정케 하는 별자리들이 되게끔 구성해 보았다. (황도의 4편의 영화들 가운데 2편은 천구의 북반구 쪽에, 2편은 남반구 쪽에 자리할 것이므로, 관측자는 북극 쪽을 향하건 남극 쪽을 향하건 10편의 영화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관측자가 북극이나 남극 어느 쪽을 향하건 항상 보이는 것은 적도의 영화들이다.) 이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그간 미처 보지 못한 영화들을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는 않았다. 즉, 위 리스트의 영화들은 베스트 10 설문에 참여하게 될 것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고 편견이나 강박이 없이 본 것들이다. 또한 영화관에서 본 작품들과 (부득이한 경우) HD 화질로 모니터한 작품들 가운데서만 골랐다. 기회가 없어 보지 못했거나 적절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없었던 것들 가운데 특별히 다음의 영화들은 조만간 꼭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 Horse Money>, 라브 디아즈의 <아프리오리 From What is Before>,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조 단테의 <베링 디 엑스 Burying the Ex> 그리고 임흥순의 <위로공단>. 이 리스트를 작성하기 전(11월 13일 이전) 가장 최근에 본 개봉작은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였는데,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시리즈물 <하우스 오브 카드> 첫 번째 시즌에서 그가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처럼) ‘스타일적 장치이자 서사를 위한 구실로서의 냉소주의’가 지나쳐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