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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돌 속에 갇힌 말 -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

나루, 2004

[초이스]돌 속에 갇힌 말 -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 대표 이미지

정권 퇴진으로 이어진 촛불 시민 혁명과 함께,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87년 민주화 항쟁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2017년 우리는 30년 전 그때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우리는 그때보다 한 걸음 더 민주주의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대선 운동이 한창인 요즘, 여러 가지 질문들이 머리를 맴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당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벌어진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시작된 농성을 담은 <돌 속에 갇힌 말 -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이하 ‘돌 속에 갇힌 말’)이 떠오른 것은, 87년과 2017년, 30년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 때문일 것이다.

<돌 속에 갇힌 말>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당일, 서울 구로구청에서 벌어진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과 그에 항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투쟁의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영화는 87년 12월의 농성 이후,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던,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 ‘그 사건’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사람들은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영화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영화는 “개인의 힘으로 파헤칠 수 없는 의혹과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 폭력의 후유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의 힘으로 파헤칠 수 없는 의혹이기에, 국가가 규명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은 폭력이기에 영화는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부정선거의 실체, 강제 폭력 진압 규명, 당시 농성 참가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그들의 머뭇거림과 기억들 속에서 그동안 묻혀있던 말을 끄집어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한다. 

의혹으로만 남은 과거는 몇 가지의 결로 구성된다. 하나는 87년 1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밀반출 항의농성이 시작되던 기점으로부터 기자회견, 농성 대책위 구성, 철야농성, 그리고 18일 오전 6시가 넘어 무자비한 경찰의 폭력 진압이 이루어졌던 순간과 그 이후의 시간을 학생과 노동자, 주민들의 입을 빌려 복기하는 것이다. 당시에 촬영된 비디오 화면과 뉴스, 신문기사, 그리고 사람들의 증언은 긴장감 있게 그 사건의 실체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또 하나 영화가 파고드는 것은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 그 자체이다. 투표용지 조작 가능성과 경찰의 강제 폭력 진압 등의 국가 폭력으로 인한 참여자들의 희생, 부정선거의 증거물인 투표함의 행방까지 17년이 지난 2004년까지 ‘그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단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영화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려고 하지만, 투표함의 행방은 묘연하고, 사람들의 증언과 기억은 조금씩 어긋난다. 폭력 진압의 과정에서 사망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문은 ‘사망설’에 그칠 뿐이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부정선거의 증거로 여겨졌던 서울 ‘구로구청 투표함’은 29년이 지난 2016년 7월에야 한국정치학회 주관으로 개표 및 계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돌 속에 갇힌 말>이 17년 전의 ‘그 사건’을 입체적으로 그러면서도 강렬하게 현재로 데려오는 것은 감독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소리 없는 내레이션이다. 구로구청 안에서 농성을 사수하기 위해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강제 진압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과 이미 현장을 빠져나갔던 대책위, ‘역사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분노와 비판적인 시선은 그 사건 이후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새겨진 기존 사회제도에 대한 절망, 운동에 대한 회의, 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 동지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등의 복잡한 감정으로 얽혀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는, 그래서 대림역(구로구청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감독 자신의 소회는 ‘객관적인고 공적인 역사’에 균열을 내면서도 기록되고 공식화된 역사와 그렇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 묻혀버린 목소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현재, 5월 대선을 앞두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성찰하고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없을까, 혹여 촛불의 승리와 힘에 취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걸까, 우리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세상은 정말 달라지는 것일까라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공(식)적인 역사’ 혹은 주류의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혹은 듣지 못한 말,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던 말, 말이 되지 못한 채 ‘돌 속에 갇힌 말’에 주목하는 일, 그것들이 한데 모여 역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이 많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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