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천막
이란희, 2016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로변에는 수많은 천막들이 있다. 사업주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 끝으로 몰려 선택한 곳. 그곳에 콜트·콜텍 노동조합의 천막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은 이인근, 김경봉 그리고 임재춘. 이들은 모두가 떠나간 천막을 지키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자 밴드 ‘콜밴’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상은 농성 기간을 알려주는 숫자를 ‘오늘’에 맞추고, 밥을 먹고, 합주연습을 하고, 다른 투쟁사업장에 연대를 다니는 것이다. 회사 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통보 그리고 엉망이 되어가는 가정까지 처음 시작하던 1일째의 그 날과 별다를 것 하나 없는 3,170일째 ‘오늘’이지만 인근과 경봉 그리고 재춘이 견디기에 ‘오늘’은 유독 힘이 들기만 하다.
2015년 <결혼전야>로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객상인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했던 이란희 감독의 신작 <천막>은 세계적인 기타회사로 이름을 날리던 콜트·콜텍의 정리해고와 폐업 이후의 노동자들이 견뎌내고 있는 3,170번째 ‘오늘’을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콜트·콜텍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쟁의를 유발한 회사임에도 회사 사장은 직장폐쇄를,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자는 “강성 노동조합 때문에 망했다”라며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시작된 농성이 영화 속 ‘오늘’인 3,170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천막>은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인상적인 장면들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합주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계속 틀리는 재춘에게 인근은 “매일 하는걸 어떻게 틀려?”라며 타박하지만 사실, 그들이 ‘매일 하는’ 혹은 ‘매일 하고 싶은’ 것은 합주연습이 아니라 기타를 만들어내는 노동일 것이며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천막이 아니라 공장일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할 것도 없다며 “매번 지기만 하는 싸움 언제까지 할겨?“라는 넋두리에 ”왜 없냐. 집회하고, 연대 가고, 집회하고, 연대 가야지“라고 대답하는 재춘과 경봉의 시시껄렁해 보이는 이 대화 장면은 이들의 천막이, 여의도의 수많은 천막이 가진 진짜 의미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후속 조치 하나 없는 그야말로 말뿐인 여당 대표의 사과 한마디 듣는데 300일 넘게 걸렸지만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3천일 넘게 버텨온 이들의 힘 그리고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해온 그들의 지난한 발걸음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콜트·콜텍 노동조합의 3,179일째 농성이 시작되었을 오늘(11월 29일), 대통령은 세 번째 담화를 했고, 시민들은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 <천막>은 우리가 콜트·콜텍의 천막을, 여의도의 수많은 천막을 그리고 그들의 반복되는 ‘오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물러난다 한들 영화 속 인근과 경봉, 재춘을 연기한 이인근과 김경봉 그리고 임재춘은 내일도 그들의 3,180일째 ‘오늘’을 시작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