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캐서린 휠
- 감독
- Twyla Tharp
- 제작년도
- 1982
- 출연
- Sara Rudner, jennifer Way, Katie Glasner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 >(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 13일의 금요일 >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 나 홀로 집에 >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 미녀 삼총사 >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 디스 민즈 워 >(2012) < 쓰리데이즈 투 킬 >(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구니스 > < 그렘린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 폴터가이스트 >(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 스크림 >(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와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 스타 트렉 >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 인디펜던스 데이 >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 배틀스타 갈락티카 >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 위험한 청춘 >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블레임 > <아인> < 사이보그 009 >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 사탄의 베이비시터 >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로 오세요. 강렬한 태양 아래 해변은 매혹을 뽐내고, 오렌지밭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일자리는 넘치고 땅값은 쌉니다. 모든 시민들이 집을 소유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어요.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또 누가 알아요? 감독에게 픽업돼 배우가 될지. 아니면 적어도 스타 한 명은 마주치겠죠. LA에서의 삶은 멋집니다. 지상낙원이니까요. 하하하. 겉보기는 그렇죠. 영화나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그런 이미지를 팔고 있으니까요. 인기 절정의 드라마 <영광의 뱃지>에서도 경찰들은 활보하며 도시의 범죄자들을 소탕합니다. 맞아요. 하지만 여러분의 생각과 달리 이 에덴의 동산에도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마이어 해리스 코헨, 일명 ‘미키 C’로 통하는데 그가 LA를 장악하고 있어요. 미키는 범죄조직의 대부로 마약, 밀수, 매춘에 손대고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을 살인하면서도 격조 있는 삶을 누리고 있죠. 신문 일면을 장식하는 그의 얼굴은 LA의 수치입니다. 가장 치안이 좋은 도시에 조직범죄라니 말이 됩니까? 그래서 대책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독창적이진 못했죠. 할리우드니까요. 알 카포네에게 했던 대로 미키에게 했을 뿐입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미키의 구속으로 힘의 공백이 생겨났고, 누군가가 또 그 공백을 메꾸려고 할 테니까요.” 도입부 내레이션은 영화의 시대상을 명료하게 함축한다. 향락과 비리, 부패, 범죄가 판치는 도시. 1950년대 LA는 누아르 그 자체였다. 「L.A. 컨피덴셜」 1951년부터 58년까지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세 명의 형사가 하나의 사건을 수사해가는 「L.A. 컨피덴셜」을 영화화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이 방대한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을 두세 시간이란 한정된 분량 안에 녹여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한계에 도전한 무모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전까지 흔하디흔한 스릴러를 연출해오던 감독 커티스 핸슨과 호러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경력을 시작한 브라이언 헬겔랜드였다. 제임스 엘로이 소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그들은 2년에 걸친 시간 동안 이 작품에 몰두하며 일생일대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의 각색은 놀랄 만큼 함축적이고 영리했고, 영화는 1998년 거의 모든 비평가협회의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을 휩쓸며 최고의 영화로 추앙받았다. 