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용순
신준, 2016
신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용순>을 보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용순(이수경)이 영화 내내 짓는 찌푸린 표정과 그 표정의 성격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용순>은 기본적으로 성장 영화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고등학생인 용순은 여름방학 동안 체육 교사(박근록)와의 연애와 이별, 새어머니(얀츠카)와의 갈등 등을 겪은 뒤 사람과 세상을 예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관객은 이 변화한 모습을 본 후 용순이 철이 들었다며 작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용순>의 방점은 용순의 성장에 찍혀있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용순이 성숙해지는 과정보다는 어른과 불화하는 용순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더 공을 들인다. 이때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영화 속 용순의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당황스러운 점 중 하나는 용순이 그리 ‘좋은 아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전형적인 모범생 캐릭터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용순은 정말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는 아버지를 항상 짜증으로 대하며, 새어머니에게는 아무 이유 없이 증오를 보낸다. 특히 몽골 출신의 새어머니에게 피부색과 돈 얘기를 꺼내며 신경질을 내는 장면은 용순이 인격적으로 그리 성숙하지 않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용순은 다른 어른들에게도 날을 세운다. 비공식 연인 관계인 체육 교사에게 짜증과 화를 내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하더라도 체육 교사의 약혼자인 영어 교사(최여진)에게 보이는 공격성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어 교사와 용순이 서로 머리를 뜯으며 싸울 때는 영어 교사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용순은 자기주장이 강한 정도를 넘어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타인을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는, 성장이 필요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용순을 비난하기에 앞서 꼭 고려해야 하는 건 <용순>의 어른들 역시 용순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용순의 삐딱한 성격과 과도한 공격성의 원인으로 어른들의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꼽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용순의 어머니(이은우)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용순을 두고 떠났으며, 반대로 아버지(최덕문)는 아내를 붙잡아 두기 위해 용순을 일정 정도 이용했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용순에게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았고 용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체육 교사는 용순이 임신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영어 교사는 용순의 사연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다른 어른들과 함께 그 문제를 대충 덮어두려고만 했다. 즉 용순이 살고 있는 세계의 어른들은 용순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그녀의 성격을 더욱 모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용순은 어른들의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기적인 어른들에 의해 반쯤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용순 대신 영어 교사와 몸싸움을 벌이며 용순의 편에 서준 새어머니의 행동이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생각하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던 용순의 찡그린 표정이 조금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만약 용순의 저 표정이 성숙한 어른인 척하지만 실은 이기적인 어른들에게 받을 상처를 미리 차단하는 보호막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용순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른들의 위선과 무관심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은 채, 매번 새롭게, 진심을 다해 자신이 지금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표현해왔다. 비록 그 과정에서 미숙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만을 두고 용순을 쉽게 비난할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순이 여름방학이 끝난 후에도 ‘적절한’ 순간마다 그 찡그린 표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