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2010
우리는 가끔 한 장의 사진,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접할 때, 이미지가 전해주는 강렬함 때문에 시공간을 이동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진이나 영화의 한 장면은 우리를 그 이미지가 담겼을 당시의 시간과 장소로 순식간에 데리고 간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그 사람들 속에는 당신과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머리 위 헬기에서 내려 쏟는 물줄기, 그 물줄기는 우리를 지금 여기에서 한 순간에 2009년 한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으로 훅 보내버린다.
이미지의 강렬함은 가끔 당시의 공기까지도 기억나게 한다. 2009년 여름의 공기는 갑자기 시작된 여름의 열기로 급하게 과열되어 서서히 더워진 공기와는 다른 느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공기 속에서 만나게 된 이미지 안에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공장 지붕 위에서 경찰에 쫓겨 휘청거리면서 뛰어가고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가난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 사회의 사람들은 그런 장면에서 불안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급하게 데워진 공기는 어느새 불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77일 동안 아니 그 보다 앞선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77일간 공장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었던 그 곳의 그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시간에 노동자가 느꼈을 혹은 그 가족들이 그의 동료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자리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대중매체에서는 보기 힘든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슬며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장치로 영화에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내레이션이 있다. 하나는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의 목소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위 전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지막한 목소리다. 내레이션이 두 개인 것은 낯설기도 낯익기도 하다. 두 개인 것은 낯선 것인데 둘 다 낯익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과하면 노동자 파업이 하나의 사건으로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독의 진심과 만날 수 있다. 감독은 오히려 노동자 파업을 통해서 이 사회를 읽어낼 ‘다른’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조조정이 뭔지, 노동유연화가 뭔지, 정리해고가 뭔지, 기업이란 제도는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그 동안 익숙했던 정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정리해고가 다시 정의 내려지는 순간 우리는 노동자 파업이란 한 사건이 당신과 나의 전쟁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어쩌면 이 순간이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지 싶다.
묘한 순간은 갑갑함을 떨쳐내는데도 한 몫 한다. 다큐멘터리가 주는 재미는 다채로운데 가끔은 독립다큐멘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접할 수 없는 리얼한 현실을 전하며 그 현장을 공유하는 것만을 자신의 역할로 한정지을 때 오는 갑갑함이 있다. 묘한 순간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구석이다.
불안을 재연했던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제 우리에게 사회를 바라볼 ‘다른’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9년을 용산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며 하루를 살아야 할 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혹시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비루한 현실이 다 나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며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어느 순간 머릿속 안개가 걷히면서 맑아지는 묘한 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