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 Magdalena
- 감독
- 프란츠 자버 크루츠
- 제작년도
- 1974
2018년 봄 “요즘 특별한 일 있어요?” “요즘요? 바빠요. 부산, 광주, 대전… 강연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어요.” “강연요?” “북한 바로 알리기 강연요.” 그녀는 북에서 왔다. 평양엔 지금도 딸과 남편, 부모님이 살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녀의 강연을 몇 번 촬영했던 터라 그녀가 강연을 하러 간다는 말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부산, 울산, 서울에서 강연이 있어요. 그리고… 참,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는 합창 연습해요. 615 합창단…” “합창연습요?” “5월에 615 합창단이 일본에서 재일동포 대상으로 공연을 해요. 매년 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저도 가려고요.” “여권 없이 어떻게 가요?” 그녀에게는 여권이 없다. 많은 다른 탈북자들처럼 그녀는 중국,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그녀를 다시 평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저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속았어요. 남한에 가서 두세 달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러고 나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어요. 가족과 헤어지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그 후로도 그녀는 지속적으로 송환을 요청했고, 신원 특이자로 분류되어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8년째다. “아는 분 통해서 알아보니까 여권이 4월에 나온다고 해요.” 여권이 나온다고? 카메라를 챙겨 그녀가 합창연습을 한다는 서대문의 연습실을 찾았다. 2015년 여름, 그리고 가을 2015년 여름 경상북도 영천의 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지게차를 운전할 정도로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일간지 신문 1면에 실린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놀라웠고,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인터뷰를 했던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했던 그녀는 여권위조, 밀항과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는다는 생각으로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후 통일 운동, 인권 운동을 해왔던 시민단체가 그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산 적십자사 앞에서, 종로 유엔 인권사무소 앞에서,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했다. 한편 그녀는 북쪽의 삶을 궁금해하는 남쪽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겨울, 그녀에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혼자였어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고… 이제는 희망이 생겼어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도 그녀를 취재했다. 그녀의 ‘조국’도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송환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희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듯싶었다. 2016년 봄 2016년 3월 어느 날, 그녀는 가방을 가만히 쌌다. 그날 저녁,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가기를 수십 년 동안 갈망해왔던, 서울에서 함께 지내던 장기수 어르신들께 평양식 국수를 대접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조그만 배낭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녀가 간 곳은 주한베트남대사관. 그녀는 망명을 신청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잖아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저의 망명을 받아주지 않을까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대사관의 담당자는 그녀에게 몇 가지 사실 확인을 한 후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드디어 고향에 있는 딸을 볼 수 있겠구나. 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하세요. 평양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난 그 자리를 나왔다. 그녀의 망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베트남 대사관 앞에는 취재진과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닫혀 있는 육중한 대사관 문 너머로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망명을 신청한 사람한테 집에 가서 기다리라니… 그리고 어떻게 대사관에 경찰을 부를 수가 있어?” 그녀는 울부짖었다. 대문으로 나오는 그녀를 취재진이 감싼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잠시 후 경찰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주거침입 등으로 신고를 받았다. 차후에 소환장을 보낼 테니 소환에 응해 달라.”는 말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의 망명은 실패했다. 2016년 여름, 그리고 가을 베트남대사관 망명 실패 후 경찰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고’ 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라고 경찰은 그녀에게 말했다. 힘든 하루하루였다. 희망이 사라진 듯했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싶어서 그녀는 고향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들은 중국에서 브로커 감시하에 함께 공동생활을 하다가 대한민국으로 건너왔기에 그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갈 거야.” 가족과 같이 살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게 낫고, 죽으면 몸이라도 고향에 돌려 보내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서라도? 죽는다고 해도 그 몸이 북쪽으로 갈 수가 없어.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지금은….”