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짓
- 감독
- 크리스티안 펫졸드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폴라 비어, 고데하르트 기에세, 프란츠 로고스키, 릴리언 뱃맨, 마리암 자리, 바바라 오위어, 제바스티안 훌크, 마티아스 브란트
지난 12일 SK와이번스가 8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길었던 프로야구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소재는 야구이다. < YMCA 야구단 >(김현석, 2002)에서도 그려졌던 것처럼 20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 세기 넘게 한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 중 하나가 야구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난지인 부산에서 전국 리그전이 개최될 정도 1) 로 야구는 역사 현장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뉴스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구는 스포츠 소식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긴 역사를 갖는 만큼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야구 뉴스들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야구 소식’이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기별로 정리해 야구 역사의 발자취를 부분적으로나마 조명해보려 한다. 1950년대 영상은 아무래도 미국이 제작‧배급한 뉴스 위주로 보존되어 있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미국 메이저리그 관련 소식이다. 특히 한국전쟁 관련 뉴스에서는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한국전 참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4할 타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전쟁에서 귀환하는 푸티지(< 군 복무 마치고 귀국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라든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으로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커트 시몬스(Curt Simmons, 1929~ )가 한국전 참전 소식을 직접 알리는 캠페인 영상(< AMERICA IN TRANSITION >(1950))을 들 수 있다. 커트 시몬스 영상의 경우 장래 유망한 젊은 투수가 시즌 중에 징병 되는 상황을 야구선수로서의 모습과 군인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내레이션을 삽입해 한국전 참전의 당위성을 높이는 프로파간다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유명 선수들의 참전 소식과 함께 월드시리즈의 경기 결과를 알리는 뉴스들이 ‘해외소식’의 한 꼭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AMERICA IN TRANSITION>의 커트 시몬스 장면: 투구를 하는 커트 시몬스의 모습이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전환되고 한국전쟁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미군 참전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보다 다양한 야구 소식들이 전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비중이 크고 눈여겨볼 것은 해외 야구팀의 내한과 친선시합 뉴스이다. 미국 대학팀이나 청소년 야구팀, 일본의 다양한 야구팀들의 방한은 한국야구의 ‘이벤트’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친선시합들은 한시적인 국제 이벤트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장비 원조와 기술 전수를 받음으로써 한국야구가 성장하는 데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야구팀의 경우 대학 야구팀부터 실업 야구팀 그리고 내한을 위해 결성된 재일교포 야구팀까지 다양한 리그의 야구단들이 방한해 전국의 야구팀들과 시합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복절 행사’ 같은 국가행사 기념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기획’된 재일교포 야구팀의 방한과 친선시합들은 1960년대 실업 야구리그가 자리를 잡고, 고교야구리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자체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국가가 기획해 한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한 뒷이야기는 당시의 뉴스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2014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 그라운드의 이방인 >(김명준, 201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 1957년 내한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의 모습 (우) 시합이 열린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관중 (<국방뉴스 제73호>) 1957년 경무대를 방문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대한뉴스 제126호>) 1962년 일본 도에이팀 소속으로 내한 시합을 가진 장훈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대한뉴스 제391호>) 1970년대는 명실공히 고교야구의 시대였다. 특히 1972년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등학교를 상대로 9회 말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리며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군산상고 야구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이 경기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대한뉴스에서 다루는 것을 넘어 별도의 문화영화(<승리의 기록>(1976))로 제작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TV 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긴 했지만, 스포츠 중계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TV보다는 여전히 라디오 중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따라서 시차는 있지만, 뉴스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교야구경기 영상을 보면 현재 프로야구의 인기에 버금갈 정도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교야구의 열기는 뉴스와 문화영화의 인기 소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하이틴영화의 인기와 맞물려 < 영광의 9회말 >( 김기덕 , 1977), <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 >( 정인엽 , 1977) 같은 야구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는 실제 군산상고 야구부원들의 출연을 두고 경쟁을 벌인 끝에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가 군산상고를 소재로 제작을 했다. 이에 따라 <영광의 9회말>은 경북고 야구부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는 김기덕 감독의 구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승리의 기록>)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의 한 장면 1) 『동아일보』, 1951년 10월 6일자 2면. 출처 <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 < AMERICA IN TRANSITION >, < 국방뉴스 제73호 >(1957) -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 승리의 기록 >(1976), < 대한뉴스 제126호 >(1957), < 대한뉴스 제391호 >(1962) - KTV e영상역사관 공영민, 「김기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70년대 한국영화 2 - 김기덕‧김수동‧김종래 』, 한국영상자료원, 2016.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전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까? 영화는 처음에는 그렇게 물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런 다음에는 한국전쟁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전쟁의 시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전쟁을 장르영화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아마 그 자리에 < 태극기 휘날리며 >가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북한은 한국영화에서 신비로운 타자가 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사람들은 할리우드 SF영화에서 나타난 ‘인간의 마음을 가진’ (포스트모던) 사이보그들처럼 보였다. 주체의 분열. 아니, 차라리 환자라고 부르고 싶은 증후들의 집합. 여기엔 무언가 우리가 합류할 수 없는 접근불가능이라는 어떤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점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적인 정치적 역학들. 아직도 베일에 싸인 배경. 그 대신 여기서는 전쟁 이후의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 프리모 레비를 떠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생명과 증언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고 그런 다음 다시 살아남았다. 구태여 다시, 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사이에 놓인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을 셈에 포함시킨 것이다. 역사의 자기 파괴적인 변증법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레비는 가라앉은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남은 자들을 구조 받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전쟁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데올로기로 둘로 나뉜 민족은 서로 무자비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기록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참혹하다. 휴전이 시작된 다음 ‘빨갱이’는 시민권을 박탈당한 자처럼 처리되었다. 단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연좌제라는 법의 새로운 항목으로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 범위는 확대되었다. 그들은 범죄자들보다도 더 가혹한 취급을 받았으며, 어쩌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어떤 배려도 없이 삶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했으며,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증언도 금지되었다. 나는 지금 임권택 을 말하는 중이다. 당신에게 다소 양해를 구한 다음 나는 약간 소설처럼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이어진 긴 인터뷰를 하면서 < 증언 >에 이르렀을 때 한참을 멈춘 다음 몹시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날이 며칠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기나긴 한숨소리는 바로 지금 곁에서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만 같다. 이것만은 정말 내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그 말이 첫 대답이었다. 나는 대답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덧붙일 생각이 없으며 상황을 감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인) 영화진흥공사는 1973년 4월 표면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나섰지만 내용은 국책에 따른 반공영화 제작이었다. 국방부가 이를 후원했으며 사단병력과 화력장비를 동원하여 전쟁장면을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영화진흥공사로부터 허락받은 시나리오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은 그때 막 유신정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부기관들은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서 신고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에게는 이중의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그 자신이 부모님의 빨치산 경력으로 인한 연좌제 보호관리 대상의 가족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부모님만이 아니라 외가쪽의 친척들이 해방 직후 좌익 활동에 대부분 포함되었으며 그 중에 일부는 한국전쟁 동안 입산을 해서 빨치산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대구 교도소에서 총살을 당했고, 또 일부는 그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 어떤 이는 ‘조선 인민공화국 해방군’이 후퇴를 할 때 함께 북에 올라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의 말로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도 하지만 더는 안부를 알 수 없었다. 1973년은 전쟁이 휴전한 지 고작 20년밖에 흐르지 않은 다음의 일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다른 하나는 그 자신에게 내면적인 고문이었다. 임권택이 제안 받은 영화는 한국전쟁에 관한 반공영화였다. 물론 임권택만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만희 는 < 들국화는 피었는데 >를, 그리고 김수용 은 <전쟁의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의미. 1973년에 이르러 임권택은 긴 시간 동안 사극, ‘다찌마와리’ 영화, 만주 웨스턴, ‘나미다’ 멜로드라마, 홈 코미디, 첩보영화, 무국적 무협활극을 찍었으면서도 이만희, 그리고 김수용의 반열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내가 비로소 영화감독이라는 책임을 갖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 그때 막 단 한 편 < 잡초 >를 연출했을 뿐이었던 그 해였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권택에게 곤궁이 되었다. 