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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물속의 인상

레니 리펜슈탈, 2002

[초이스]물속의 인상 대표 이미지

영화 <물속의 인상>은 45분 정도 길이의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사는 다양한 생물체들을 보여주고 또 그 생물체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닷속 생물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나 내레이션도, 또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는 곳의 지형을 설명하는 자막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영화는 45분 동안 바닷속을 떠돌며 신기하고 다양한 물고기와 수중 생물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 설명 없이 바닷속만 찍은 이 영화는 영화라고 말하기보다 촬영자의 사적인 기록 영상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얘기를 들으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의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아름다운 해저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만든 사람은 바로 레니 리펜슈탈이다. 

레니 리펜슈탈은 1902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원래 무용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23년 공연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 무용가로 활동할 수 없게 되고, 그쯤에 우연히 산악 영화를 전문으로 찍던 아놀드 팡크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된다. 그 영화에 매료된 리펜슈탈은 아놀드 팡크 감독에게 연락해 <운명의 산>이라는 산악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게 되고 그 영화를 계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아놀드 팡크와 몇 편의 산악 영화를 찍은 리펜슈탈은 1932년. 본인이 감독, 주연, 편집을 맡은 산악 영화 <푸른 빛>으로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성으로서 힘든 산악 영화에 출연하다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한 선구적인 여성 영화인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푸른 빛>을 만들 당시인 1932년 독일은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집권 여당이 되어 독일을 집어삼키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당은 다음 해에 나치 독일이라는 국명을 채택하고 아돌프 히틀러를 총통으로 추대했다. 산악 영화의 스타로서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리펜슈탈의 영화를 보고 히틀러는 곧장 그녀에게 매료되었고, 리펜슈탈 역시 히틀러가 주장하는 강한 육체와 정신력에 매료되었다. 둘은 이내 호감을 가졌고 히틀러는 그녀에게 나치 전당 대회의 기록 영상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신념의 승리>와 <의지의 승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 중 <의지의 승리>는 영화사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가져온 영화로 기록된다. 나치로부터 엄청난 재정, 기술적 지원을 받은 리펜슈탈은 지금껏 보지 못한 압도적이고 역동적인 화면 구성으로 전당 대회의 기록 영상을 제작했다. 곧이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 영화인 2부작 <올림피아>를 제작하면서 리펜슈탈은 히틀러와 나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용가로 시작한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은 강한 육체, 역동적인 화면, 물리적 설명을 배제한 미장센의 구성, 드라마틱한 몽타주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1930년대에 다른 다큐멘터리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면이었다. 이후 현재까지도 리펜슈탈에 대해 천재적 재능을 가진 영화 작가인가 나치에 동조한 범죄자인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리펜슈탈은 종전 후 나치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동조자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상 영화계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1960년대엔 아프리카 수단으로 건너가 그곳의 원주민 누바 족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생활을 촬영하여 사진작가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촬영한 사진도 비난을 피할 순 없었다. 가장 유명한 건 수잔 손택의 말이다. “리펜슈탈이 촬영한 이 사진은 깨끗한 것과 불순한 것, 청렴한 것과 오염된 것,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즐거운 것과 비판적인 것을 대립시키는 전형적인 파시스트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라고 손택은 평가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리펜슈탈은 1973년 이후 죽을 때까지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면서 해저의 생태를 촬영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물속의 인상>이다. 이 영화는 리펜슈탈이 48년 만에 만든 영화이고, 1973년부터 2001년까지 촬영한 해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처음에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일체의 설명이나 자막 없이 오로지 해저 그 자체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리펜슈탈은 이렇게 환상적인 해저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리펜슈탈의 말을 인용하자면 “환상적인 이미지가 그 어떤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때문에 이 영화엔 어떠한 해설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리펜슈탈이 만든 영화에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공간(상황)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보기 힘든 신비롭고 경이로운 피사체를 아무런 논점 없이 있는 그대로 포착을 한다는 리펜슈탈의 개념은 그녀가 비난을 받은 나치 전당 대회를 촬영할 때도, 또 베를린 올림픽을 촬영할 때도, 또 누바 족의 사진을 촬영할 때와도 똑같은 개념이다. 리펜슈탈이 촬영한 해저 영상은 아름답고 보는 이를 매혹시키지만 이 영상에 담긴 피사체가 단순히 해저라는 것 외에는 리펜슈탈의 이전 영화들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히틀러를 찍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영화에선 수중 생물을 촬영한 것이고 수중 생물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촬영한 것과 동일하게 운동선수들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는 생각을 <물속의 인상>을 보고 지울 수 없다. <물속의 인상>에서 유독 기억 남는 장면은 곰치가 문어 사냥을 하는 장면을 꽤 길게 촬영한 장면이다. 이 장면의 역동성과 움직임, 드라마틱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상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이 장면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리펜슈탈 본인이 아름다운 산호초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장면과 상응된다. 이 장면은 수잔 손택이 리펜슈탈에 대해 비판한 그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즐거운 것과 비판적인 것을 대립시키는” 이 장면은 여전히 리펜슈탈 영화의 형식이 프로토 파시즘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의 예도 존재한다. 리펜슈탈이 인간의 역동적인 육체에 매혹되어 그녀의 카메라도 일종의 육체화 되는 과정을 보면서 평론가 토마스 앨세서는 “리펜슈탈이 인간 육체를 도구화하게 된 것은 그녀의 타고난 파시즘 때문이 아니라 무용가적 시선 때문이다.”라고 얘기했다. 어떤 쪽이 되었든, 리펜슈탈의 영화는 예술의 목적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갖게 만든다. 정치적 이슈로 논쟁거리가 되었던 <의지의 승리>나 <올림피아>가 없었다면 <물속의 인상>은 100살의 예술가가 만든 아름다운 해양 영화로 남았겠지만, 역사 앞에 놓인 예술가가 윤리적 태도를 망각했을 때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는 영화에도 그 영화에 작가가 가진 망각된 역사의 흔적이 남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숙명이라는 것은 레니 리펜슈탈 이후의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으로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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