라거나 “순진하네. 아직 고생 덜했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그녀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갑자기 들이닥쳤어요, 수십 명의 경찰이….” 경찰은 베트남대사관 주거침입 등으로 그녀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그녀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내가 4시간을 운전해서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2016년 겨울, 2017년 봄 그리고 2018년 2016년 겨울과 이듬해 봄은 온 나라가 촛불 정국이었다. 이 땅의 부패한 정권이 무너지는 역사를 그녀도 목격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그 정권은 북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라 그녀는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곧 돌아가겠네요.’라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는 극단을 치달을 기세였고, ‘올해는 갈 거 같네요.’ 라던 그녀는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해가 바뀌자 거짓말처럼 정세가 바뀌었다. 남북관계는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북측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했고, 북측과 남측의 공연단이 평양과 서울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제 곧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남북 당국은 그녀의 송환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요… 희망이 아니라, 돌아가는 게 기정사실같이 생각돼요. 가면 생각 많이 날 것 같아요. 저를 도와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게 제일 아플 것 같아요. 감독님과도 헤어져야 할 테고...”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듯싶었다. <그림자꽃>, 그녀의 봄을 기다리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을 때 제목은 ‘달의 바다’였다. 지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달은 한 면뿐이고, 그 반대편 달 표면은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사실, 그 반대편 달 표면을 일컫는 용어가 ‘달의 바다(Lunar Maria)’다. 사람이든, 사회든, 자연이든,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그녀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탈북자, 북한,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이 보이지 않을까? 남북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한 개인의 소망조차 그 틀 안에서 판단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림자꽃>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탈북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한 가지밖에 없을까? 그녀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정부의 여러 기관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가족에게 돌려보내달라는 것, 그 마음을 잘 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보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분단이 죄지….” “돌아가면 관광 가이드 하고 싶어요. 제가 남쪽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남쪽에서 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평양을 안내하는 일, 멋지지 않아요?” 그녀도 돌아가고, 다큐멘터리도 잘 완성되고… 이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평양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지나친 욕심일까?
애초 작성한 리스트에는 23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0편만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여러 편의 영화를 제외해야 했다. 2014년의 영화로 선택한 < 보이후드 >의 리뷰에 앞서 전체 리스트를 수정 공개함을 알려 드린다. 이용철 영화평론가의 23편 2014년의 영화 보이후드 Boyhood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다섯 편의 장르영화 나를 찾아줘 Gone Girl , 데이비드 핀처, 2014 더 홈스맨 The Homesman , 토미 리 존스, 2014 다크 밸리 Das Finstere Tal , 안드레아스 프로차스카, 2014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 마틴 스콜세지, 2013 콜드 인 줄라이 Cold in July , 짐 미클, 2014 로버트 패틴슨이 나온 두 편의 영화 더 로버 The Rover , 데이비드 미쇼드, 2014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4 다섯 편의 아트하우스 더 원더스 Le meraviglie , 알리체 로바허, 2014 도원경 Jauja , 리산드로 알론조, 2014 실스 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 올리비에 아싸야스, 2014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 장 뤽 고다르, 2014 에덴 Eden , 미아 한센 로브, 2014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땅 Pays Barbare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위로공단 , 임흥순 , 2014 두 편의 한국 드라마 절경 , 남근학 , 2014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 2014 여섯 편의,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한 영화 호스 머니 Cavalo Dinheiro , 페드로 코스타, 2014 사랑스러운 자매 Die Geliebten Schwestern , 도미닉 그라프, 2014 프랑스 공주 La Princesa de Francia ,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아프리오리 Mula sa kung ano ang noon , 라브 디아즈, 2014 신이 되기는 힘들다 Trudno Byt Bogom , 알렉세이 게르만, 2014 위플래쉬 Whiplash , 데미언 차젤, 2014 (링클레이터는 < 스쿨 오브 락 >의 개봉 후에 아역 배우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 