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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저주의 기간

허정, 2010

[초이스]저주의 기간 대표 이미지

그때가 아마 6-7년 전쯤이던가, 단편영화를 많이 봤다. 장편의 긴 시간을 버틸 만큼의 정신적 체력이 부족한 때였다. 단편 영화제에 가서 보고, 영상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 단편 모음 DVD도 사고 그랬다. 세상도 단편영화에 주목하던 시절이다. 어떤 영화 잡지에선 따로 그해의 단편을 뽑기도 했다. 2010년, 2011년 즈음에 조현철 감독의 <척추측만>과 함께 이 영화를 뽑는 사람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허정 감독의 <저주의 기간> 말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암전이다. 불길한 음악 위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불길하게도 한다. 화면 열리면,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광경. 전단지 좀 돌린다고, 뭐가 그렇게 죄송할까? 중학생 남동생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2년 전에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고 있다는 누나의 뒷모습은 기묘하다. 한 어른이 묻는다. 2년이나 지난 걸 지금 와서 그걸 어떻게 찾냐? 누나는 울먹인다. 그래도 우리 쫑쫑이, 꼭 찾아야 한다고.

지난 2년을 돌아본다. 이 기간에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았고, 누나는 성적이 떨어졌다. 키가 자라지 않는 동생은 그렇다 치자. 책을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누나의 사연은 기구해 보인다. 병원도 다녀봤다. 종교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저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땅값이 떨어지는 등, 이 집 안 전체가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아빠는 마지막 수단을 내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무당이 말한다. “녹색을 가까이하라.” 

이제 영화는 소품, 배경, 미술, 의상 모든 것을 총동원해 초록의 세계를 보여준다. 온통 초록이 가득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채 남매가 떠돈다. 초록은 수술실의 수술복처럼 불길하다. 그건 메스를 들이대 마구잡이로 인체를 헤집어 놓은 다음 다 고쳤으니 돌아가라고 미소를 짓는 사이코패스 의사의 수술복이다. 그 세계 깊은 곳까지 나아가던 남매는 불현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우리에게 묻는다. “개들도 원망 같은 거 하나요?” 

그런 다음, 남매는 지금까지 중 가장 초록인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다리 밑을 지나면 새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초록색 공사 구조물로 덕지덕지. 그 아파트를 지나니 드디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과거의 집이 나온다. 낡은… 지나간…. 허물어진 세계… 거기서 남매는 쫑쫑이를 발견한다. 그건 그때의 쫑쫑이는 아니다. 쫑쫑이에겐 너무너무 녹색 같은, 괴상한 비밀이 있다. 

영화를 다시 보는 내내 지금의 세상을 떠올리게 됐다. 예언 같다. 아무래도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치던 소녀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맴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그래서 온통 녹색이다. 작은 녹색에서 큰 녹색까지 나아간다. 녹색 옷을 입고 녹색 가방을 멘 남매가 녹색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정 속에 우리의 얼굴이 보인다. 결국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 죄송할 만한 나의 과거, 그걸 풀어줄 나의 초록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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