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안녕 히어로
한영희, 2016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투쟁을 했다. 사측의 맞불 집회와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파업은 끝났고,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거리로 떠밀려 나왔다. 공장 벽을 물들이던, 공장 밖에서 노동자의 가족들이 울부짖던 ‘같이 살자’는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의 아들 현우를 통해 투쟁 이후의 삶을 바라본다. 뉴스를 도배하던 파업 이후, 일상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현우가 아홉 살 때 아빠는 파업을 했고 감옥에 갔다. 그때부터 ‘평범’했던 현우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현우가 열세 살 때부터 열여섯이 되어가는 4년여의 시간을 담는다. 그 안에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진압부터 송전탑과 굴뚝에 오르던 해고자들의 모습, 그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결한 대법원까지,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은 괴로운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현우의 표정을 카메라 너머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었다. 입학식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흘깃거리는 눈빛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찍는 동안 경계를 풀지 못하는 긴장 같은 것. 현우의 아빠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파업투쟁에 함께 했다. 그리고 해고노동자가 되었다. “용기를 주는 박카스가 있다면 뭘 할 거냐”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버릴래요, 아님 다른 사람 주거나”라고 답한다. 현우의 대답은 그런 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모든 게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던 어떤 날들.
영화 속 현우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직업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빠가 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빠는 감옥에 잡혀갔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학교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빠는 병원에 있다고 둘러대야 했다.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상처가 되는 시기였다. 사실을 알면 친구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너희를 위해 노동운동을 한다는 부모의 말은 나에게 최고의 모순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위험한 일을 하는지, 약한 사람들 편에 서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이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병을 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업 이후 평택 시내에는 쌍용자동차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했다.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된 상처는 지역 전체에 드리워졌다. 해고자들은 소송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송전탑과 굴뚝에도 오르면서 할 수 있는 싸움을 다 했다. 싸움은 번번이 실패했다.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력해졌다. 영화 속 현우네 집은 밝아 보였다. 아빠가 현관 키를 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급하게 자는 척 연기하는 동생 민서와 벌떡 일어나 아빠를 반겨주는 현우의 인사가 따뜻했다. 아빠 먹으라고 아이들이 남겨둔 치킨 조각이나 오손도손 앉아서 아빠 직업란에 쓸 단어를 찾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 무력감은 현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선거 유세차량에 아빠를 따라 덥석 오르는 민서와 달리, 현우는 아빠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아빠를 알아볼까봐 아빠 가 선거에 나오는 건 싫다고 말한다. 용감했던 아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다음, ‘나쁜 사람’들이 가는 감옥에 갔다. 영화에 다 담기지 않은 많은 시간동안 현우에게는 용기조차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영웅처럼 느껴진다”는 현우의 마지막 말이 더없이 울컥했다.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빠인 노동자 한 명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싸움의 당사자가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이야기는 ‘노동조합’ 이나 ‘투쟁’이라는 단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삶을 만나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게 정말 괜찮은 사회인 건가, 하고. 현우의 아빠는 7년의 투쟁 끝에 복직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130명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
현우는 촛불집회 이후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은 현우에게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안녕 히어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의 아들 현우를 통해 투쟁 이후의 삶을 바라본다. 뉴스를 도배하던 파업 이후, 일상의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현우가 아홉 살 때 아빠는 파업을 했고 감옥에 갔다. 그때부터 ‘평범’했던 현우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현우가 열세 살 때부터 열여섯이 되어가는 4년여의 시간을 담는다. 그 안에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진압부터 송전탑과 굴뚝에 오르던 해고자들의 모습, 그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결한 대법원까지,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은 괴로운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현우의 표정을 카메라 너머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었다. 입학식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흘깃거리는 눈빛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찍는 동안 경계를 풀지 못하는 긴장 같은 것. 현우의 아빠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파업투쟁에 함께 했다. 그리고 해고노동자가 되었다. “용기를 주는 박카스가 있다면 뭘 할 거냐”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버릴래요, 아님 다른 사람 주거나”라고 답한다. 현우의 대답은 그런 순간들을 떠오르게 했다. 모든 게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던 어떤 날들.
영화 속 현우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직업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빠가 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빠는 감옥에 잡혀갔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학교에는 말하면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빠는 병원에 있다고 둘러대야 했다.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상처가 되는 시기였다. 사실을 알면 친구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너희를 위해 노동운동을 한다는 부모의 말은 나에게 최고의 모순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위험한 일을 하는지, 약한 사람들 편에 서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이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병을 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업 이후 평택 시내에는 쌍용자동차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했다.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된 상처는 지역 전체에 드리워졌다. 해고자들은 소송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송전탑과 굴뚝에도 오르면서 할 수 있는 싸움을 다 했다. 싸움은 번번이 실패했다.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력해졌다. 영화 속 현우네 집은 밝아 보였다. 아빠가 현관 키를 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급하게 자는 척 연기하는 동생 민서와 벌떡 일어나 아빠를 반겨주는 현우의 인사가 따뜻했다. 아빠 먹으라고 아이들이 남겨둔 치킨 조각이나 오손도손 앉아서 아빠 직업란에 쓸 단어를 찾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몬 무력감은 현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선거 유세차량에 아빠를 따라 덥석 오르는 민서와 달리, 현우는 아빠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아빠를 알아볼까봐 아빠 가 선거에 나오는 건 싫다고 말한다. 용감했던 아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다음, ‘나쁜 사람’들이 가는 감옥에 갔다. 영화에 다 담기지 않은 많은 시간동안 현우에게는 용기조차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가 영웅처럼 느껴진다”는 현우의 마지막 말이 더없이 울컥했다.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빠인 노동자 한 명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싸움의 당사자가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이야기는 ‘노동조합’ 이나 ‘투쟁’이라는 단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삶을 만나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게 정말 괜찮은 사회인 건가, 하고. 현우의 아빠는 7년의 투쟁 끝에 복직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130명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
현우는 촛불집회 이후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은 힘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은 현우에게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