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
- 감독
- 셀린 사아마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조 허란, 말론 레바나, 진 디슨, 소피 카타니, 마티유 데미, 요한 베로, 노아 베로, 체옌느 레인, 레이얀 더벡리, 크리스텔 바라스, 발레리 루처
한 번쯤은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 욕망이 있다. 마치 ‘남자처럼’ 말이다. 그런 나의, 우리의 어릴 적 욕망을 닮은 아이가 있다. 영화 <톰보이>의 주인공 로레다. 짧은 머리를 하고 군살 없이 마른 몸을 가진 로레는 외형만으로는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자신에게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그는 스스로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에 아직 미숙하고, 사회의 요구와 자신의 욕망이 들어맞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하다. 로레는 리사와 만나면서 소년 미카엘의 삶을 시작한다. “넌 이름이 뭐니?” 첫 만남에서 리사의 질문에 미카엘이라고 답한 로레는 리사가 소개해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미카엘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웃통을 벗고 침을 뱉기도 하고, 서툰 가위질로 자신의 수영복을 잘라내 남성용 수영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남성 성기 모양의 찰흙을 만들어 수영복 안에 집어넣기도 한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축구를 잘하는 편이며 주먹도 꽤 쓰는 로레는 리사와 숲속에서 뽀뽀도 나누고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완벽히 미카엘로 거듭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레와의 싸움에서 진 남자아이와 그의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에게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 안에서의 로레는 사랑받는 딸이자 언니이지만, 여성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답답함과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에 무겁게 짓눌리고 있다. 입을 꾹 다물고 공백의 표정을 지은 로레는 어딘가 억눌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 로레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즉 미카엘로 존재할 때는 한결 표정이 가벼워진다. 연신 웃는 얼굴의 자유롭고 즐거운 아이의 모습이다. 여기엔 공간의 힘도 존재한다. 규정이나 사회적 편견이 깃든 학교가 아니라, 속세에서 벗어난 숲은 로레와 친구들에게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아이들은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비록 거짓으로 만들어낸 가면극이지만, 로레는 잠시나마 억압에서 벗어난다. 미카엘로 존재하고픈 욕망은 집에서도 이어진다. 영화에는 거울에 비친 로레의 모습, 즉 로레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때 로레는 미카엘로서 존재한다. 콧수염을 붙이고 남성의 말투를 따라 하거나 웃통을 벗은 모습, 찰흙 성기를 넣은 모습에 만족스러워 한다. 자신이 본 다른 남성의 모습을 모방하며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숲과 달리 집이나 학교에선 로레가 미카엘로 존재할 수 없고, 가면극은 학교에 갈 시간을 앞두고 집에서 끝이 나버린다. 거짓으로 시작된 존재는 위태롭고, 드러난 진실이 로레에겐 버겁다. 하지만 영화는 흔들리는 로레를 방치하지 않는다. 그를 지탱해주는 가족이 곁에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로레는 바람을 만끽하다 운전대를 잡는다. 어린아이는 운전대를 잡는 게 미숙하고, 그 때문에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어 위험하다. 아빠는 그런 아이와 함께 운전대를 잡아준다. 잘못된 길로 들지 않게 그가 갈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로레의 거짓말이 들통난 순간, 엄마는 로레에게 다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대응한다. 손찌검을 하고, 원피스를 억지로 입힌다. 그러나 이내 로레에게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를 차분히 설득한다. 로레도 엄마의 행동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안다. 친구들 앞에서 여자임이 드러나고 홀로 남은 로레가 상처받은 모습이 그려진 뒤 이어지는 장면은 로레가 평화롭게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이다. 가족 안에 있는 로레는 길을 잃어도 돌아갈 곳이 있으며, 좌절하더라도 나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가족들의 사랑이 부재해 엇나갔기 때문에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로레의 사랑스러운 동생 잔도 버팀목이 되어준다. 잔은 미카엘을 찾는 리사에게 굳이 로레의 거짓말을 밝혀내지 않고, 끝까지 비밀을 지킨다. 로레를 오빠라고 부르며 오빠여서 더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잔은 미카엘을 인지하고 존중하는 존재이며, 가장 편견 없이 로레를 바라본다. 그렇기에 잔의 시선으로 바라본 로레의 모습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잔은 로레와 달리 전형적인 여자아이의 형상이다. 분홍색으로 꾸민 방과 그 안에 채워진 인형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발레를 하는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잔이 미카엘을 꿈꾸는 로레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얼마나 다르건 서로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리사 역시 로레의 성장을 돕는 인물이다. 리사는 로레에게 이름을 물어봐 주는 존재다. 영화는 초반부와 엔딩 장면에서 리사가 로레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수미쌍관을 완성한다. “넌 이름이 뭐니?” 