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임대형, 2016

[초이스]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대표 이미지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 만든다고 누가 떡 하나 던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영화라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이러한 고민은 다시 한 번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무수한 형태로 표현되곤 한다. 

임대형 감독의 첫 장편 독립 극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역시 자신만의 영화를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비슷한 주제의 여타 영화들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도 물론 영화를 깊게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 제작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그 자신에 있어 영화란 일종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충청남도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중년 남성 모금산(기주봉)의 삶은 지극히 단조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발소에 출근해 사람들의 머리를 깎고, 수영을 하고,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가 강냉이를 우적우적 씹으며 TV를 보다 잔다. ‘금산’에 거주하는 ‘모(某) 씨’를 뜻하는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이렇다 할 감흥도, 자극도 없는 삶이 꾸준히 반복된다. 하지만 이 삶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반복조차도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놓인다. 조금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간 보건소에서 영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삶의 마지막에 놓인 모금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일탈을 시도한다. 수영장에서 길게 잠수도 해보고, 수영장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 자영(전여빈)과 진솔한 대화도 나눠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서울에 살며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아들 모스데반(오정환)과 여자 친구 예원(고원희)을 부른다. 한때 소망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인 ‘영화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풍진 세상에서 떠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향에 내려온 모스데반은 어딘가 모금산과 서먹해 보이며 아버지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이 와중에서 예원이 간신히 부자 사이를 중재하며 좌충우돌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과연 영화 제작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온갖 사건 사고 끝에 완성된 영화는 이 세 명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가.

문득 영화를 보면서 매년 가을경에 열리는 서울노인영화제가 생각났다. 노인과 노년의 삶을 소재로 한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는 물론, 노인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도 골고루 상영하는 영화제다 보니 자연스레 전자와 후자의 영화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만든 영화는 전문적으로 영화 교육을 받고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상당히 투박하기 그지없다. 촌스러운 특수효과, 이러지리 툭툭 튀는 사운드,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은 서사. 그에 비하면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인들이 만든 영화가 더욱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밖엔 없었다. 많은 부분들이 어색할지라도 이들이 만든 영화는 삶의 황혼기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자신이 그간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역시 그렇다. 모금산은 단조로운 자신의 삶만큼이나 지독하게 과거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아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오래된 배우들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가 찍고 싶은 영화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무성 영화이다. 영화의 극 중 극이자 모금산이 배우의 꿈을 이룬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만약 영화제에 출품되었더라면 예심을 통과하기도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금산은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이 갇혀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과 조우한다. 삶의 종착지라 여겼던 영화 촬영은 예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모스데반의 행보를 통해 점차 모금산 자신이 그간 직시하기를 꺼려했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질박해도 소소한 웃음을 낳는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만든 세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와 서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 영화 제작은 곧 사람을, 그리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구가 된 것이다.

비록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모금산의 삶이 철저히 과거에 놓여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전후를 제시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서울노인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노인들의 작품들처럼 말이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