자신이 국책의 도구가 되어 본의 아니게 부모의 선택을 비판하는 자리에 불려가게 된 꼴이 되었다. “내가 부모님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욕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임권택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자리에 불려갔다. “영진공 사장이 보자고 불러서 갔죠.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생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사장 옆에 앉아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공사 안에서 후반 작업들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을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그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한테 오래 전에 나도 잊어버린 친척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 친척이 한국 전쟁 때 산에 올라간 분이거든요. 그러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완전한 수동성 안에서의 최소의 능동적인 선택. 그는 하여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는 어떤 합리적인 논의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칼을 배제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칼을 손에 든 그 앞에 자신의 부모의 삶과 시간이 놓여있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정신분석에 기댄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임권택 의 트라우마. 임권택의 증후. 임권택의 오이디푸스. 임권택의 안티고네. 임권택의 늑대인간, 임권택의 억압. 임권택의 불안. 임권택의 대상-원인. 임권택의 (...) 등등. 대신 이때 임권택은 어느 자리에 놓여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다시 배치라는 문제. 말하자면 영화의 실행 안에서의 푸념 섞인, 때로는 불안에 가득 찬, 그래서 종종 자포자기해버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까지 그 자리를 향해 이동하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역량의 위상기하학. 그 안에서 숨겨있을지도 모르는 예술의 조그만 힘은 어디로 이동하고 역사의 이면에 있던 개인의 작은 단위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척하면서 어떻게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가. 나는 약간 이 영화에 전략적으로 다가서고 싶다. 그 안의 불안정성. 몹시 위험한 말이지만 (대부분 버림받은)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내가 매혹되는 순간은 과도할 정도로 요구되는 검열의 방어 속에서 그 틈 사이로 들어가 각자의 전략을 수행하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불안정한 상태를 발견할 때이다. 그때 무언가 부서지고 있다. 나는 그걸 바라보면서 봉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로서의 불안정성을 생각한다. 스피노자를 흉내 내서 설명하고 싶다. 거미처럼 칭칭 동여매고 감싸 안을 수 없을 때,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내려다볼 수 없을 때, 두더지처럼 그 아래로 파고 들어가고, 그래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밑바닥을 뒤흔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게 거의 무의미할 지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기가 실존할 자리의 확보를 위한 안간힘.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살아가기. 거기에서 우리가 보는 자기 삶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역량. 이를테면 김기영 의 < 흙 >. 유현목 의 <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 김수용 의 < 웃음소리 >, 이만희 의 < 04:00 -1950- >. 아마 임권택도 그런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몹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 증언 >으로 결정되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 안에서 아무 것도 증언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김강윤 이 각본을 쓴 이야기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더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재현(해야만)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곤궁은 우리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사태를 훨씬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수행해야만 한다. 수행의 역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은 해야만 합니다. <증언>은 단순한 역설에 대한 증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영화에서 삶이 어떻게 통합되고 그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분열되며 다시 그 안에서 고난이 어떻게 그 수행을 기록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시선과 광경 사이의 교차. 우리들의 관람과 영화의 광경. 물론 <증언>의 주인이 임권택이라는 식으로 등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평의 수사학 안에서 그런 식의 순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도식적인 작가주의 관점을 버린 지 오래이다. 임권택은 그 영화 안의, (그런 다음 다시) 그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증언>에서 이야기의 문자를 재현시키는 일을 수행해야할 임무를 지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임권택이다. 그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내 말의 핵심은 바로 여기서 이 상황을 일반론으로 환원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언제나 특수한 조건이며 일회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언제나 이미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사건 안에서 모두 살아야 한다. 그 자리가 배우이건, 촬영이건, 조명이건, 프로듀서이건, 영화감독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임권택은 <증언>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순아 장욱 소위 < 증언 >은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산산조각 난 영화이다. 이 말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의 전체가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에 부딪쳐 마치 실수를 해서 떨어트린 거울처럼 깨져버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총체적인 관점? 거기서 참조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그 시대의 불행? 그 어떤 요구에 대한 어떤 두려움? 어떤, 어떤, 어떤, 대답할 수 없는 어떤, 이라는 지칭.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증언>을 보는 내내 그게 한 편의 영화라는 내재적인 자기규정 말고는 마치 서로 다른 층위의 순간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제각각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이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고전적인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의 계보에 속하는 방법의 자장 안에 있다.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이보다 더 동선이 반복해서 수없이 끊겨나가면서 마치 매번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게 검열 때문은 아니며 미학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각본의 실패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게 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기능적으로 쓰여 졌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표현은 제작에서의 역할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김강윤 은 <증언>의 제작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연출의 입장에서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최소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전쟁을 도발하고 그날 정오 무렵 박순아의 연인인 17연대 장욱 소위는 잠시 데이트를 하다가 재빨리 귀대한다. 서울은 함락되고 한강다리를 건넌 박순아는 피난을 가면서 전쟁의 수많은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수많은 참상의 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영화는 줄거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편리한 서술 장치는 끊임없이 개입하는 박순아의 설명(voice_over_narration)이다. 이 설명은 근본적으로는 <증언>에서 (이제는 사라진) 대한뉴스와 같은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을 대신해서) 선과 악을 구별한 다음 평가를 내리고 때로는 신의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훗날의 역사적 평가까지 내린다.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 그걸 이용해서 임권택은 때로 재빨리 전체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고(master_shot) 갑자기 시간을 옮겨가거나 조건이 바뀌었을 때 보충을 하고(transitional shot) 그런 다음 다루기 까다로운 경험에 대한 감정적인 설명을 한다. 화면 바깥의 목소리는 때로 이 영화의 시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가장 쉬운 방법, 그만큼 나쁜 모델.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평가에로 달려가는 대신 잠시 머물면서 질문하고 싶다. <증언>을 보고 있으면 명백히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못했고?) 그 해 여름 영화 현장에 도착하는 군부대의 조건에 맞춰 촬영이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장면에는 대규모 군부대가 이동하고 있고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아마도) 인근부대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큰 규모의 전쟁장면과 최소의 출연진으로 이루어진 배우들로 찍을 수 있는 소규모의 장면들이 번갈아 오가도록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중의 일부가 빠진다고 해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장면을 찍지 못했다 할지라도, 전체 구성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는 진행을 염두에 두고 씬을 배치하였다. 물론 각자의 시퀀스 안에서 진행되는 유기적인 쇼트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과장될 정도로 이 영화는 시퀀스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퀀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될 때 여기서는 단지 사건의 조각난 단위가 아니라 경험의 파편이라는 내면의 붕괴에로 이끌린다. 이건 예기치 않은 재난이거나 아니면 이미 각오한 희생일 것이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증언>은 재난이거나 희생이다. 후렴구처럼 반복해보고 싶다. 재난이거나 희생. 어떤 피난처도 없을 때 맞이해야 하는 상황 앞에 서서 고스란히 느껴보는 고통. 영화가 시작할 때 정확하게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시계가 가리키면 포성이 울리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포를 쏘는 장면이 연달아 보여진다. 무료할 만큼 반복되는 쇼트. 아무런 긴장도 없는 쇼트의 연속.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게다가 이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대포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대포가 포격을 하는 쇼트는 있지만 이 대포를 누가 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똑같은 의미에서 그 대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시퀀스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의 어떤 진술도 없다. 내가 여기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과의 사이의 거리이다. 그때 느껴보는 공포는 이 영화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1973년의 구호를 떠올려야 한다.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 교실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 구호와 함께 생활했다. < 증언 >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의무 관람을 시켰다. 이때 <증언>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포를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여기에 전혀 반대의 두 종류의 관람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한국전쟁을 본 적이 없는 전후 세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대이다. 