자신이 누군지 스스로 정의하고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질문은 로레가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내내 사용하는 색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타이틀 ‘Tomboy’는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다시 파란색과 빨간색이 뒤섞인 색깔로 바뀐다. 이는 기존 성별에 관한 고정관념을 뒤엎겠다는 것을 예고하고, 예고한 대로 영화 안에서 ‘남성의 색’, ‘여성의 색’은 뒤집혀 사용된다. 로레가 자신을 미카엘이라고 처음 소개할 때 입은 바지와 찰흙으로 성기를 만들어 넣었던 수영복의 색깔은 빨간색이고, 반대로 로레가 여자임을 친구들에게 밝힐 때 엄마가 억지로 입힌 원피스나 리사에게 화장을 받을 때 입은 후드는 파란색이다. 사회적 인식을 뒤틀어 사용한 색상은 성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며, 우리 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톰보이>는 단순히 여성성, 남성성을 규정하는 사회의 강압적 분위기를 지적하고,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어린 시절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신을 찾아가는 로레의 성장 과정을 그려낸다. <보그 이탈리아> 인터뷰에서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두에게 전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시기에 옷을 차려입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지 않나.”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게 아니더라도, 혼자만의 고민을 했고, 어떤 모습을 갈망했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로레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어린시절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에서 돋보이는 지점이자 이러한 <톰보이>의 메시지 전달을 더욱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감독이 ‘소녀’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데뷔작 <워터 릴리스>에서도 보여줬듯이 소녀를 욕망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그리며 소녀라는 이름에 투영된 사회적 인식을 깨부순다. 소녀라는 이름을 되찾아준 것이다. <워터 릴리스>는 플로리안을 향한 마리의 사랑, 키스를 꿈꾸는 안나의 환상, 누군가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던 플로리안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톰보이> 역시 로레가 남성의 모습을 열망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을 과장되거나 자극적이지 않게 담아낸다. 이들은 모두 순수하고 서툰 욕망을 가진 주체로, 욕망 앞에 솔직하고, 아픔을 겪으며 성장해나간다. 그렇기에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소녀는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어린 시절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1. 미셸 푸코가 이야기했듯이, 내 몸, 그것은 나에게 강요된, 어찌할 수 없는 장소다. 몸은 감각의 원천이자 세상을 받아들이는 영도(point zero)의 장소 그리고 ‘나’라는 환영이 생성되는 물리적 공간이다. 동시에 몸은 내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흔적들로 내 앞에 나타난다. 몹쓸 주름과 벗겨지는 머리, 못생긴 코. 현존하는 몸과 내가 상상하는 몸 사이에는 항상 간격이 존재하며,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몸을 가꾸거나 다른 몸을 꿈꾸거나 혹은 몸을 넘어서는 영혼과 같은 무언가를 소환한다. 이런 방식으로 순화되고 훈육되어 규범화된 몸과 달리, 퀴어한 몸들은 그 간격을 있는 그대로 전시한다. 현존하는 몸과 상상된 몸, 그리고 그사이를 길항하는 가치와 규범, 욕망과 불안은 안전하게 봉합되지 못한 채 몸을 구성하는 물질적, 비물질적인 네트워크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성애중심주의의 규범 바깥의 몸이라는 맥락에서, 퀴어한 몸은 성적 주체의 불안과 공포를 현시하는 철창으로 재현되기도 하지만 또한 그 철창 바깥으로 몸을 탈출시킬 수 있는 역능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가 환기하는 것은 결국 온전히 자유롭게 사유 되고 경험될 수 있는 몸이라는 상상력이다. 2. 라라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10대 소녀다. 여느 10대 소녀와 마찬가지로 라라 역시 집에서 간단히 옷핀으로 귀를 뚫어버리는 성마르고 조급한 소녀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발레지만 프리마돈나가 되기 위한 집념은 누구보다 강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 뒤에는 열정 못지않은 끈기와 성실함이 있다. 라라가 다른 소녀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다리 사이에 달린 자지뿐이다. 가끔은 귀찮게스리 아침이면 커져 있기도 한 자지는 라라의 제일 큰 골칫거리다. 발레 수업을 위해서 매일같이 그녀는 강력테이프로 자지를 다리 사이에 단단히 고정한다. 그래서 그 주변은 출혈을 동반하는 상처가 나기 일쑤다. 라라의 가족은 그 누구보다 라라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차근차근 밟고 있는 그녀의 성전환수술 준비를 함께 한다.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뒤쳐져 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라라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도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라라는 빨리 실력을 키워 프리마돈나가 되고 싶은 것만큼이나 얼른 이 귀찮은 자지를 없애고 싶다. 