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어떤 점거
젤리, 2016
살면서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나와 공동체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를 포함한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오래된 질문이지만 낯설어서 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아니 우선 그 질문 앞에 서기 어렵다. 일상을 영위하는 일이 예전보다 몇 배 어려워졌고 운 좋게 그런 질문 앞에 선다고 해도 진지해지면 창피해지는 주변 분위기에 어디 물어볼 곳도 없다. 이 질문들은 사회변혁에 대한 실험이 일상에서 사라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낯설다.
사랑 고백 같은 아니 사랑 고백이라고 고백하며 시작하는 <어떤 점거>를 보고 있으면 위의 질문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2009년 12월 25일 시작해 2011년 6월 8일 마무리 된 두리반 점거농성의 531일과 그 시간을 메운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에너지를 모두 담고 있지 못하다. 이것은 기록영상이기보다는....” 로 시작된다. 감독은 고백만큼이나 사랑스럽게 일상을 잡아낸다. 스마트폰으로 찍어낸 농성장의 일상은 거칠고 어둡지만 그 만큼 친밀하다. 칼국숫집의 주인은 안종녀와 유치림이지만 농성장의 주인은 농성을 함께 하는 ‘상근자’를 포함한 이곳을 찾는 모두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불편에 맞서 농성장을 살아낸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편은 전기가 끊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전기가 없다고 상상해 보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는 것부터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농성장엔 햇빛발전기, 자가발전 전구, 연탄, 뜨거운 물이 전기를 대신한다. 번개탄 네 개를 사용해도 연탄불이 붙지 않는다고 집착하는 유치림의 모습은 그에 대한 감독의 사랑만큼이나 길게 그려진다. 그리고 불편해진 상황을 버티는 것이 농성장의 일상임을 보여준다. 보통은 불편함이 모여 피로를 만들고 결국에는 무기력으로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농성장에서는 불편은 다른 것들을 만든다. 안종녀와 유치림 그리고 ‘상근자’(농성장에 연대하러 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들은 불편함을 다르게 소화한다. ‘상근자’들의 잠자리 추위는 유치림이 뜨거운 물로 채운 페트병의 온기로 밀어낸다. 언제든 불쑥 염탐하러 들어오는 용역들의 일상적 위협이 만드는 긴장은 ‘상근자’들의 음악으로 해소한다. 안종녀는 늘어난 ‘상근자’들을 위해 국수를 더 삶으며 자기 순서를 선뜻 내어주고 ‘상근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순간들을 나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편은 새로운 감정들과 시간들 그리고 다른 경험들로 변한다. 철거 때문에 텅 빈 공간은 연대하러 온 홍대의 뮤지션들의 공연장으로 변하고 공연이라고는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유치림은 농성이 끝나면 공연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공사를 위해 버려진 공터는 싱싱한 채소를 얻을 수 있는 텃밭이 되고 옥상은 햇빛발전기를 위한 공간이 된다. 그렇게 농성장은 자본의 질서 대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공간과 시간이 된다.
싸우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에 투쟁하는 ‘상근자’들과 안종녀, 유치림은 일상을 새롭게 구성하며 풍요로워졌다. <어떤 점거>는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상근자’로 농성장을 지킨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고 곱씹어 내어 자신만의 대답을 내놨다. 독립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시선이 닿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누구의 강요도 틀도 아닌 것이기에 영화는 감독의 대답이 된다. <어떤 점거>는 사회변혁의 실험이 어려운 시기에 개인이 어떻게 연대하고 싸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아낼 수 있는지 힌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