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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사슴꽃

김강민, 2015

[초이스]사슴꽃 대표 이미지

드러난 물질성

핀 스크린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있다. 정확히는 그런 기법이 있었다. 수많은 핀들을 꽂아서 만든 캔버스에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핀을 눌려 일종의 자국을 만들고, 거기에 적당한 조명을 쏘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법(인간 손의 흔적을 빛이 그린 그림자로 완성하는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기법)이 있었다.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던 핀 스크린의 마법은 많은 부분이 핀들과 핀들 사이에 켜켜이 쌓인 빛과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대상, 즉 물질의 표면이었다. 이런 걸 ‘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에서 물성이라는 것은 사실 모더니즘 시대를 풍미했던 구태의연한 논의였다. 이미 예술은 개념으로 전환으로 물질성을 넘어서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이 물질적 속성이라는 것이 결국 예술 장르의 구분 짓기라는 점, 또는 예술 표현 수단의 가장 작은 단위(예를 들어 점, 선, 면, 색채 등)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예술의 테제, 또는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셀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모든 이미지가 대상을 추상화하여 그려진 이미지라는 점에서 대상 자체의 직접적인 물질성을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셀 애니메이션에서의 이미지는 그려진 ‘평면’ 이라는 물질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에 더욱 방점을 두어야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 방식에 있어서는 이미지를 적층시켜 환영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물질성이 드러나지만, 그것이 서사나 플롯 구성에서 잘 드러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실사영화도 마찬가지다. 분명 실사영화도 카메라는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물질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그것이 문학적 서사 내부에 들어오면서 물질성은 증발되고 캐릭터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이든, 실사영화든 극영화의 영역에서는 대상의 물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법과 양식에 대한 분류에 ‘오브제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대부분의 발전적 애니메이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찰흙(클레이), 돌무더기, 심지어는 동물 사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들이 애니메이션의 오브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 많은 작품들의 성격이나 테제는 이 오브제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예컨대, 오브제로서 클레이는 비정형적이고 플라스마 적 물성, 돌이나 금속은 강인함과 거친 물성, 종이는 평면과 구겨짐과 같은 물성을 이용한다. 때문에 발전적 애니메이션에서의 오브제의 물질성은 작품 내에서 잘 봉합되고, 숨겨지고 감추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작품이 드러내는 속성들은 서사보다는 이미지를, 캐릭터보다는 오브제와 대상의 물질성을, 이음매 없는 유려함보다는 봉합의 흔적을 드러냄을 중요시하게 된다. <사슴꽃>도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슴꽃> 이음매 없음과 봉합

김강민 감독의 <사슴꽃>은 전작 단편 작품인 <38-39°C>와 동일한 스톱모션 작품으로, 전작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의 병렬세계를 더욱 견고하고 농밀하게 작업하였다. 예를 들면, 두 작품은 모두 과거의 한 단편적 기억으로부터 직조되었는데, 전작은 과거 한 지점의 목욕탕에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하였다면, <사슴꽃>은 한 소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소위 ‘보양식’의 최초 흡혈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여기서 대체로 기억을 구축하고, 구술하는 순간에 등장하는 독특한 이미지들의 나열은 각 작품들의 중심이미지라 할 수 있다. 특히 두 작품 모두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 일종의 마음의 변화, 즉 정동(情動, affect)의 순간과, 이때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병렬은 주로 평면과 입체, 빛, 추상적 이미지들이 교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일군의 성장담, 또는 오이디푸스 과정처럼 보이는 이 두 작품들이 스톱모션(발전적 애니메이션)의 입체 공간에 형이상학적인 평면 이미지들을 교차시켜 그 자체가 주요한 표현 수단으로 된 것이다. 이 두 작품이 실험 영화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예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슴꽃>에 등장하는 대상들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전작의 컷 아웃 방식의 평면이 아닌 입체의 모양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물들이 3D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된 것임을 쉽게 알아챈다. 표면들은 정리되지 않고 적층된 플라스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각각의 표면의 ‘결’들은 그곳에 떨어진 조명을 표면에 의해 여러 층위로 난반사 한다. 요즘의 3D 프린터들이 첨단(cutting edge)의 느낌을 위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려는 노력이 무상하게 말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표면들에 거칠게 드러나는 이음매들의 등장이다. 많은 부품들의 결합으로 구성된 캐릭터들은 각진 표면에 수채화로 그려진 종이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각 부분들이 겹합된 부분은 여전히 여백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영화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실재와 구분이 되지 않게 이음매를 지우고 매끈한 형태로 만들어, 이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만들어진 대상’임을 오히려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봉합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들 봉합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좋은 예술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음매 없이 만들어져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천의무봉은 대상의 본질을 지움으로써 그 자체로 은폐한다. 하지만 이음매를 드러내면 그것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예컨대, 이음매가 드러난 곰 인형은 천과 솜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아는 것처럼 대상의 이전 상태를 드러낼 수 있다. 영화가 봉합을 하지 않고 이음매를 드러내면 영화가 기인하고 있는 현실 세계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대상을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면서 대상의 물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지닌 강점이다. 이는 대상이 어떤 상태로 그려지는가에 문제이기도 하면서 작품이 무엇을 재현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많은 스톱모션/오브제 애니메이션은 생명이 없는 사물의 움직임, 움직이고 있는 죽음(좀비/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을 재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특성 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죽은 사물이 등장하는 곳에서 이음매를 드러낸 사물들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여기서 애니메이션 이전의 상태, 즉 사물의 움직임 이전의 움직임인 애니메이터의 존재 또는 애니메이터의 손과 만나는 것이다. 

물질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감각들, ‘결’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잘 봉합된 CG의 매끈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들, 삐뚤삐뚤 그려진 이미지와 지문이 남겨진 클레이, 실재 광원에서 떨어지는 빛, 먼지들의 가라앉은 작은 세트에서 묘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이음매들이 주는 존재의 함성과 결, 즉 작가의 손과 퍼포먼스 때문일 것이다. 

* 작품링크 : https://vimeo.com/219692884

키워드

  • #독립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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