루카스 돈트의 < 걸 Girl >은 < 나의 장미빛 인생 My life in pink >(1997)이나 < 톰보이 Tomboy >(2011)같은 영화들과는 달리 수술 전(pre-op) 트랜스젠더의 외부와의 갈등과 이성애 규범적 폭력, 혹은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윤리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보다 영화는 의지와 희망, 집착과 불안 같은 라라의 내면과 그녀의 몸이 맺고 있는 역동적인 관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카메라와 관객의 시선을 조직하는 어떤 논리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르덴 형제의 관찰적 자연주의를 떠올리는 영화의 카메라는 라라의 얼굴과 몸을 그녀의 환경 안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다양한 내적 긴장의 순간을 담아내는 고전적인 핸드헬드로 그녀의 불안한 심경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돈트의 카메라는 춤을 추는 라라의 몸을 보여줄 때 가장 빛을 발하는데, 요동치는 그녀의 내면과 발레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정교하게 계획된 자연스러운 촬영을 통해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카메라의 시선을 관통하는 것은 ‘바라보임(to-be-looked-at-ness)’에 대한 라라의 반응이다. 트랜스젠더 주체에게 있어 자신이 바라보이고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은 불안을 야기하는데, 이는 자신이 자신의 젠더로 바라보여지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라는 패싱(passing)의 문제에 기인한다.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다루는 대부분 영화들의 서사적 긴장은 이 패싱이 실패했을 때 규범적 사회가 자행하는 폭력과 그로 인한 주체의 좌절에서 발생한다. 한편 <걸>은 이미 있는 그대로의 라라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의 주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끊임없는 통제와 자각이라는 긴장 상태에 놓인 라라를 계속 함께 보여준다. 이 시선이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관심을 패싱이라는 규범적 서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에 대한 라라의 관찰, 집착, 태도와 같은 반응에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네가 우리의 벗은 몸을 보았으니 너의 몸도 우리에게 보여줘’라며 짓궂게 그녀를 몰아세우는 친구들 앞에서 곤란해하거나, 라라가 타인들과 함께하는 많은 순간 영화는 그 안에 놓여 불안한 듯 시선을 떨구거나 어딘가 화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라라의 모습을 담아내며 이러한 라라의 불안한 시선은 곧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마주한다. 이 관음적이지 않은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라라와 그녀의 몸 그리고 그녀의 몸이 처해있는 상황들과 그녀의 반응에 매 순간 적극적으로 그리고 성찰적으로 반응하게끔 한다. 3. 발레는 라라의 몸을 통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다. 극도로 엄격한 몸의 관리와 움직임을 통해 그 형식미를 획득하는 발레는 라라의 몸에 많은 훼손의 흔적을 남긴다. 발레리나의 서명과도 같은 붓고 무르고 찟겨지고 피 흘리는 발은 그 대표적인 신체 훼손의 이미지다. 이미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는 청소녀 라라의 몸은 발레로 인한 극도의 통제와 고통, 몸과 마음의 젠더 불일치, 당혹스러운 성적 흥분 등 그녀의 욕망과 기원, 아름다움과 불쾌가 공존하며 경합하는 전장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전장의 주된 적으로 자지를 내세우는데 불편해하지 않는다. 영화의 중반 등장하는 라라의 나체와, 상이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라라의 최종선택 중간에는 자지가 있다. 대범하게도, 영화는 자지를 여느 신체의 부분과 다를 바 없지만 귀찮고 얼른 없애버리고 싶은 살덩이로 치부한다. 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자지에 긴 인류 문명 동안 남근 이미지가 보유해온 이성애 규범의 상징적 무게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누군가 <걸>이 라라의 젠더순응적인 태도나 혹은 자칫 성기 결정주의로 간주될 수 있는 서사의 흐름을 통해 성적 주체와 몸이 맺는 관계를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불평한다면, 그 시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라라가 발, 귀, 종아리, 자지, 엉덩이 등 그녀 몸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반응하고 감각하려 애쓰는 순간들이다. 영화가 담아내는 라라의 여정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녀가 ‘온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 겪는 고군분투’가 아니라 전적으로 성애적이지도 규범적이지도 물질적이지도 않은 몸의 다중성을 자각하는 그 순간들이다. <린 다 케브라다 이야기> 라라가 그렇게 없애고자 애를 썼던 쓸데없는 자지는 키코 고이프만과 클라우디아 프리실라의 다큐멘터리 < 린 다 케브라다 이야기 Tranny fag >(2018)의 린 다 케브라다를 떠올린다. 수술 전 트랜스젠더 펑크 아티스트인 린의 이야기는 어두운 밤 브라질 뒷골목의 린과 “내 안의 무엇이 너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거야?”라고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공연과 라이오 토크쇼 형식, 영상 일기가 이어지는 75분의 러닝타임동안 린은 다양한 정체성, 감정, 규범, 가치들이 경합하는 적극적인 도전과 질문의 장소로서 자신의 몸을 제시한다. 섹스, 피부색, 게이성(gayness), 여성성, 마초, 항문 등 대담한 소재들로 풀어내는 린의 퍼포먼스는 유색인종으로서의 차별과 가난을 경험한 가족, 암 투병으로 인한 몸의 또 다른 자각을 들려주는 사적 고백이나 자지에 립스틱을 바르는 신체 유희 같은 행위와 병치 되면서 ‘자지 달린 여자’의 몸을 정치화한다. 젠더규범, 성기의 의미, 성별 정체성 등이 끊임없이 교란되고 도전받는 린의 몸은 퀴어 정치학을 교과서적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이한 방식이지만,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몸이 이성애 규범이나 젠더 정체성과 맺고 있는 관계를 도전하고 있는 라라와 린은 성적 관계들과 그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폭등한 나머지 또 다른 성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어떤 몸의 정치가 요구되는지의 고민으로 우리를 이끄는 주목해야할 여성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