도중 그 편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멋진 시간을 함께 보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배우의 길을 걸어가라고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인생에서 보낸 하나의 좋은 챕터가 곧 가장 좋은 시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신 곁에 머무는데, 나는 그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긍정적인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그게 완성된 것이 아닌 경험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부모의 이혼으로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는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멀리 알래스카에서 일한다고 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엄마는 공부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친정이 있는 휴스턴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아빠도 근처로 거처를 옮긴 차였다. 이후 12년 동안의 시간 흐름을 담은 < 보이후드 >는 제목 그대로 메이슨의 소년기이자 누나 사만다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의 기록이다. 촬영은 실제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사실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감탄을 불러낼 만하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비포 연작’을 통해 (동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그리고 < 스쿨 오브 락 >(2003)이나 < 배드 뉴스 베어즈 >(2005)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 때면 어김없이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사람이다. 그에게 <보이후드>가 뜬금없는 작업이 아니란 이야기다. 기실 영화가 12년 정도의 시간 흐름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열광할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앱티드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지나도록 ‘업(Up) 연작’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소년의 성장을 20년 넘게 극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또 어떤가. 그래서 <보이후드>에서 우선 관심이 갔던 것도, 시간 속에서 인물을 포착하는 감독의 태도였다.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된 ‘업 연작’은 매번 유명한 문구 - ‘7살 때까지 아이를 맡겨 달라. 그러면 인간을 보여주겠다’ - 로 문을 연다. 이 문구를 살짝 바꾸면 곧 < 보이후드 >의 모토가 된다. ‘7살짜리 꼬마를 맡겨 달라. 그러면 소년 시절을 보여주겠다.’ <보이후드>를 본 평자들은 누구나 ‘업 연작’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링클레이터 또한 인터뷰에서 앱티드의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2012년의 <56 업>까지 매 7년마다 한 편씩의 영화로 발표된 ‘업 연작’은 현실의 인물에서 ‘가족, 친구, 애정, 교육, 계급, 타자, 빈부, 정치, 기회, 종교, 도덕, 꿈’을 읽어내 영국의 미래를 논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대한 실험장으로 발전한 ‘업 시리즈’의 감동은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신비롭게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삶의 전개 방향이야말로 다큐멘터리로서 ‘업 시리즈’가 드러낸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보이후드>의 주인공 엘라 콜트레인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6살 아이였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12년 사이에도 배우로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이후드>는 콜트레인과 직업 배우들이 서로 소통하며 찍은 반 다큐의 느낌을 준다. 링클레이터는 매해 소년에게 일어난 변화를 영화에 반영했음은 물론 콜트레인이 직접 소년기의 대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업 연작’이 시간의 경과 위로 사회와 문화의 지도를 그리려 한 작품이라면,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얼굴 그리기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긴 세월에 걸쳐 콜트레인이라는 배우와 메이슨이라는 인물이 은연중에 작가처럼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의 성장을 연대순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 보이후드 >는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트뤼포는 앙투안 역할을 맡을 배우로 어린 장 피에르 레오를 선택했고, 감독과 배우와 인물이 어우러진 다섯 편의 영화 - < 400번의 구타 >(1959), < 앙투안과 콜레트 >(1962), < 훔친 키스 >(1968), < 부부의 거처 >(1970), < 사랑의 도피 >(1979) - 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런데 트뤼포 자신이 말했듯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드라마이며, 그러한 성격은 <보이후드>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향점과 어느 정도 상치되는 부분이다. 꼭 그 점이 아니어도 나는 <보이후드>와 비교되어야 할 작품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이 아니라 장 외스타슈의 < 나의 작은 연인들 >(1974)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년 다니엘의 딱한 형편은 <보이후드>의 메이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니엘은 할머니와 살다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게 된 소년이며, <나의 작은 연인들>도 소년 다니엘이 성장해 어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단, 외스타슈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링클레이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후드>와 상반되게) <나의 작은 연인들>은 극 중 소년의 외모가 별로 변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며 외부의 세계와 단절된 인상을 강화한다.