이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고작해야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을 때였다는 점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교롭게도 어른들과 아이들로 정확하게 그 경험의 여부를 나눈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사회 안의 절대적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 그들은 그 경험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경험? 그러나 전쟁이란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다. 각자의 피난. 각자의 생존. 그 경험에 보편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공포가 아니었을까. 이때 영화는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참 좋은 때로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벽의 포격 시퀀스에 이어지는 장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다. 주인공 순아가 하숙을 하는 집주인 아줌마( 황정순 )가 그걸 바라보며 한 마디 거든다. “참 좋은 때로구나” 좋은 때. 참 좋은 때. 그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날이 좋은 때라는 것은 한국근대사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표현이다. 해방직후 대한민국과 조선 인민공화국은 각자의 방식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한 쪽은 무자비한 숙청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미군정 아래 좌우익의 대립이 피비린내 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간단한 설명이 있다. 거의 같은 시기를 다룬 임권택 의 두 편의 영화 < 증언 >의 도입부와 < 깃발 없는 기수 >를 비교하면 된다. 전력의 대부분을 신의주 수력 발전소에 의지하던 한반도에서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에 공급을 중단했으며 경제적으로 남한은 북한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던 시절.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일요일은 참 화창했다. 그날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야구경기가 있었고, 서울 시민들은 뚝섬에 나가 한가로운 한강에서 초여름 바람을 맞이하였다. 물론 그날 열일곱 살 임권택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에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은 시나리오를 쓴 김강윤 의 기억일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그날 서울에 있었다. <증언>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고증과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객관적) 기록이 담겨있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건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권택의 ‘증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임권택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 태백산맥 >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이다.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는 동안 전쟁이 시작된다. 25일에 휴전선을 넘은 다음 북한군의 탱크는 이틀 후인 27일 미아리고개에 나타났다. 서울 시민들은 그제야 피난을 준비했고 (이승만 정부는 휴전선에서 ‘괴뢰군’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방송을 했다) 28일 새벽 2시 30분 북한군의 남침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하였다. (이승만 자신은 이미 피난 간 다음에도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死守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작전은 후일 효과가 없었으며 피난민들만 서울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판결에 따라 폭파 명령을 시행한 책임자 최창식 대령이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영화 <증언>은 사형 판결을 다루지 않지만 최창식 대령을 둘러싼 한강다리 폭파에 대해서 주인공 순아를 버려두고 긴박하게 오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난민 대열에 섞인 순아는 이 결정을 알지 못하며 순아의 애인인 장욱 소위는 (마찬가지로 그 결정을 알지 못한 채) 그 다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마지막 소대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이 다리 폭파장면을 위해서 전조명 촬영감독은 일본 특수촬영 팀과 (그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 촬영을 별도로 하였다. (<증언>의 촬영감독은 서정민 이다) 지금 보면 이 장면은 매우 조악해서 전쟁장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 괴수물의 세트처럼 보인다. 내 설명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장면은 공을 들였지만 효과적이지 않으며 기술적 수준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패배와 살육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무드에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로 보인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아직 디지털 특수효과가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그때 할리우드 영화는 < 에어포트 >를 시작으로 재난영화(panic films) 장르의 붐이 막 시작되고 있었으며 < 포세이돈 어드벤처 >, < 대지진 >, < 타워링 >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었고 이 영화들은 <증언> 맞은 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어쩌면 <증언> 제작진은 이 영화를 전쟁영화이면서 동시에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약간 바보같이 반문하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여기서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때 <증언>이 요구하는 진실의 효과는 무엇일까. <증언>의 메시지는 이 영화를 국책영화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과 달리 모호한 구석이 사방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한강 다리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 증언 >은 전체적인 균형을 무시하고 긴 시간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전체 상영시간 1시간 55분 중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순간은 30분 55초에 이르러서이다. 수많은 전쟁장면이 뒤에 기다리고 있으며, 게다가 한강다리 폭파장면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 이것은 실패한 작전이며 여기서 피난을 가던 서울 시민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한밤중에 강을 건너다 죽음을 당했다. 이 장면에서 순아가 죽음을 맞이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퀀스 전체는 순아의 동선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증언>은 한강다리 폭파 시퀀스를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다리 폭파를 결정하는 장교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영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하게 마치 저승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이승만의 목소리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까지 여기저기 화면에 울려 퍼진다. 아마도 잡음과 함께 뒤섞인 소리들은 오래 전의 라디오 방송에서 가져온 테이프에서 고스란히 시간이 묻어나오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증언>에서 이 순간의 역사적인 실재는 오로지 이 목소리뿐이다. 시간의 결.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목소리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는 실재와 대면하는 인공적인 이미지로서의 영화. 게다가 이 장면은 밤에 진행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약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실재와 외양, 경험과 풍문, 역사적인 증언과 인공적인 스펙터클,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라는 훈련에 동원된 군대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광경이 펼쳐진다. 광경? 그렇다. 이상하게도 서로 쌍을 이루면서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보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광경이다. 이를테면 피난민을 연기하는 엑스트라들의 무리와 진군하는 국군들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김진규 와 엄앵란 이 마이크를 들고 군인들을 독려하는 웅변과 그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부인회의 모습은 얼마나 기괴한가.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지금 상황이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이 한가롭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증언 >은 그런 다음 순아가 한강을 도강해서 피난민 틈에 끼어, 때로는 남침하는 북한군 무리들과 함께, 그리고 위험한 순간마다 국군을 만나 구조를 받으면서, 낙동강을 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연인인 장욱 소위를 찾고 있으며, 장욱 소위는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서울 수복을 하는 그 순간 시청 앞 광장에서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경례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으로 퇴장을 한다. 그때마다 그 증인으로 순아는 매번 그들의 시신 곁에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떠맡는다. 순아가 그걸 지켜볼 때 비분강개한 목소리가(voice_over_narration) 나타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 목소리가 이상한 것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순아가 그 증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또 다른 증인이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시간적으로 지금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탈구된 상태로, 그 목소리는 자율적으로 화면을 향해서 중계방송 하듯이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證言’이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는 이미지가 일종의 주관적 착시라고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조차 이 목소리는 우리들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원래 이 목소리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차갑게 만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오작동을 일으킨 경우이다. 혹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배신하고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목소리의 미학적인 차원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와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장면보다 목소리가 먼저 울 때 슬픈 감정을 느껴보는 대신 자기의 기회를 빼앗긴 관객은 슬픈 영화를 쳐다보기 시작한다는 고전적인 시나리오 이론이다. 나는 단순하게 서투른 작법에 대해서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싶다. 이 순간과 마주할 때 이상하게도 이미지에 목소리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이미지가 설계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미지를 먼저 보여준 다음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목소리는 마치 특이한 환상에 대한 보충설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이한 환상? 한국전쟁이라는 환상. 우리는 지금 이 전쟁이 순아의 피난길을 따라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녀 앞에 적과 아군이 번갈아 나타나 전쟁을 연기하는 중인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강다리에서 연출된 이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을 본 다음부터 마치 전쟁을 연출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되었다. 요점은 간단하지만 좀 기괴하다. < 증언 >은 곧장 전쟁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 전쟁이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참 좋은 때”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한강다리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다시 긴 시간을 보낼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를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만드는 씬들 사이의 교차가 몇 번이고 이루어진다. 여기서 한강 다리 폭파장면까지는 긴장감이 넘치는 대신 이상할 정도로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면서 거의 지칠 만큼 늘려 놓았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일부 장면이 생략이라도 된 것처럼 순아는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증언>에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한국전쟁을 경험적으로 재현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이것이 더 진정한 목표인데)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참 좋은 때”가 무너지고 언제든지 다시 지금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한국전쟁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한 재현이다. 