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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존 버거의 사계

바르테크 지아도시,콜린 맥케이브,크리스토퍼 로스,틸다 스윈튼, 2016

[초이스]존 버거의 사계 대표 이미지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매번 흥미롭다. 제작자들이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텍스트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무엇을 부각할지 고민한 흔적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텍스트에 다가가는 하나의 다리로 작동할 수도 있다. 

90살이 다 된 다큐멘터리 감독 요리스 이벤스는 중국의 모래 언덕에서 ‘바람’을 찍겠다고 스태프들과 천막을 친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흐르고 날은 덥고 ‘바람’은 불지 않는다. 요리스 이벤스는 마을의 주술가를 찾는다. 젊은 스태프는 비과학적이라며 거대한 선풍기를 마련하자고 한다. 그러자 요리스 이벤스는 “여보게 젊은이, 내가 한 세기를 살아봐서 아는데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않는 것도 있다네.” 요리스 이벤스의 유작인 <바람의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20세기 혁명의 현장을 누볐던 노장이 말하는 ‘바람’은 그냥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한 세기를 살아온 사람의 다큐멘터리는 스산할 만큼 시간을 오래 묶어 뒀다. 갖은 질문들과 함께.

<바람의 이야기>는 자화상에 가까운 다큐멘터리라면 <존 버거의 사계>는 4명의 감독이 옴니버스로 만든 존 버거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26년생인 존 버거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60살 이후로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고 있다. 여전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발언하고 글을 쓴다. 

4명의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했을 때 흥분과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 세기를 사는 사람, 게다가 그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사람이다. 그가 활발히 활동하던 60년대 초는 TV 예술방송을 3~4백만 명이 시청하던 때였다. 시청자들은 배우기를 열망했고 젊은 지식인들과 작가들은 TV가 사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존 버거의 책들, 책들과 관련한 프로그램, 그가 했던 말들, 그림 등 어마어마한 자료들이 있다. 제작자들이 탐내는 인물이지만 같은 이유로 당혹스러울 인물이다. 그런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생애사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고, 업적을 나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감독들은 자신들이 궁금한 것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러한 다큐멘터리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울 때가 많다. 감독들의 질문들이 차고 넘치고 그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표현들은 또 다른 질문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 애매한 간극들이 또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 낸다. 

<존 버거의 사계>는 존 버거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오랜 친구인 배우 틸다 스윈튼이 찾아오면서부터 시작한다. 사과 파이를 만들며 그간의 안부와 생각을 나눈다. 사이사이 들을 수 있는 그의 말은 그의 글처럼 시적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의 말의 호흡은 시의 리듬처럼 들린다. 가끔은 그의 글처럼 따라갈 수 없다가도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듯 눈앞의 것을 명확하게 직시하게 해준다. 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도 미래를 사는 금융자본에 대해 논평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산골 마을에서도 그의 말처럼 다른 곳을 살 수 있나 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존 버거가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했던 것처럼 존 버거에 대한 질문을 이미지로 한다. 수많은 과거의 영상들 속에서 그의 말과 그에 대한 현재의 이미지들을 통해 질문한다. 세 번째 이야기 ‘정치를 위한 노래’는 대담 형식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확’은 아이들을 통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번째 이야기 ‘정치를 위한 노래’에서 존 버거는 모든 저작 중 하나만을 남기라고 한다면 <제7의 인간>을 선택하겠단다. <제7의 인간>은 60대 터키에서 독일로 이주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보고서라고 썼지만 시, 사진, 사회과학책, 에세이라고 불려도 될 듯하다.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을 쓰면서 오랜 시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된다. 그의 글에서처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별자리조차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그의 경험을 재구성해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누군가의 경험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숨 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본다는 것, 이미지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그 이면에 숨겨진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존 버거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경유해야 할 어떤 시기 같은 것이다. 나 또한 그 시기를 여전히 경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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