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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마음의 고향

윤용규,1949

[한국영화걸작선]마음의 고향 대표 이미지

해방 후 영화인들은 재빠르게 변신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군용열차>(1938)를 시작으로 조선 영화계는 친일 국책영화의 시대로 선회하였고, <아리랑>(1926) 이후 짧은 기간 애써왔던 민족문화로서의 ‘조선영화’ 활동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부터 전쟁 전까지를 일컫는 해방기에 영화인들은 해방을 기뻐하는 항일영화, 나라의 재건을 독려하는 계몽영화, 독립지사들을 기리는 전기영화를 재빨리 만들었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는 사상적 갈등을 그리는 반공영화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조선(한국)영화는 어떠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영화인들 사이에 활발한 담론이 전개되었다. 이들은 조선영화는 ‘민족문화를 담은 계몽영화’이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신생 국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민족적 로컬 컬러를 담은 계몽적인 예술영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염원으로 활동에 매진한다. 그즈음 만들어진 영화가 <해연>(1948)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일취월장한 작품이 나왔는데, 그 작품이 바로 1949년 2월에 개봉한 <마음의 고향>이다. 

이 영화는 극작가 함세덕이 1939년에 쓴 희곡 「동승」을 각색한 작품으로 많은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해방 후 조선영화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해방기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적 구성과 만듦새가 탄탄하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조선영화를 지키고자 했던 영화인들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영화는 조선영화에 의례적으로 따라오는 신파성을 배제하려 하고, 모정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계를 서정적인 감각으로 구현한다. 극적인 서사 진행을 위한 억지스러움에 가까운 우연성이 있지만, 이는 당시 영화적 수준을 고려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당시 필름 공급원이 일정치 않아 코닥, 후지, 아그파 등 쪼가리 네가 필름으로 촬영하여 완성된 작품의 화질이 고르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이 영화를 제작하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이강수가 1993년 세상에 내놓은 <마음의 고향>의 16mm 필름은 해방기에 제작된 68편의 영화 중 현재 남아있는 7편 중 한 편이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선물이다. 

이 작품은 종로3가에 위치했던, 지금은 사라진 수도극장에서 개봉돼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절간에 버려진 12살 소년 도성은 친어머니가 언젠가는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주지 스님과 젊은 스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도성은 어느 날 자식을 잃고 공양을 드리기 위해 절로 온 젊은 미망인 서울 아씨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도성이 서울 아씨와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는 에피소드들은 연인들의 줄다리기처럼 애틋하면서도 흐뭇하게 전개되며 영화에 골고루 잘 스며들어있는 희로애락은 보편적인 인간적 감정에 호소한다. 영화에는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슬픔, 아씨와 도성이 새롭게 맺는 따스한 정, 아씨의 수양아들로 가게 된다는 기쁨, 그리고 주지 스님의 노여움으로 인한 파국 등이 여러 차례 서사의 굴곡과 함께 펼쳐진다. 유력가 집안의 서울아씨가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늘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힘으로 부채를 만들어 선물하고픈 도성의 천진함은 결국 살생을 저지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노한 주지 스님은 도성의 입양을 취소하고 절에서 죄를 씻도록 한다. 이 사건을 겪으며 훌쩍 성장한 도성은 봇짐을 메고 홀로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산 아래로 떠나는 도성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며 그의 뒷모습은 한결 가볍다. 도성의 바람이 좌절로 바뀌며 한없이 슬퍼지던 영화 전개는 마지막에 작은 반전으로 기쁨을 준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역동적인 촬영이 전개되어 놀라움을 주며, 서사는 극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고, 친어머니 존재에 대한 제한된 정보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까지 만들어낸다. 서울로 떠나는 날 친어머니가 등장하는 다소 억지스러운 우연한 사건이 있지만, 우연과 과잉의 신파성이 특징인 당시 여느 영화들과 달리 절제된 감정과 상징적 장면들, 복선과 반전이 있는 효과적인 영화적 묘사로 영화는 한층 격조 있게 보인다. 또한 해방 후 자유를 향하는 개인들의 집단적 갈망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압축적으로 담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는 윤용규 감독으로 1913년 대구 출생이며 일본 도호영화사에서 연출과 이론을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파이다. 그는 이 영화로 데뷔했고, 크게 호평받았지만 한국전쟁 전 월북하였으며, 북한에서 감독 및 배우로 활동하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롱쇼트에서 산사를 트래킹으로 훑는 역동적인 장면과 도성이 꾸는 꿈과 현실의 유연한 연결, 뛰어가는 그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 등 촬영이 돋보이는데, 촬영감독은 다름 아닌 훗날 <자유부인>(1956)으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한형모이다. 서울 아씨를 연기하는 이는 전쟁 후 최고 스타가 된 최은희인데, 이 영화에서 20대 초반의 젊고 풋풋한 데뷔 초기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맹서>(1947)로 데뷔한 최은희는 <마음의 고향>을 통해 확실한 주연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도성을 따뜻하게 감싸는 은은한 정을 발휘하는 그녀의 단아한 모습은 단연 한눈에 들어온다. 섬세한 내면 표현과 절제 있는 대사 전단력은 훗날 <동심초>(195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을 거치며 기품 있는 한국적 여인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근원이 되었다. 서울 아씨의 어머니를 연기하는 석금성도 일제강점기 영화계를 호령한 배우인데, 기생 출신으로 카프 영화에도 다수 출연하였다.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인 작가이자 연극인 최승일이 그녀의 남편이다. 석금성은 남편과 달리 월북하지 않고, <춘향전>(1955), <삼등과장>(1961), <김약국의 딸들>(1963) 등 전후 영화에서 연기파 성격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주지 스님을 연기하는 변기종은 김도산의 신극좌 소속으로 젊은 시절부터 노역 연기를 전문적으로 해온 연극인인데, <마음의 고향>으로 영화에 데뷔하였다.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연기자이기에 카리스마 있는 강한 연기가 빛을 한껏 발한다. 친어머니를 연기한 김선영은 해방 전후 신극무대의 대표 배우로 활약하다가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인민배우 칭호를 받을 정도의 최고 배우가 되었다. 

이후 이 영화는 두 차례 리메이크되었다. 2002년 주경중 감독의 <동승>과 2014년 박영철 감독의 <내 마음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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