아마도 그것이 반공영화들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않은 오작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기억하라, 고 요구하는 대신 “참 좋은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의 환상으로 밀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정확하게 그 문턱이라고 불러야 할 한강다리 미니어처의 폭파 장면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갑자기 전쟁은 “참 좋은 때”의 이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때”를 보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쟁. 당신은 이때가 유신정권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첫번째 예 두번째 예 이면의 수행성에 대해서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마치 한강 폭파 이후의 장면들이 모두 “참 좋은 때”의 이면의 판본을 연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무대처럼 서로 연기를 하며 가장(假裝)의 시퀀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첫 번째 예. 순아는 피난길에 오르면서 예기치 않게 장소위의 부대원이었던 김일병을 만나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북한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두 사람을 앞질러서 그만 한밤중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해 찾아든 곳에 이미 그들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한밤중에 찾아든 남녀가 자신들의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면서 먼저 받아들인다. 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김일병은 재빨리 자신을 그들과 같은 북한군으로 위장하면서 자기 고향인 북한말을 쓴다. 여기서 순아와 김일병은 북한군을 자신들을 환대해 줄 상대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가장을 한다. 이때 거짓말은 그들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피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희미하긴 하지만 환대에 대한 배반이 숨어있다. 그들은 불균등하긴 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환대와 거짓말을 교환한다. 이때 그 둘 사이에 매개가 되는 것은 가장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공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어떤 아이러니한 익살이 감돈다. 두 번째 예. 추풍령을 넘으면서 북한군은 탱크 앞에 피난민을 내세운 다음 자신들은 그 뒤에 숨어서 지뢰를 피할 계략을 꾸민다. 그런 다음 피난민들에게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뒤에서 총으로 사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국군은 피난민들 때문에 매복해놓은 지뢰를 폭파시켜야할 지를 망설인다. 피난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국군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않느냐면서 (그러니 우리들은 북한군의 총알에 죽고 탱크는 국군의 지뢰에 폭파당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전진을 거부하는 이들과 그래도 어쩌면 지뢰를 피해서 요행수로 살 수도 있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나뉘어서 두 편이 서로 다툰다. 영화는 그들이 긴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도 마치 그걸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듯 일시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것처럼 보여준다. 여기서 피난민을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얼룩이라고 설명하면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상황을 완전히 아이러니하게 만들 수 있다. 피난민들이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시작할 때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난 지금부터 공산주의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희생당하는 대신) 당신들의 탱크에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는 이 영화가 국책영화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다소 가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그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질문할 때 이 시퀀스가 요구하는 것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 전쟁에서 올바른 역할을 위한 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남겨진 것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다소 까다롭다. 순아는 북한군에게 붙잡힌 다음 장교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취조를 당한다. 자신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사실대로 말한다면 당신을 그냥 놓아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다. 그는 순아에게 자신이 가방을 뒤지는 대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 이때 순아는 가방 속에 장욱 소위의 사진이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사진은 발견되고 만다. 북한군 장교는 그 사진을 본 다음 잘 알았다면서 그녀를 그냥 풀어준다. 물론 순아와 또 다른 부녀자가 그들이 주둔하는 집을 떠나 발걸음을 옮기자 멀리서 조준사격을 가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또 다른 부녀자가 죽으면서 순아의 몸을 감싸 안기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물론 여기서 북한군 장교는 처음부터 순아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그걸 순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진실을 고백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친절한 요구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대응이 이 씬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여기서 상황을 괄호 친다면 북한장교의 예의바른 제안에 대해서 순아의 거짓말은 무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풀어준 다음 조준 사격하는 것은 그녀의 거짓말에 대한 벌로 읽힐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위장된 거짓 논리이다. 이 시퀀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누구라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공산당들은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회유를 하며 우리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입니다, 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여기엔 까다로운 미끼가 있다. 그냥 총살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느냐, 는 것이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면이 정말 문제가 되는 상황은 북한군 장교가 오로지 자기의 예의바른 태도를 남한의 숙녀에게 전시하기 위해서 정말로 순아를 살려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약간 서둘러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 네 번째 예에 이 장면과 똑같은 순간이 반대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순아가 남하하다가 북한군들이 국군의 복장을 하고 길목을 지키고 서서 본대로부터 탈영하여 국군에 귀순하려는 북한군들을 기다리다가 총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자 순아는 정말 국군을 만났을 때 마치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인 것 같은 연기를 한다. 국군을 만난 다음에도 자신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자 국군은 순아를 체포하여 본대로 보낸다. 거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순아에게 매우 친절푀옇凋응막?전후 사정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했다뇩옇뺐?함께 하지만 그걸 자신들이 믿기 어렵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든다. 여기서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순아는 전쟁 중에 체포한 북한 정훈장교이다. 그런데도 정보장교는 예의를 갖추어 (자신보다 어린 그녀에게) 경어를 쓰면서 기꺼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인다. 만일 여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북한군 장교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 당신 말을 충분히 들었어요. 하지만 믿긴 어렵군요.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고 당신 스스로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라고 소개한 것 말고는 다른 정보가 없군요. 당신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우리는 후퇴하는 중이니 즉결 사형에 처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순아가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국군 소위이자 순아의 연인인 장욱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기서 북한군 장교와의 장면에서 < 증언 >에서 사용된 장면을 N(nor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을 N 2라고 한 다음 마찬가지로 국군 장교를 만나서 사용된 장면을 S(sou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은 S 2라고 부르겠다. 만일 N 2가 사용된 다음 S 2가 대응한다면 그건 북한영화의 버전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N 1이 사용된 다음 S 2가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는 몹시 부조리하지만 무언가 균형을 이루었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된다. 이 순간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오로지 주인공 순아가 두 개의 나라 사이에서의 전쟁을 오가면서, 이를테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라고 가정하고, 이 상황과 마주쳤다면 순아에게는 가혹한 결정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난처해지는 것은 N 2가 사용된 다음 S 1이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순아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남한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두 번째가 아니라 이 네 번째 판본이다. 왜냐하면 이 네 번째 판본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용서라는 방식으로 순아의 실수를 교정한 다음 되돌려 보내지만 남한은 조건을 달고 실수를 교정한 다음 그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S 1을 고정시켜놓고 N 1과 N 2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하게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S 1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N 1의 흉내를 내면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제도 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N 2를 선택했을 때 가장 난처해지는 설명은 북한군 장교가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훨씬 미묘하게도 순아를 보고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느낀 나머지 한편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한 자세 뒤에 위태롭게 숨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에 주어진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 보냈다는 멜로드라마적인 해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군 장교는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도, 심지어 순아보다도 더 인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북한군이 국군보다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책영화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가정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건 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명제의 반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놓았던 경계선은 무너지고 이제 이 전쟁에서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에서 살아가게 된다, 혹은 죽어가게 된다. <증언>은 기묘하게도 매번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다음 진부한 국책영화의 흑백논리로 재빨리 되돌아온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이고 임권택 의 전쟁영화, 혹은 국책영화에로 되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때 망설이는 당신의 근심을 알고 있다.