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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원더풀 데이즈

김문생, 2003

[초이스]원더풀 데이즈 대표 이미지

7년간의 제작기간, 130억원이라는 제작비. 그 정도의 투자를 감행한 만큼, 그때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에 도달한 화면. 하지만 그런 화면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망스럽다는 감상이 많았던 서사. 2003년 7월 개봉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의 광고 문구와 개봉 이후 세간의 평가는 대충 이러했다. 시사회를 통해 개봉 이전에 작품을 접한 필자 역시 전체적으로 스토리에 실망을 느낀다는 평가를 내린 사람들 중 하나였다. 2003년도에는 인터넷을 통한 영화 비평이 이미 상당히 늘어나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필자를 비롯한 몇몇 이들의 그런 평가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탈사이트에서 찬반양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다수가 참여하는 격론이 ‘리얼 타임’으로 벌어졌던 사실상 첫 번째 한국 애니메이션(*주)이란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작품인 것이다. (마치 2007년 『디 워』 논쟁을 예감케 한다.)
(*주 - 물론 2003년 이전에 논쟁이 벌어진 한국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아직 현재와 같이 대중적인 인터넷이 아니라 ‘PC통신’의 시대였기 때문에 업계인이나 마니아들 사이에 한정된 논쟁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자면, 결국 『원더풀 데이즈』란 작품은 딱 그 논쟁에서 이야기되었던 만큼의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들어낸 화려한 화면. CF감독 출신의 연출자에 의한 감각적인 영상과 오랜 기간에 걸쳐 CG와 미니어처를 갈고 닦아 만들어낸 특수효과는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비견될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여 화려한 영상미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며 비평이나 관객의 평가도 높지 않았다. 결국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있어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붐은 단순히 ‘버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1967년 『홍길동전』 이후 40년이 넘는 극장 애니메이션 역사 속에서, 최소한 영상의 측면에서 이 정도로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은 작품도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다. 『원더풀 데이즈』는 2005년 4월 일본에서 개봉되었는데, 배급을 맡은 회사가 『신세기 에반겔리온』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였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제작만 해온 가이낙스의 첫 번째 배급 작품이자 외국작품인데도 ‘창립 20주년 기념작’을 내걸고 홍보하는 등 상당히 힘을 기울였는데, 직접 배급프로듀서를 맡은 타케다 야스히로 총괄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짧은 영상을 봤는데, 본 순간 무심코 멈춰버렸을 정도로 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더풀 데이즈』의 영상미를 인정해준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면에 개봉 후 출시된 DVD의 아마존저팬 (http://www.amazon.co.jp/dp/B0009PIVPM/) 리뷰를 보면, 실제 작품을 접한 일본인들의 평가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스토리 측면에 있어서 아쉽다는 의견이 많고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화면구성이나 움직임에 대해서도 평가가 높지만은 않은 것 같다.

『원더풀 데이즈』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과 평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봉 당시와 같이 ‘우려’를 해야 할 시점은 이미 지나갔으니, 이 작품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아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선정우[mirugi.com] (만화칼럼니스트, 출판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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