비록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던 제임스 카메론의 < 타이타닉 >으로 인해 아카데미에서 고배를 마시고 흥행에서도 외면받았지만, 러셀 크로우와 가이 피어스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세상에 인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왕년의 섹시스타 킴 베이싱어에게도 수많은 여우조연상을 안기며 그 가치와 안목을 입증했다. 마치 1950년대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이 불세출의 네오누아르는 고전보다 더 고전적인 스타일과 이야기를 과시하며 탄생하자마자 걸작이 되었다. 그 바탕에는 뛰어난 촬영과 편집, 미술과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황홀한 음악이 존재했다. 제리 골드스미스 < LA 컨피덴셜 >에서 음악이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었다. 그 시대상과 분위기를 단번에 녹여내기 위해 당대의 히트 넘버들이 사용되어야 했다. 커티스 핸슨 감독은 시나리오를 작업하며 영화에 삽입될 곡들을 한 뭉텅이 선곡해놓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받쳐줄 스코어였다. 삽입곡과 궤를 같이하며 분위기를 그대로 연장시킬 수 있는 곡, 그리고 거기에 액션과 스릴, 캐릭터들의 감정까지도 표현해줄 수 있는 그런 풍부하고 변화무쌍한 곡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커티스 핸슨은 바로 전작 < 리버 와일드 >를 같이 한 제리 골드스미스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동부에 존 윌리엄스가 있다면 서부엔 제리 골드스미스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마에스트로 중 하나. 그는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1950년대 LA에서 영화음악을 시작한 이 분야의 대가였고, 수정주의 누아르이자 필름누아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 차이나타운 >의 사운드트랙을 직조해낸 바 있는 장인이었다. 골드스미스는 감독이 준비해놓은 곡들의 면면을 살펴봤고, 쳇 베이커나 바비 하켓의 곡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트럼펫 선율을 메인 모티브로 잡아 세밀하게 삽입곡과의 간극을 좁혀나갔다. 따라 스코어 전반에 걸쳐 쿨한 트럼펫의 음색이 연신 흐르고 있고, 타악기처럼 활용된 낮고 격정적인 피아노와 강렬한 퍼커션은 영화의 인상적인 음영을 그려 넣었다. 그것은 마치 <차이나타운>의 재림과도 같았다. 애수 어린 트럼펫과 낮고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피아노의 리드미컬한 터치는 두 작품 다 공통적으로 나타난 요소들이었다. 다만 조금 로맨틱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지독하게 허무한 감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차이나타운>과 달리 <LA 컨피덴셜>의 음악은 지극히 남성적이고 폭력적이며 투박한 어둠의 그림자와 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패배의 기운이 가득했던 <차이나타운>의 씁쓸했던 뒷맛과 다르게 <LA 컨피덴셜>에선 (비록 상처투성이긴 하지만) 달달한 승리의 결말을 안겨준다는 것 또한 큰 차이다. 이는 원작과 비교해도 달라진 부분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모던한 누아르로서 성장을 의미하는 동시에 달라진 시대상을 적극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는 골드스미스가 20여 년 만에 누아르로 복귀한 스코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낮고 서늘한 브라스는 불길한 징조처럼 사건을 암시하거나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악의 근원처럼 스멀스멀 울려 퍼지기도 하고, 규칙적인 일렉트릭 비트와 팀파니 등 다양한 퍼커션의 향연은 그 시대의 혼돈과 무질서를 상징하며 영화의 다이내믹한 면을 부각시킨다. 특히나 영화의 주된 테마로 등장하는 ‘The Victor’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유일하게 담당했던 정극 < 워터프론트 >의 테마를 인용해 만들어진 곡으로 초반 트럼펫 솔로 모티브가 유사하다. 하지만 이내 독자적인 색채를 띠는데, 이는 마치 < 토탈리콜 >에서 바질 폴두리스가 작곡한 < 코난 > 메인 테마의 퍼커션 라인을 가져와 자기 스타일대로 변주한 방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뉘앙스를 선사하는 이 독특한 오마주는 그의 동료들에 대한 색다른 칭송이자 헌화이기도 하다. 