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함정 아닌가요.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보려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기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잠시 멈칫 거리면서, 그것이 의도라기보다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매번 거기서 우울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영화가 자기가 처해있는 영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추방되어 버렸다. 그저 광경만이 남았다. 단지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부서진 낮과 꺼져버린 빛 때문에 세상이 거의 지워진 밤. 그리고 낮보다 더 많은 밤. 그 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일까. 그런데 전쟁이 난 그해 비가 그렇게 내린 것일까, 아니면 촬영을 한 그 해에 내린 비 때문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이상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화면들. 종종 젖어있는 것만 같은 폐허들. 그때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까. < 증언 >이 거의 부서져가면서 가까스로 이어져갈 때 거기 끼어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고통이나 연민이 이야기 안에 넘쳐나면서도 그걸 영화가 느껴보는 순간이 없다. 나는 지금 유령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이미 지나가버린 영화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듯이 그저 길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 같은 심정.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지금 그 시간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두렵지만 이건 나의 사명이다. 그러니 <증언>을 향하여 소리 높여 질문한다. 말하라. 나는 너의 증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계속) 약간의 첨언. < 증언 >은 판본의 문제가 있다. KMDb에 따르면 <증언>의 상영시간은 2시간 5분이지만 지금 내가 보고 이 글을 쓴 판본은 8분가량이 짧은 1시간 56분 58초이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증언>을 완성한 다음 이 판본에 대해서 제작사였던 영화진흥공사가 몇 가지 보충촬영을 지시했는데 이미 다음 작품을 촬영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제작 프로듀서였던 정진우 감독이 촬영하고 편집했다. 아마도 두 가지 버전 중에서 2시간 5분 버전은 정진우 감독의 보충촬영 추가 편집본일 가능성이 크다. 개봉은 이 버전으로 했을 것이며 현재 영상자료원 소장본은 짧은 임권택 버전(일 것)이다. 정진우 버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 1973년 12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김강윤 촬영 서정민 조명 최의정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김창숙 신일용 박지훈
영화를 보러 쏘다니는 것은 가끔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새로운 방법으로 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는 것을 비웃기 위해서 꺼내 든 것이 아니다.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경험이라는 것을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을 허락한다면 영화들은 서로 구름처럼 뒤섞인다, 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영화가 저 영화와 겹치고, 저 이미지가 이 영화 안으로 들어온다. 쇼트들 사이의 칸막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사이를 어떤 경계도 없이 자유자재로 비행할 때 거기엔 어떤 법칙도 없고 중심도 없다. 그저 감정의 바람이 있을 뿐이며, 이따금 하나로 뭉친 구름들이 만들어낸 비가 내리거나, 혹은 반짝이는 감각의 빛이 섬광처럼 스쳐 갈 것이다. 이 구름과 저 구름을 서로 구별할 수 있을까. 영화들 사이를 오가는 것은 나를 흘러가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만든다. 그렇다.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은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나는 이 말을 공간적인 자리에 제한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자크 오몽은 약간 웅변조로, 게다가 어떤 예술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닐 뿐만 아니라 특수한 문화적 소양도 없는) 대중 관객이 과거와 최근 작품들을 동등하게 찾아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한 다음 나는 같은 날 저녁에 존 포드와 힛치콕, 오우삼이나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다 함께 볼 수 있으며, 시간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른 스타일 사이를 여행했다고 느낄 것임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 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와 모더니티>) 영화 관람의 새로운 일상생활을 영원한 동시대성이라는 정의 곁에 놓아둘 때 영화는 아무것도 모순되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여기서 임권택 의 영화(들)을 읽는 시간이 바로 지금, 2013년 늦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계절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지금 내 곁을 흘러가는 구름. 나는 막 난니 모레티의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를 본 다음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썼다. 난니 모레티는 처음에 다소 우스꽝스럽게 시작했지만 교황청을 빠져나온 멜빌을 따라가면서 마법에 가까운 운율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바티칸에 갇혀서 교황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리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추기경들이 편을 나눠 배구를 하는 장면들은 이상할 정도로 시적인 감흥이 감돈다. 왜 아무도 이 기적적인 순간을 함께 감탄하지 않는 것일까. 타비아니 형제의 < 시저는 죽어야 한다 >는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영화를 보면 정확하게 거기서 멈춘다. 켄 로치의 <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는 시작하고 15분은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면 여전히 지루하리만큼 계몽적이다. 두 개의 여전한 사이의 불균형한 면적. 그리고 지금 내 눈앞을 지나가고 있는 구름들. 스티브 맥퀸의 < 헝거 >는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 셰임 >은 안전하고 세련되었으며 그만큼 상투적이다. 필요 이상으로 안정적인 균형상태 안의 권태로운 음악들로 이루어진 장식. 런던의 아일랜드인과 뉴욕의 아일랜드인의 차이? 2013년 5월 15일 오후 7시 칸에 자리한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된 < 위대한 개츠비 >는 칸 영화제의 첫 번째 3D 개막작이다.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한 만찬. 끝. 이를테면 작년 개막작인 우디 앨런의 < 미드나잇 인 파리 >와 비교해보라. 물론 지금 (그다음 영화인) < 로마 위드 러브 >가 상영 중이다. 누군가는 두 편의 우디 앨런의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한다. 나는 둘 사이의 차이는 그저 유럽지도 전체를 펼쳐놓은 다음 파리와 로마를 힐끗 쳐다보면서 배치의 공존을 모색하는 지리학적인 거리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할 수만 있다면 뉴욕과 베니스와 파리를 연결한 다음(<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 바르셀로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런던(< 스쿠프 >, < 매치 포인트 >, < 환상의 그대 >) 를 펼쳐놓고 우디 앨런의 유럽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의도적으로 목록을 펼쳐 들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중이다. 아마 여기에 빠진 영화제목이 있을 것이다. 경계선 없는 도시들. 그 사이를 마치 거미가 쳐 놓은 함정처럼 이어지는 선들. 사랑의 선. 질투의 선. 의심의 선. 그때 그 선을 건드리는 것은 우연과 운명이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각자의 존재들 사이의 비평형적 균형. 저 멀리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 시간에 < 안개마을 >을 다시 보고 있었다. 여전히 반짝거리는 정윤희. 때로 어떤 배우는 전혀 연기하지 않는데도 그 존재만으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근처에서 떠도는 구름.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어떻게 해서든 여기 잠시 머물게 하고 싶다. 레오 카락스의 < 홀리 모터스 >는 종종 섬광처럼 빛나며, 때로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복화술사의 테크닉을 이용해서 영화 그 자체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우리에게 내기를 요구한다. 어떤 내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술래잡기. 그때 어디선가 영화의 죽음이 어른거린다. 레오 카락스는 영화를 구하기 위해 밤새 유령을 잡기 위해서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 수평과 곡선. 상승과 추락.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임무이다. 구름들 사이의 대기현상. 하늘의 구름들이 일시에 대지로 내려올 때 거기서 새로운 질서를 보게 될 것이다. 리차드 링클래이터의 < 비포 미드나잇 >은 잘 알려진 것처럼 < 비포 선라이즈 >, < 비포 선셋 >에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물론 리차드 링클래이터가 에릭 로메처럼 사랑의 도덕적 서스펜스를 전개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점심을 먹으면서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산만하고 상투적으로 찍혔다. 자신이 없으면 식탁에 앉히면 안 된다. 하지만 리차드 링클래이터는 일단 걷기 시작하면 설명하기 힘든 매직의 순간을 만든다. 산책의 영화. 걸어가는 영화. 선물 받은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제시와 셀린느가 걸어가면서 대화하는 기나긴 매직 아워는 마치 저물어가는 햇빛을 쫓아가는 것처럼, 때로 즉흥적인 순간에 의지하면서, 종종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연출되었다. 하루의 날씨. 대기의 이동. 제프 니콜스의 < 테이크 쉘터 >는 코엔 형제의 < 시리어스 맨 >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대답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다음 곧 자기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야기? 그렇다. 이 영화는 이미 이야기의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자리에서 아직 구름이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구름의 그림자 아래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영화들 사이에서 마치 구름들처럼 이것 때문에 저것이 안 보이는 경우란 없다. 마치 두 개의 구름이 서로 겹칠 때 번개가 일어나는 것처럼 내가 그 글을 쓸 때 그 영화들은 새로운 영감을 안겨주었다. 그럼 다음 < 울지 않으리 >를 보았다. 상황의 설명. 임권택 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처음부터 만들었다. (지금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은) 두 번째 영화 < 전쟁과 노인 >(1962년) 이후에도 < 전쟁과 여교사 >(1966년), 그리고 < 증언 >(1973년)을 연출했다. 여기에 무장공비나 간첩과 관련된 영화를 포함시키면 셈이 더 복잡해진다. <증언>과 <울지 않으리>와 1960년대 전쟁영화의 차이점은 국가 행정기관이었던 영화진흥공사의 제작으로 만들어지면서 국방부의 실제적인 군부대 지원을 받았고, 그런 까닭에 이 영화들은 당시 정부의 반공정책에 따른 홍보영화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물론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은 임권택만이 아니다. 이만희는 국방부 국군영화 제작소에서 < 고보이강의 다리 >(1970년)을 만든 다음 영화진흥공사 제작으로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년)를 찍었다. 이 목록은 한참 더 이어질 수 있다. 시나리오는 사전 검열을 거쳐 감독의 손에 도착했으며, 그런 다음 완성된 영화는 다시 한 번 검열을 거쳤고, 이렇게 개봉된 영화들은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학생 단체관람을 거친 후에 극장에서 사라졌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사 안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진지한 연구들도 영화들을 정책 홍보의 담론 안에서 제한적으로 설명하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어제 본 영화를 맨 앞에 붙여놓았다. 물론 이 영화가 제작된 배경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 과정을 다른 영화들과 함께 간단하게 당신에게 환기시켰다. 그런 다음 즉시 여기서 제작 과정을 치워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괄호 치기이다. 대신 나는 여기서 질문의 방식을 바꿔볼 생각이다. 우선 간단한 줄거리. 재남은 아직 국민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이다. 병원원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밀려오자 서울에 유학 중인 형과 누나가 내려온다. 할아버지는 집을 지키기 위해서 남고, 식구들은 피난을 떠난다. 그러나 피난길에 아버지는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 어머니는 폭격에 숨을 거둔다. 