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스물다섯번째 시간
김성은, 2016
간혹 극영화 감독들을 만나면 반복해서 듣는 소리가 있다. “제가 어떻게 다큐를 하겠어요?”, “다큐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해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죽기 전에 꼭 인생의 다큐 한 편 만들 거예요” 등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다큐멘터리 영화 혹은 다큐 제작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의미 그리고 제작에 임하는 작가윤리를 의식하는 듯하다. 마치 다큐를 만드는 사람은 거짓말도 못 할 것 같은 사람, 사회적 정의로 가득 차 있거나 이를 위해 기록 대상과 함께할 수 있다는 신념과 성실함이 필요조건인 것처럼 생각되는 듯도 하다 이런 대화는 “항상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로 끝이 나곤 하는데, 그리고 나면 “나는 다큐하기에 괜찮은 사람인가? 이건 뭐지?”,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매번 ‘하, 그렇지 않은데’, 하며 부끄러워진다. 뭔가 이상한 감정이다.
타 예술 장르와 다르게 다큐멘터리에는 왜 이런 정치적 올바름, 역사의 정의와 진보에 대한 작가의 신념, 피사체에 대한 시선이나 태도 등 도덕 혹은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리고 작업, 작가 윤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해 본다.
2017년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된 김성은 감독의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위의 고민에 어떤 답들을 제시하는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감독은 연출 의도에서 “방문자에서 연대자로 그리고 이주민으로 변해온 내 시선이 반영된 영상을 기록하려 했고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라고 말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저항의 시간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강정마을 주민들과 이 투쟁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의 삶과 기억들을 성찰, 기록해내고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다른 한 축으로는 제주 4.3사건으로부터 이어지는 이 땅 인민들에 대한 국가폭력의 역사-늘 그렇듯이 어느 투쟁지역에서나 국가권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의 논리를 폭력적으로 관철시킨다-를 기술해낸다.
매번 절망과 희망 없음을 확인하면서도 또 함께 일어나 서로 의지하며 일상의 평범한 권리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 이에 감독은 “어떤 폭력이나 각자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깨려고 할 때,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지만 이걸 이겨나가는 힘 하나하나, 한순간 한순간이 바로 평화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지켜냈다. 그들은 정당했다”, 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도 없는 시간, 역사 속에서 잊힐,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복원해야 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스물다섯번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많이 아팠을 시간과 사람과 자연을 위로하고 보듬어 안으며 한판 위령굿을 보내는 듯도 하다.
현장이다. 이와 같은 감독의 성찰과 깊은 사유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 대상들의 구체적인 삶의 역사와 그 언어에 기인할 것이다. 제작, 작가윤리라 함은 정형화된 특정 의식 혹은 갖춰진 어떤 시선이나 태도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경험하게 될 세계의 윤리, 그리고 그 충돌에서 생겨날 긴장이자 진동일 것이다. 현장에서 함께 하는 다양한 삶의 이해들이 감독의 질문이 되고, 이러한 감독의 질문들을 통해 영화적 진실을 함께 찾아가는 그 긴 여정 어딘가에 기록의 의미가 위치할 것이다. 영화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그래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어떤 특정 유형의 사람들만 다큐를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계를 대면할 작은 용기와 함께하는 시간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안을 수 있다면, 끊임없이 나를 분열시키고 되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쩌면 우리 모두 다큐멘터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생명과 평화에 대해, 그리고 함께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적 시간을 거치고 나서 나와 우리 이웃의 부조리함을 내 안으로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큰 성취가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