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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남매의 집

조성희, 2009

[초이스]남매의 집 대표 이미지

두번 다시 보기 싫은 영화들이 있다. 조성희 감독의 중편 <남매의 집>도 그렇다. '연기는 딱딱하고, 사운드도 거칠고, 편집도 서툴렀고, 미술도 부족했고, A부터 Z까지 허점투성이였다'는 감독의 겸손을 곧대로 믿어서는 아니다. <남매의 집>은 지난해 단편에 주어지는 영예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칸국제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수상했고, 올해 1월 <사사건건>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단편들과 함께 묶여 개봉했다. 굳이 말하자면, <남매의 집>은 2009년 `그랜드슬램` 이다. 모두들 `잘했어요`라고 박수 보낸 작품인데, `두번 다시 보기 싫다`고?

<남매의 집>의 주인공은 반지하 방에 사는 오누이다.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와 집 밖에 나가서는 안되며, 누구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어린 남매는 `물만 마시고 가겠다`는 낯선 남자들에게 속아 문을 열어주고, 보이지 않던 공포는 눈 앞의 현실이 된다. <남매의 집>은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영화다. 악몽에 가위눌린 듯한 기분이라고 말하면 적절할 것이다. 불한당들이 난동을 벌이는 동안 관객들은 `한계상황`을 체험해야만 한다. 남자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동생을 납치하려는 그들에게 식칼로 대항해 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조성희 감독은 '알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라오우, 안경, 대머리라고 불리는, 영화 속 침입자들은 흉측한 몰골의 사내들이다. 그러나 끔찍한 외모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건 비정상성이다. 그들의 행동은 종잡을 수가 없다. 안경이 여자아이의 귓볼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라오우는 남자아이의 학습지를 푸는데 골몰한다. 대머리는 자신에게 욕을 한 집안의 앵무새를 쇠망치로 내려친 뒤 잘못했다고 실수였다고 싹싹 빈다. 그들이 주춤거릴 때 공포는 외려 배가된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고, 보는 이의 공포는 비등점까지 끓어오른다. 

<남매의 집>은 무자비한 폭력을 전시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결말 앞에서 도덕과 윤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인간 조건이라기 보다 세상을 회피하는 변명과 허위의 계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죽었던 새가 살아나 새장 안에서 파닥거릴 때, 선과 악의 경계가 지워진 악몽은 사라지고 또다른 자기 합리화가 남자아이의 마음 속에 들어선다. <남매의 집>은 (세상을)'알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반대로 공포는 (세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데서 비롯된다. `남매의 집`은 '도덕은 없고, 도덕적 해석만이 존재하는' 닫힌 공간이다. 공포의 유년은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남매의 집>은 두번 다시 보기 싫지만, 그래서 꼭 한 번은 봐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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