폭격에 뿔뿔이 흩어진 형과 누나와 헤어진 재남은 오던 길을 되돌아서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고향은 이미 북한군 인공치하가 되었고, 할아버지는 반동 지주로 몰려 강제부역을 하는 중이다. 재남은 동네 아이들과 힘을 합쳐서 마을을 점령한 북한군을 괴롭히고, 여기에 북한군에서 탈영한 동네 아저씨들이 돕는다. 그 사이 서울이 수복되고 북한군은 철수를 결정한다. 떠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려던 음모를 알게 되고, 북한군과 마을 주민들은 밤새 총격전을 벌인다. 아침이 밝아오자 북한군은 물러가고 군인이 된 형과 간호병이 된 누나가 돌아와 재회한다. 자, 무슨 이야기인지도 알겠고 거기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도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효과 전부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 울지 않으리 >를 건드릴 때 정책 담론의 효과를 설명하려는 방법들은 대부분 영화가 자기를 둘러싼 세계의 제도와 정책(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 효과)에 대해서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합되고 그런 다음 증언하는가를 따라간다. 이때 사실상 그 설명들은 영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 이후를 겹쳐놓고 동어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반대로, 하지만 그 안에서, 거기, 바로 거기, 그 영화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무엇이 그 안에서 홀로 말하고 있는가. 틈새들. 하지만 그 균열은 작지만 좁고 깊게 그 안으로 파고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임권택 은 기계적으로, 상투적으로, 자동적으로 시나리오의 서사를 따라가다가, 가끔, 아주 가끔, 갑자기 어느 장면에서, 경험의 존재론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순간의 쇼트를 지금 진행되는 영화의 규칙 바깥에서라도 온 것처럼,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진행에 변형을 가해서라도, 그것을 디테일 안의 표현이라는 방법으로 다시 그려 넣기 시작한다. 줄거리 바깥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단지 디테일이라는 표면 위에서 활동하는 표현의 쇼트들. 그게 너무 이상해서 영화의 다른 전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증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때 이야기는 희미하게 지워지고 마치 그 위에 덧칠을 하는 것처럼 다시 표현되기 시작한다. 지금 영화를 둘러싼 제도의 증언과 그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이야기 속의 증인. 그때 경험의 표현. 좀 더 정확하게 그 시간을 경험한 존재의 증명을 어쩔 수 없이 더하는 표현. 이 쇼트들은 시나리오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야기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인물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건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몸에서 온 체험의 디테일이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울지 않으리>에 국가 정책과 반공 효과는 어떻게 배치되었고, 어디에서 작동을 시작하며, 그 안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지배에 대한 전략적인 비평의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헤게모니를 둘러싼 영화 안의 (지배) 질서에 대한 거절과 저항. 이때 나는 문득 돌아본 다음 질문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참, 임권택은 어디에 있습니까. 불확실성 안에서 진행되는 관계. 이야기 안의 경험이라는 문제. 그리고 그들 사이의 표현. 나는 분석하는 대신 묘사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이라는 인칭, 그것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장면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 이야기를 다루면 그 배경 안에서 피할 수 없게 되는 시간을 바라보아야 하는 순간의 시선. 그때 그 시선으로 이야기의 틈새 사이를 지나가야 할 때, 다소 고개 숙인 시선 아래서 차라리 더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쇼트와 마주칠 때, 바로 그 시간의 쇼트들에서 나는 이 영화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임권택의 흔적을 보게 된다. 말 없는 보충. 남겨진 흔적. 무엇이 거기서 사라졌을까. 그런 다음 무엇이 남겨진 것일까. 산만하게 흩어진 자국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선. 나는 그 선을 따라 그려나가면 거기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그림? 나는 매번 새로운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내게 다소 유머를 허락한다면 지금은 마티스를 떠올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1904년 앙리 마티스가 그의 그림 <사치, 고요, 쾌락>을 그렸을 때 한 말. “나는 지금 내 감각을 조정하는 중이다” Henri Matisse, < Luxe, calme et volupte > < 울지 않으리 >를 다시 보면서 나는 두 장면에서 멈추었다. 비슷한 장면. 이 말의 방점, 비슷한, 이라는 반복의 바깥, 혹은 차이의 디테일. 임권택 이 의도적으로 둘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같은 씬이 두 번 반복된다. 첫 번째 씬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두 번째 쇼트부터 시작되는 첫 번째 대목이고, 그런 다음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거의) 절반에 이르렀을 때 그 씬의 쇼트들이 다시 반복된다. 이때 이 둘은 서로 동등하지도 않고 짝이 맞지도 않는다. 그 둘이 반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이미 본 장면들에 대한 경험의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 비대칭 안의 대비적인 구조는 <울지 않으리>에서 전쟁에 의한 순환의 중단이라는 재난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삶의 탈선. 이때 차이는 역사라는 얼룩에 의한 어두운 바탕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차이를 운반하고 있는가. 그때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가. 그 사이를 연결하면서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두 개의 씬 사이에서 수없이 참혹한 전쟁 장면들을 이미 보았다. 임권택은 그런 다음 전쟁의 효과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효과? 그렇다. 이 무시무시한 말. 영화는 전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당신은 맨 먼저 전쟁의 지각을 떠올릴 것이다. 임권택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경험에 대해서 느껴보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와해되고 어떻게 폐기되고 그런 다음 지워져버렸는가. 영화가 느껴보는 비극. 나는 재남이라고 쓰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 이때 쇼트는 왜 어제를 반복하지 못하는가. 대답. (역사 안의) 전쟁은 지금 영화를 부수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질문. 이때 쇼트는 어떻게 반복하는 일을 멈추는가. 우리는 반대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반복을 봉쇄하는가.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S#13 S#14 첫 장면. 초여름, 조용하고 화창한 대낮. 느리게 수평으로 이동하는 화면(horizontal_pan)은 마치 병풍처럼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아름답다. 이 말의 방점. 과도하게. 이 영화 전체의 얼룩. 금방이라도 지나쳐버릴 것만 같은 평온함. 이런 감흥을 이 영화에서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막 1950년 6월 25일이 지난 다음 월요일일 것이다. 혹은 아무리 늦어도 화요일일 것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북한군은 쳐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금방 그들은 물러갈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늘도 어제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병원에 출근하고, 막내 재남은 학교에 가야 한다. 사람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쇼트. 토끼장 안에 토끼들( S# 1) 그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재남, “튼실한 놈으로 열 마리만 낳으라구, 알았지” 라고 말하면서 일어서는데(hand_held_tilt_up) 어머니가 멀리서(LS) 학교 가라고 이른다.( S# 2) 재남 집의 행랑채에서 사는 성식이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pan_right) 문 저편에 보이는 재남에게(LS) “재남아, 나 먼저 학교 갈께”라고 하자 재남이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S# 3) 마루가 보이는 전경, 아버지와 재남은 각자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S# 4) 아버지 정원을 가로 질러( S# 5) 옆 정원을 돌보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재남 따라와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저 멀리서(LS) 어머니가 따라 나온다( S# 6) 집 대문 앞에서 자전거를 탄 아버지와 재남에게 쫓아온 어머니가 도시락을 건네준다. ( S# 7)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의 뒷모습.( S# 8) 어머니, 그걸 바라보다가 (BS) 손을 흔든다.( S# 9)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 읍내 큰 길에 ‘영광 오토바이’가 보이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지나가는 아버지에게 배앓이 약 처방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 S# 10)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 은화상회, 中央精肉店, 德元商會가 (pan_right) 차례로 보이고 ( S# 11) 慈愛病院 입구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우자 재남은 학교로 간다.( S# 12) 멀리서 대포소리가 들리자 아버지 불안한 표정으로(BS) 돌아본다. ( S# 13) 학교 앞에서 친구들을 만난 재남은 함께 등교하면서 정문까지 걸어간다. ( S# 14) 여기서 평화는 끝난다. 나는 다소 장황하게 두 번째 장면까지의 광경을 설명할 것이다. 당신은 줄거리를 따라오지 말고 이것이 광경의 묘사라는 걸 떠올려야 한다. 사방에서 감도는 피비린내. 그런 다음 우리는 이 영화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찍은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디테일이라는 묘사의 미시적 재현들. < 울지 않으리 >에는 자꾸만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광경의 디테일 속에 들어가 멈칫거리면서 그 안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 진정 그러하다, 는 순간과 만나는 사건들이 나타난다. 경험의 밀도. 기억의 부피. 영화에서 디테일이라는 난처한 개념. 어떻게 이미지의 디테일들은 서사의 흐름을 중단시켜가면서까지 대상의 실감을 자아내는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무리 동화 같은 설정이 벌어져도 거기에 달라붙는 이상할 정도로 사실적인 재현들의 무게. 임권택 과 어린 재민이. 둘 사이에서 공유하는 시간. 학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담임선생님은 불길한 표정으로 아침 조회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처 선생님의 말이 끝기도 전에 가까이서 들려온 포탄소리가 교실 맨 뒤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미화게시판에 걸려있는 그림을 뒤흔들어 한쪽 끝이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전쟁의 신호. 그런 다음 이야기는 무자비하게 진행된다. 할아버지는 집에 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에서 막 내려온 형과 누나와 함께 재남을 데리고 피난을 떠난다. 마치 끊어지지 않는 줄처럼 이어진 수많은 난민들. 길에서 죽은 어머니와 울고 있는 가엾은 어린아이. 기력을 잃은 채 길에 주저앉은 할머니와 어린 손녀. 거기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날 밤 아버지는 길을 막아선 공산군으로부터 중상을 입은 중대장을 치료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다. 갑작스러운 폭격. 마치 세상이 화가 난 듯한 불바다. 어머니는 중상을 입고도 딸을 구하기 위해 후퇴하는 국군 트럭에 그녀만을 실어 보내고 그만 숨을 거둔다. 형은 전쟁에 휩쓸려 피난민을 따라 가족과 헤어진다. 순식간에 모두가 헤어져 버린 가족. 이제 혼자 남은 재남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착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묘를 만들고 우연히 죽은 국군의 시신에서 수류탄이 잔뜩 담긴 가방을 손에 쥔 다음 수차례의 고비를 넘긴 끝에 고향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거기까지 걸어갔으니 아마도 재남은 걸어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떠날 때는 온 가족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재남 혼자뿐이다. 게다가 재남은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신을 모두 본 유일한 증인이다. 재남은 이미 고향을 떠날 때의 그 소년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고, 피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손에 피를 묻혀보았고, 그런 다음 수류탄을 던져서 사람을 죽였다.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S#13 S#14 S#15 S#16 S#17 두 번째 광경은 재남이 다시 돌아오게 된 자기 동네에 들어서는 장면이다. 이때 이 둘 사이에 개입한 시간의 부피는 한국 근대사를 둘로 쪼개는 단절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첫 장면. 살던 동네로 돌아온 재남, 힘없이 걸어간다. (LS)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휴지가 흩날린다.