삽입곡들이 주로 대화 씬에 배치돼 사건을 이끌어가거나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면, 그의 스코어는 긴장과 갈등이 부딪치는 액션 씬과 전조를 알리는 브릿지 등에 흐르며 포괄적으로 상황을 아우른다. 삽입곡에 밀려 스코어의 비중이 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베테랑답게 이 어려운 감독의 요구에 응하며 누아르에 어울리는 끈적하고 강렬한 톤의 만가(輓歌)를 완성해냈다. L.A. 컨피덴셜 사운드트랙은 90년대부터 보편화된, 삽입곡 위주의 컴필레이션 앨범과 골드스미스가 작곡한 스코어 앨범, 2장으로 나눠 발매되었다. 상업적인 이유로 발매되던 여타의 컴필레이션과 달리 < LA 컨피덴셜 >의 경우는 두 앨범을 모두 접해야 완벽한 영화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데, 2장 다 러닝 타임이 30분 정도에 불과해 모든 곡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컴필레이션 앨범 맨 앞에 실린 ‘Badge of Honor’는 스코어 앨범에도 실려 있지 않은 제리 골드스미스의 히든 트랙이자 보너스로, 영화상에 등장하는 인기 절정의 드라마 <영광의 뱃지>를 위해 작곡된 가상의 타이틀곡이다. 알다시피 그의 초기 경력인 1950년대엔 이런 TV 범죄물의 음악들을 여럿 담당했던 적이 있는 터라 정확한 고증이 따로 필요 없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모든 크레딧이 올라간 뒤 쿠키 영상으로 이 <영광의 뱃지> 타이틀 화면이 나오기도 하니 제법 친절하고도 쏠쏠한 팬 서비스인 셈이다. 오프닝 내레이션이 나올 때 흐르는 조니 머서의 ‘Ac-Cent-Tchu-Ate the Positive’를 비롯해, 차트 넘버원을 기록한 케이 스타의 ‘Wheel of Fortune’, 딘 마틴의 미공개 발표곡 ‘The Christmas Blues’ 등 올드 팝의 정수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단지 이에 그치지 않고 각 상황에 맞게 배치된 곡이 캐릭터들의 상황과 심경을 묘사하고 있는 터라 더욱 의미심장하다. 스타 형사 잭을 처음 소개하는 장면에선 ‘Oh! Look at Me Now’가, 버드에게 신문지 속에 감춰진 총과 뱃지를 돌려줄 때는 ‘Look for the Silver Lining’이, 미키 코헨의 부하들을 처단하는 장면에서는 ‘Hit the Road to Dreamland’가, 린과 버드의 관계에 질투심을 느낀 에드가 린을 강제로 안을 땐 ‘But Not For Me’가, 자기혐오에 빠져 술을 마시다 거울을 바라보는 잭의 얼굴 위로 ‘Powder Your Face With Sunshine’이 나오는 식이다. < LA 컨피덴셜 >은 그간 잠자고 있던 누아르를 다시 현재에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이는 뛰어난 배우들과 훌륭한 원작, 영리한 각본에 정공법적인 연출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의 승리다. 현재 관객들이 이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도록 잘 설계된 삽입곡과 제리 골드스미스의 탁월한 스코어가 완벽하게 그 세계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올해는 제리 골드스미스가 타계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자 그의 탄생 85주년이 되는 해. 그의 부재가 새삼스레 아쉽게 느껴진다. (영상도서관에는 컴필레이션 앨범(F-0554)만 접할 수 있다.) The Victor Track List (Score Album) 1. Bloody Christmas 2. The Cafe 3. Questions 4. Susan Lefferts 5. Out of the Rain 6. Rollo Tomasi 7. The Photos 8. The Keys 9. Shootout 10. Good Lad 11. The Victor (Compilation Album) 1. Badge of Honor - Jerry Goldsmith 2. Ac-Cent-Tchu-Ate the Positive - Johnny Mercer 3. The Christmas Blues - Dean Martin 4. Look for the Silver Lining - Chet Baker 5. Makin' Whoopee - Chet Baker & The Gerry Mulligan Quartet 6. Hit the Road to Dreamland - Betty Hutton 7. Oh! Look at Me Now - Lee Wiley 8. The Lady Is A Tramp - The Gerry Mulligan Quartet 9. Wheel of Fortune - Kay Starr 10. But Not For Me - Jackie Gleeson 11. How Important Can It Be - Joni James 12. Looking at You - Lee Wiley 13. Powder Your Face With Sunshine - Dean Martin 14. L.A. Confidential - Jerry Gold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