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나의 작은 연인들>을 굳이 불러내 비교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짧은 장면 때문이다. 다니엘은 한 소녀와 노변 풀밭에 누워 있다. 곧 어른이 돼 순수의 시대와 작별을 고할 소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다. 이 장면은 <보이후드>의 첫 쇼트 - 여섯 살 메이슨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흡사 링클레이터는 고통스럽고 아픈 소년 시절을 보낸 다이넬의 시간을 돌려 메이슨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른 태도로 새롭게 쓰려는 듯하다. 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애쓴다. 자신을 포함해 당신들도 소년 시절의 통증을 겪었음을 알고 있는 까닭에, 극에 뛰어들어 아파하는 척하지도 않는다. 링클레이터 영화의 특징은 ‘단순한 자연미’다. 장르 영화를 찍을 때도 그렇지만, 그것이 더 잘 드러나는 경우는 그만의 소품을 찍을 때다. < 비포 미드나잇 >(2013)이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해보라. 영어에 ‘Don’t make a scene(야단법석을 떨지 마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의미는 달라도 링클레이터 영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매년 사나흘 동안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여 15분 분량의 촬영을 거듭한 < 보이후드 >에는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업영화로서 너무 심심해 보일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어느 날 어느 십 대 소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한 장면을 손질하지 않고 내놓는 것, 그 이상을 영화는 욕심 내지 않는다. 지금 장면이 어떤 해에 벌어진 일인지 구분해 밝히지 않기에, 흐르는 음악과 열중하는 게임과 구경 간 스포츠 경기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대충 어느 정도 지점의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보는 실수를 하는데도 숨기지 않아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모를 비롯한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소년이 겪을 성싶은 일들이 그저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다인 것 같은데 <보이후드>는 시간의 에센스를 놓쳤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건 소년의 얼굴 덕분이다. 그냥 몸이 커지고 머리 스타일이 바뀌는 게 다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흘린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메이슨의 얼굴에 자국을 남긴다. 16살 생일을 맞는 해에 메이슨의 얼굴은 밉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했던 콜트레인은 무슨 일인지 잔뜩 우울한 표정과 지저분한 얼굴로 메이슨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사춘기여서 그랬을 터인데, 링클레이터는 일부러 예쁘게 분장하지 않았고, 콜트레인도 통과 중인 시기가 입혀준 표정을 거짓 마스크로 가리지 않는다. 링클레이터는 < 보이후드 >를 찍는 과정이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상영시간이 165분인 영화가 대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막을 내릴까. 평범한 영화였다면 메이슨이 차를 몰고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끝났을 것이다. <보이후드>로 인해 유명해진 인디그룹 ‘패밀리 오브 더 이어’가 부른 <히어로>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큰사람이 될 마음이 없어요. 나는 여기저기서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요. 나를 놓아줘요’라는 가사가 엄마의 품을 떠나는 장면과 썩 어울려 이 정도면 엔딩으로 훌륭하다 싶었다. 끝없이 뻗은 텍사스의 도로를 보며 누구나 감동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링클레이터는 그런 감상을 빚을 생각이 없다.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소년은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배경음악으로 ‘콜드플레이’의 <옐로>가 흐른다. 노래의 가사는 ‘별을 바라봐, 별은 너와 너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어’이다. 소년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나는 대낮인데 설마 별을 보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또는 내 생각과 달리 소년이 자신만의 별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년이 보는 것은 화면 바깥에 놓인 무엇이었다. 곧 누군가 소년을 부르고 소년은 극 중 현실로 돌아온다. 이어 12년의 시간을 산다. 내성적인 소년은 사진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제 소년은 하늘이 아닌 자기 앞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조금 슬픈 얼굴의 여섯 살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띤 열여덟 살 청년으로 컸다. 변하지 않은 것 하나,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메이슨은 화면 바깥을 응시한다. 청년이 된 메이슨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메이슨에 해당하는 자신을 바라본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앞에 펼쳐진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보이후드>는 시간을 과거에 흘러간 어떤 것이라는 개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살아가야 할 매 순간이자 현실이라고 <보이후드>는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소년기를 향수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년기 혹은 삶의 한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있었던 거다. 메이슨의 알싸한 성장통이 나의 것인 양 내 몸이 반응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