( S# 1) 걸어오는 재남, (frontal_tracking_back) 바람이 분다.( S# 2) 재남이 쳐다보는(point_of_view) 을씨년스럽게 닫힌 가게들 ( S# 3) 걸어가는 재남, 신문지가 재남의 얼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 S# 4) 재남의 시선으로(point_of_view) 德元商會, 中央精肉店이 차례로 보인다.( S# 5) 재남, 달려가기 시작한다.( S# 6) 재남, 읍내 대로변을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LS) ( S# 7) 재남, 집 앞 골목을 달려온다.( S# 8) 재남, 집 대문 앞으로 뛰어 들어간다.( S# 9) 재남, 집 안 마당으로 뛰어 들어간다.( S# 10) 그리고 집을 두리번거리면서( S# 11_12, dissolve) 누가 없는지 둘러본다. 재남을 반기는 건(point_of_view) 토끼장이다.( S# 13) 바라보는 재남, 표정이(CU) 밝아진다.( S# 14) 재남, 토끼장 앞에 서서 (over_the_rabbit’s_shoulder) 새로 낳은 토끼 새끼들을 세어본다.( S# 15) 한 마리씩 세어보는 재남(voice_over/point_of_view) 앞의 토끼들.( S# 16) 재남, 토끼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데 뒤편에서 성식이 재남을 부른다. ( S# 17 ) 먼저 환기할만한 사실. 재남이 고향에 돌아오기 전에 사실상 영화는 이미 돌아온 다음이다. 이 첫 장면 앞의 씬은 고향에 남은 재남의 할아버지가 ‘노력동원’에 끌려가 무거운 통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장면이다. 이때 이 작업은 (첫 장면에서 본 이 마을의 녹음 짙은 풍경과 동떨어진 채) 마치 다른 지역에 끌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다른 ‘반동분자’들과 함께 부역을 하는 중이다. 발은 피범벅이고, 할아버지가 등에 엎쳐 들고 나르는 건 이미 그 나이에 들 수 없는 무게의 통나무이다. 그림자 한 점 없어 쉴 곳조차 없는 벌판. 낯선 장소. 마치 병풍과도 같았던 그 숲과 같았던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더 이상 여기는 낙원이 아니다. 혹은 일상생활의 시간선은 이미 끊어졌고 지금은 역사 안의 함정에 떨어져 그 안에서 견뎌야 한다. 새로운 조건. 임권택은 그렇게 두 개의 씬을 연결하였다. 재남에게 어떤 희망도, 어떤 기대도, 어떤 구원도 서둘러 뺏어버리는 것. 그는 이곳에서 저곳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은 다른 이곳이다. 정확하게 이 두 번째 시퀀스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B_S# 1 A_S# 10 나는 두 개의 시퀀스를 비교하기 위해서 첫 번째 시퀀스를 A라고 부르고, 재남이가 돌아온 시퀀스를 B라고 구별할 것이다. 재남이가 동네에 들어서는 첫 장면은( B_S# 1)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장소를 이동한 다음 원래의 장소로 돌아올 때 마을 전체의 풍경을 보여주는 편이(establishing_master_shot) 쇼트의 진행에서 경제적이며 재빨리 다음 씬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을 통해서 공간적인 지각을 할 수 있게 지형적이며 지표적인 지도를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권택 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게 안에 들어가서 동네로 돌아오는 재남을 보여주고 있다. 텅 빈 동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모두 ‘노력동원’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쇼트의 바로 전 씬. 그러므로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가게 안에 들어가서 재남을 바라보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이미지의 면적은 매우 제한적인 풍경만을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 이상하리만큼 스산한 바람이 불어 휴지들이 흩날린다. 우리에게 읽기를 요구하는 것만 같은 우연한 대기현상의 기호. 이 바람은 물론 만든 것이다. 휘날리는 바람은 동네에 재남이 들어서는 것을 방해라도 하듯이, 혹은 반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제부터 벌어질 나쁜 사건들에 대해서 불길한 예언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재남을 마주 보고 맞은편에서 불어오고 있다. 이 쇼트는 재남이 아버지와 함께 학교 가던 첫 번째 씬에서 집 앞 골목을 막 벗어난 다음 마을 읍내에 들어서던 첫 번째 쇼트와 같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 A_S# 10) 그러나 여기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관계가 개념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형식적으로 마치 오른손과 왼손처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첫 번째, 배치라는 문제. 두 개의 쇼트 모두 마을 읍내로 들어가는 것을 안내하는 첫 번째 쇼트이다. 이것을 만일 풍경으로 찍었다면 우리들은 순간적으로 놓쳤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두 쇼트의 풍경은 정반대로 찍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하나는 평화롭고 행복한 ‘전쟁 이전’ 시간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전쟁 이후’의 풍경이다. 나는 반복해서 이전과 이후라는 말을 꺼내 들 것이다. 임권택은 둘 사이에서 여전히 거기 머물면서 변하지 않는 읍내 가게 공간을 프레임으로 하여 재남이가 읍내로 들어가는 장면의 풍경 입구(introducing_master_shot)를 배치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쇼트는 가게 안에서 재남을 찍으면서 동일한 프레임을 보여주지만 동일한 가게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동일한 구도. 두 개의 쇼트 모두 왼쪽 길에 자리 잡은 가게 안에서 찍었다. 다른 가게. 그 둘은 같은 가게에서 찍으면 안 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우리는 저 멀리 ‘영광 오토바이’가 보이지만 재남이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그 가게가 보이는 그 자리가 아니다. 안 되는 이유. 재남은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첫 번째 장면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이 둘을 동일한 가게에서 찍으면 재남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의 연속적인 쇼트를 집에서 나오는 장면의 역순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문제를 기능상의 문제로 단순하게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남이 같은 길을 되돌아옴과 그 길의 다름은 동일한 과정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이상 동일한 시간의 길이 아닌 것이다. 임권택은 두 개의 쇼트 사이의 거리와 차이 사이에서 그 동일성을 때려 부순 전쟁이라는 효과를 보여주는 중이다. 두 번째, 분배라는 문제. 이야기 안에서 기계적인 운동은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진행될 때 주거나 배분받은 인물이 누구인가 만큼이나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재남이가 아버지와 학교에 갈 때 그들의 자전거 선을 가로막고 나선 사람은 다리를 저는 동네 아저씨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다리를 저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처방해주신 약 덕분에 배앓이가 모두 나았다고 길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까다로운 문제. 재남이와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이 장소를 지나가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쳐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저씨의 장광설은 이 쇼트를 오랫동안 붙잡아 놓는다. 게다가 이 아저씨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더 속도가 느려진다. 나는 이 동선을 반대로 설명하고 싶다. 이 쇼트를 기억하지 못하면 재남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 읍내의 첫 쇼트를 여기서 시작하기 난처해진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기 때문에 쇼트의 프레임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가버릴 것이다. 만일 여기서 쇼트를 나누기 시작하면 동선이 끊어져 버릴 것이다. 하나의 동선. 하나의 운동. 이 곡선을 나누면 안 된다. 다리 저는 아저씨는 여기서 가게 안의 프레임 쇼트를 멈춰 세우는 고정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때 자전거가 프레임을 빠져나간 다음 그 동선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운동으로 이어진다. 임권택 은 쇼트를 나누는 대신 여기서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동으로 줌과 팬을 이용해서 다리 저는 아저씨에게 머문다. 그러나 전쟁 ‘이후’ 다리 저는 아저씨는 ‘지주’인 할아버지를 고발하고 당원이 된다. (그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재남이의 씬에 있었던 아저씨는 재남이 마을 읍내로 돌아올 때 할아버지를 감시하는 자리에서 강제부역이 진행되는 전 씬에 자리하고 있다. 만일 이 아저씨가 당원이 되지 않았다면 있어야 할 자리는 전 씬의 강제부역이 진행되는 황량한 벌판이 아니라 마을 읍내 큰길가에서였을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그가 강제부역 공사장에 있어야 할 자리가 달리 어디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읍내 길가에 서 있다면 반대로 재남의 동선을 다시 가로막고 나섰을 것이다. 하나의 선. 멈추지 않는 선. 끊어지지 않는 선. 우리는 영화에서 동선이라는 문제가 동시에 각자의 자기 자리의 자기 원인의 운동이자 실존의 곡률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B_S# 3 B_S# 4 B_S# 5 B_S# 6 A_S# 11 두 번째 쇼트. 재남은 이 낯선 풍경 앞에서 마을 읍내로 들어선다. 물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영화는 재남을 바라보면서 뒤로(tracking_back) 물러난다. 재남의 표정. 그는 다른 풍경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때 재남을 가로 막아나서는 것은 바람이다. 그의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바람결. 나는 첫 장면에서 이상하리만큼 바람 한 점 없었던 여름날 화창한 기후를 기억한다. 여기서 이 바람은 이상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바람은 비를 불러오기 위한 신호가 아니다. 바람결의 매치 컷. 재남을 맞이하는 것만 같은 바람. 단지 그것이 만들어진 바람이라서가 아니라 왠지 그 장소에 불어오는 바람이 그 쇼트 바깥에서 불어오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바깥의 어디? 이제까지 진행된 전쟁 장면들의 쇼트들 사이의 잔인함과 무심한 순간들의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낸 충돌의 몽타주 효과. 그것이 아니라면 달리 어디서 불어 올 수 있겠는가. 여기에 더해 A씬에서 단 한 번도 자전거의 속도로 카메라가 이동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더도 덜도 아닌 풍경(속의 재남)을 바라보기. 그렇다면 여기서는 왜 재남의 발걸음이라는 속도가 필요해진 것일까. 당신을 환기시키고 싶은 사실.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이야기. 이제부터 우리는 한국전쟁의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재남이 만들어내는 주관적인 이야기의 세계. 만일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재남의 ‘전쟁’은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더이상 이 모험의 선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위기. 새로운 속도. 이때 이 바람을 재남이 고향의 낯선 공기 안에서 느껴보는 감정의 터치라고 말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더이상 마을 읍내의 가게들은 정겨워 보이지 않고( B_S# 3) 지나쳐가는 바람결에 날리는 신문지가 재남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B_S# 4) 마치 그에게 마을 읍내의 풍경을 돌아보기를 요구라도 하는 듯한 일깨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서 보았던 가게의 간판들이 (역순으로) 차례로 보인다.( B_S# 5) 德元商會, 그리고 中央精肉店. 이때 이 쇼트를 전쟁 ‘이전’의 쇼트 맞은편에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전쟁 ‘이전’의 쇼트( A_S# 11)에서 재남은 아버지의 자전거에 실려 이 가게들 앞을 기분 좋게 달려간다. 조금 더 앞부터 시작된 자전거의 운동은 은화상회를 거친 다음, 德元商會, 그리고 中央精肉店을 지나서 간판이 없는 가게 앞을 지나간 다음에도 마치 그 기분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자전거가 빠져나간 다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잠시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순간이 매우 짧은 데도 불구하고 임권택 은 인물이 빠져나갈 때 거기 공백을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이 쇼트의 여분의 지속이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쇼트는 하나로 찍은 쇼트를 찢어놓았다.( B_S# 4_5_6) 이 쇼트의 분리는 반대로 마을 읍내의 풍경과 아버지와 재남을 연결하는 자전거의 동선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지 않으면 하나의 쇼트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만 같다. A_S# 7 A_S# 8 A_S# 9 A_S# 11 B_S# 7 B_S# 8 두 개의 씬, 전쟁 ‘이전’과 ‘이후’에서 한 장소를 반복해서 오가면서 임권택 은 같은 쇼트와 다른 쇼트를 마치 붙였다 떼어놓기 혹은 하나를 다른 하나 위에 겹쳐놓는 것처럼 보인다. 재남이 집을 향해서 달려갈 때 마을 읍내를 수평으로 달려가는 장면( B_S# 7)은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나가던 장면( A_S# 11)을 같은 자리에서 단지 자전거와 재남의 동선을 반대로 하여 다시 한 번 찍은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의 진행에는 단 하나의 어떤 다른 장소의 쇼트도 개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되풀이. 그 둘은 형태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마치 이 길은 집으로 가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 그렇게 하나의 선을 따라간다. 