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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헨리 셀릭, 1996

[초이스]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대표 이미지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란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은 꽤나 오래전으로 기억된다. 극장에서 개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된 비디오로 접했으니 벌써 십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독특한 비주얼 이미지와 뒤틀린 유머로 큰 반향과 색다른 감동을 주었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팀 버튼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꺼이 이 비디오를 구매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팀 버튼이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감독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의 악몽>도 그때까지 팀 버튼의 연출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두 작품 모두 바로 헨리 셀릭이라는 스톱 모션의 거장에 의해 창조된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팀 버튼이라는 거장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실제로 애니메이션 타이틀에서조차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알려진 탓에 이런 오해들이 제법 생길만도 했다. 어쨌든지 내 나름대로 이 작품을 통해 마땅히 제대로 크레딧을 인정받아야 할 숨겨진 창조자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30년대 영국의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 주인공 제임스는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부모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제임스의 부모는 우스꽝스럽게도 동물원을 탈출한 코뿔소에 의해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제임스는 악덕하고 심술 맞은 친척 이모들에게 맡겨지고 그때부터 불행한 삶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언뜻 디즈니표 가족용 애니메이션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식상한 감동 스토리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소년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런 전개로 지루해질 즈음부터 바로 헨리 셀릭과 팀 버튼 두 콤비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한 비틀기가 더해지면서 모험 활극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는 순종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단순한 권선징악형의 디즈니 영화 공식이 답습되지 않는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캐릭터들이 아이와 벌레들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고 해서 자칫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동화와 같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저변에 깔린 의식의 배경은 절대 권력의 약자들로 그려진 이들의 모험담과 더불어 1930년대의 시대상을 다소 냉소적인 시선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실사 영화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환타지 어드벤처물로서 당시로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비주얼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마틸다>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작가 로앨드 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테마는 바로 어린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훈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웃음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학대의 테마에서 극복, 정의, 성장의 코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그 위에 아름다운 선율까지 실어 비주얼적인 환상의 전환을 이뤄내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최첨단 신기술을 앞세워 화려한 볼거리의 CG 영상으로 점철된 요즘 영화들 속에서 가끔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 한 편 감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Oldies-but-goodies.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명작이란 타이틀 앞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무색하기만 한 것 같다. 

/ 추혜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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