그래서 읍내의 이 길을 벗어나자 다음 장소는 바로 집 앞의 골목으로 이어진다. 골목과 집 앞 대문을 하나의 이미지로 찍은 쇼트는 없지만 이 길은 분명히 집 앞 대문에서 이어져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 ‘이전’의 씬에서( A_S# 7_8_9) 집 앞 대문까지 따라 나온 어머니가 재남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7) 골목 앞을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가는 아버지와 재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8) 손을 흔들 때 ( #9) 그 세 개의 쇼트 사이에서 문 앞에 서 있는 어머니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기 위해서는 시선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개의 쇼트로 진행되는 이 씬을 처음 보았을 때 운동의 연속성을 지연시킬지라도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버지와 재남을 마을 읍내로 보내기 위해서 어머니의 손짓이 둘 사이를 면과 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invisible_cut)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집합의 다리(transitional_shot)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문제를 기능적으로만 바라보면서 ‘엄마의 클로즈업’이라는 정감이 가져다주는 씬 전체 안에 놓인 관계의 도약을 놓쳤다. 이 자리가 분명해지는 순간은 재남이 전쟁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사라진 쇼트 안에 있다. 구멍 뚫린 씬. 그 쇼트는 거기 있지 않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거리를 두고 자기의 존재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서술의 목소리. 나는 그 바깥의 체험을 사라진 쇼트 안에서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남이 집에 가기 위해서 집 앞 골목으로 뛰어오는 장면은 ( B_S# 8) 재남이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던 그 장면 ( A_S# 8)과 같은 프레임이다. 다만 둘의 차이는 온다, 와 간다, 는 반대 운동방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어머니의 손짓 장면을 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 가지 가능성은 가까스로 남아있다. 그건 재남이 환상을 동원해서 어머니의 손짓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동원하면 재남은 어쩔 수 없이 환상이 요구하는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결과는 지금보다 더 가련해진다. 재남은 전쟁 ‘이전’과 ‘이후’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남은 이제 자기만의 전쟁을 시작할 명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임권택은 그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였다. 재남은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아버지 곁에 묻고 지금 여기에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더이상 재남이 (환상 안에서) 진행해야 할 행위의 줄거리는 남아있지 않다. 매장이라는 문제. 나는 따분하게 여기서 억압의 귀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A_S# 7 B_S# 9 B_S# 17 이때 내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사라진 쇼트가 아니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이 두 개의 씬, 그러니까 전쟁 ‘이전’과 ‘이후’의 씬은 사라진 쇼트와 비슷한 쇼트 사이, 이 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짝을 찾아가고 있다. 이 둘 사이에서 공명을 느껴보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진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놓여있는 전쟁이 없다면 반대로 그 둘은 아무런 진동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 둘 사이의 플래시백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임권택 은 여기서 어떤 사건, 어떤 줄거리, 어떤 설명을 하는 대신 그냥 간단하게 성립이라는 질문을 던져본 다음 동일한 쇼트의 재현이라는 요구의 불가능을 마주하게 만든다. 재남이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쇼트( A_S# 7)는 재남이 집에 도착하는 장면( B_S# 9) 과 동일한 장소지만 동일한 프레임이 아니다. 왜 두 개의 쇼트는 동일한 쇼트 대신 비슷한 쇼트라는 방법으로 짝을 이루는 것일까. 이 세 개의 쇼트와 두 개의 쇼트는 그 둘을 비교할 때 동선의 방향이라는 질문 앞에서 갑자기 부서진다. 우리는 영화가 물리적인 예술이며, 장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뇌 위에 펼쳐지는 상상적인 지도를 만든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반복된 설명(을 통한 문제제기). 재남과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골목과 재남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은 같은 골목이며 같은 방향에서 (거의 같은 자리에서) 찍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의 손짓과 눈길로 이 골목과 집 대문의 선에 대해서 이미 설명했다. 전쟁 ‘이전’의 쇼트만으로 이 선을 따라가면 이 골목은 집 대문을 정면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이다. 그러나 재남은 이 골목을 따라 어떤 우회도 없이 일직선으로 수직으로 집 대문을 향해 뛰어간다. 동선으로만 설명하면 이 두 개의 골목은 서로 다른 골목이다. 첫 번째, 오로지 기능적인 설명. < 울지 않으리 >는 시네마스코프로 찍었고, 자전거에 재남을 태운 다음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로 이 프레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수평의 구도가 필요해졌다. 이렇게 설명하면 재남이가 돌아오는 쇼트는 완전하게 잘못 찍힌 동선이다. 자동적인 설명. 그렇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두 개의 쇼트는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재남의 동선을 연결하기 위하여 곡선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혹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둘 사이에 직선을 그은 다음 180도를 기준으로 하여 연결시킨(match_cut)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걸 경로적 공간으로 재 정의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전쟁 ‘이전’과 ‘이후’의 두 개의 시퀀스가 진행되는 과정이 단순히 역순을 밟아나가는 대신 사라진 쇼트와 비슷한 쇼트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왜 두 개의 씬은 함께 가능하지 않을까. 하나의 세계에서 가능했던 쇼트가 다른 세계에서는 불가능해질 때 우리는 그 둘 사이에 놓인 칸막이로서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장면들은 지금 공간적인 특징을 따라오는 대신 재남이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풍경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남이가 이 동네로 들어올 때 부는 바람은 달리 설명될 수가 없다. 마치 재남의 마음으로부터 불어온 듯한 바람. 게다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은 마을 읍내. 어른들은 부역에 모두 끌려 나갔다고 반문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제부역 현장에서 단 한 명의 여자도 보지 못했다. 재남의 할머니가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부역장을 찍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재남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그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고 주장하려면, 혹은 그 시간에 모두 학교에 있었다고 가정하려면, 그와 동시에 재남이 집에 들어선 다음 토끼장 앞에 섰을 때 행랑채에 살던 성식이는 왜 그 시간에 집에 있었는지를( B_S# 17)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둘 중 어느 쪽이 재남의 주관적인 풍경이라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 부분적으로 풍경 안에 주관적인 디테일의 삽입이라는 방식으로 외상의 얼룩을 더해놓았다. 이를테면 전쟁 ‘이전’의 과잉할 정도로 평화로운 낙원에 가까운 풍경. 반대로 전쟁 ‘이후’의 인공적으로 삭제시킨 낙원의 디테일들. 그 안에서 종종 비정상적인 운동이 그 내부의 배치 사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B_S# 10 B_S# 11 B_S# 12 B_S# 13 B_S# 14 B_S# 15 집을 나서는 장면과 돌아온 장면의 차이. 재남이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장면이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 반복될 수 없는 것은 두 쇼트 사이의 크기가 불러일으키는 같은 장소의 다른 조건이다. 그저 힐끗 보는 것만으로 느껴보는 두 쇼트 사이의 차이는 마치 전쟁 ‘이전’의 쇼트를 ‘이후’의 쇼트는 확대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두 쇼트는 카메라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확대하여 촬영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모두를 건드려볼 필요가 있다. 전쟁 ‘이전’의 쇼트는 가벼운 이동 사이에서 집 대문을 열어 놓고 어머니를 왼쪽에 세운 다음 아버지와 재남의 자전거를 오른쪽에 세웠다. 물론 세웠다는 표현은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막 병원(과 학교)로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 세 사람을 뒤로하고 집 대문은 활짝 열려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하루. 누구라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문. 물론 이 장면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누구라도 이 세 사람의 가족에게 모여 있기 때문에 그 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쟁 ‘이후’의 장면은 여기서 재남의 집 대문과 지붕이 담길 만큼 뒤로 물러서서(long_shot) 찍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집 대문을 중심으로 한 전체의 모습. 이건 지금 이 집의 흉한 몰골을 보라는 이미지이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고 있을 것만 같은 집. 이때 초여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 집의 행랑채 창문은 닫혀있고, 오른쪽에 자리한 쪽문도 단단히 닫혀 있다. 그런데 왜 대문은 열려있는 것일까. 그 말은 이 집을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재민이가 피난을 떠날 때 그대로의 집.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는 집. 연신 땀을 닦고 있는 재민의 제스처. 그렇게 힘들게 재민이 먼 길을 돌아 돌아왔는데도 누구도 반기는 사람이 없는 집. 대문이 반쯤 열려있지만 마치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문 안의 벽은 우리가 전쟁 ‘이전’의 쇼트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마치 모두가 어디로 가버린 것만 같은 집. 집에 들어선 재남은 텅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 B_S# 10_11_12)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토끼장을 바라본다. ( B_S# 13_14_15) 이 쇼트는 물론 영화의 맨 첫 장면으로 되돌아온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한다. 이중의 용례. 나는 위험한 자리에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모두들 들어서기를 두려워한 시작. 임권택 의 영화를 다룰 때 < 증언 >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국책영화에 대해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한다. 종종 임권택의 60년대 영화들, 이를테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로 이어지는 다찌마와리들, 그리고 < 황야의 독수리 >와 함께 하는 만주 웨스턴들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던 관대한 대중영화의 친구들마저 1970년대 정책영화들 앞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심지어 임권택 자신도 이 영화들에 대한 대답을 미루거나 혹은 종종 피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마주 볼 생각이다, 그리고 마주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생각이다. 모델? 그렇다. 나는 지금 이브 알랭-브아를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프리모 레비의 증언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서 살아남는 것, 그런 다음 연좌제의 그늘 아래서 1970년대 반공국가의 독재를 통과해온 삶. 이 둘이 서로 비스듬하게 겹칠 때, 결국 이 모든 것은 다시 삶의 문제이다. 나는 이 질문을 외상적 증후의 과도한 도식으로 만드는 것에 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희생이라는 방법으로 살아가기. 그 안의 임권택. 영화를 저들의 것에서 다시 나의 것으로 되돌리는 순간, 바로 예외적 순간만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가능하게 열어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예외적 지위에 놓여있는 쇼트들. 굴복하지 않는 쇼트. 나는 지금 1970년대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계속) 1974년 11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영화진흥공사 각본 신봉승 윤삼육 나한봉 촬영 박승배 조명 박태수 편집 김창순 음악 한상기 이승현 재남 황해 할아버지 김진규 아버지 문정숙 어머니 박지훈 재석 김영숙 지은 이일웅 칠용 추석양 다리 저는 동네 아저씨 독고성 공산당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