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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늙은 연꽃

장윤미, 2016

[초이스]늙은 연꽃  대표 이미지

2016년 한 해 동안 영화제들을 통해 소개된 다큐멘터리들을 돌이켜 보았을 때 내게 떠오르는 작품들 중 다수는 단편들이다. 4.19, 5.18, 87년 6월, 2015년 촛불집회를 기록한 스틸사진들 한 모퉁이에 자리한 흐릿한 얼굴들의 클로즈업과 셰익스피어, 단테, 제발트 등의 작품들에서 인용된 독백을 내레이션으로 하여 되풀이되는 민중, 학생, 노동자, 시민들의 봉기를 상기한 백종관 감독의 <순환하는 밤>. 어두운 밤 스케이트보드와 디스코팡팡 위에서 빛나고 돌아가는 이미지들을 익스트림 줌인으로 잡아내고 다양한 사운드들과의 몽타주를 시도하며 디지털실험영화의 영역을 탐구하는 임철민 감독의 <빙빙>. 감독의 캠코더에 들어온 2016년 서울의 풍경들과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셰익스피어의 글귀들 속에서 ‘삶의 지도’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작품으로, 이미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고재홍 감독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너무 다른 작업들이라, 작품들 사이의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작품 외적인 것이지만 중요한 것으로, 세 편 이상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있는 감독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꼽게 된 나름의 기준은 있다. 각 영화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각 영화들이 보여주고 들려준 이미지와 사운드로 충분히 구축해 낸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이 리스트에는 한 작품이 더 있다. 다른 세 작품에 비해서는 가장 적게 소개되어 아쉬운 장윤미 감독의 <늙은 연꽃>이다. 

<늙은 연꽃>은 한 폭의 정물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정물화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놓고 그린 그림이고, <늙은 연꽃>에 등장하는 나이든 촌부(村婦)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정물화 같은 느낌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첫째로 영화가 촌부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고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영화 중간 촌부가 말을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힘듦에도 이를 자막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촌부에 대해 그녀의 방 한 켠에 쌓여 있는 늙은 호박들이 주는 정보 - 누렇게 잘 익은 호박들이 방 한 켠에 쌓여 있다 - 이상의 어떤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때문에 이 늙은 여인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사람’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두 번째는 촌부의 삶에 어떤 변화, 움직임이 있을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그녀는 움직인다. 여느 시골의 삶과 마찬가지로, 마른 곡식을 거두고 키질을 하며 잠이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이 촌부의 일상은 촬영 전이나 후에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고, 카메라는 별다른 의도가 없는 마냥 이를 관찰한다. 영화가 끝나기 바로 직전까지 촌부는 그저 촌부이고, 그녀의 늙은 호박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들에 머물 뿐이다. 세 번째는 촌부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정물화를 그릴 때 화가와 사물 사이의 거리 정도로, 아주 가깝다는 점이다.

이 스스럼없이 가까운 거리는 <늙은 연꽃>만의 독특한 이미지, ‘늙음 그 자체’를 만들어낸다. 좁은 방 안에서 촌부와 마주 보고 있는 카메라에 담긴 그녀의 얼굴은 주름의 깊이와 개수를 가늠할 수 있게 하고, 무덤 곁에 있는 마르고 거친 풀뿌리들을 맨손으로 뽑아내는 손의 클로즈업은 주름의 깊이만큼이나 두툼한 굳은살을 보게 한다. 그러나 <늙은 연꽃>은 이 이미지들을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죽음 혹은 노쇠함의 고통으로 환원시키지도 지나 가버린 시절에 대한 회한과 감상으로 이어버리지도 않는다. 

<늙은 연꽃>의 정물과 같고, 알 수 없는 늙은 여인의 이미지를 정박시키는 하나의 쇼트가 있다. 오솔길을 따라 무덤으로 향하는 촌부를 따라가는 길에 불쑥 끼어드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줌인하는 장면이다. 허리와 목이 굽은 탓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얼굴은, 그것도 미소 띤 얼굴은 여전히 늙어있지만 아름다움과 온기가 느껴진다. 영화의 제목인 ‘늙은 연꽃’이 상기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이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촌부의 모습에는 늙고 노쇠함 즉, 추에 가까운 것과 연꽃 즉,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영화는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며 이는 이 영화만의 독특하고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 힌트를 가지고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늙은 여인의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끝에 이르러 반전에 가까운 영화의 비밀이 밝혀진다. “할매, 그럼 설에 뵐게요. 설에.” 카메라 뒤에 있는 이는 이 할머니의 손녀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대화씬이다. 이 장면에서 할머니는 카메라 뒤에 있는 손녀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다. 영화 중간에 끼어든 그 아름다운 미소와 같은 미소다. 카메라 뒤에 있었던 이가 이 촌부의 손녀였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될 수 있었고, 그 아름다운 미소를 카메라의 정면으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밝혀진 비밀은 곧바로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늙은 연꽃>을 만든 장윤미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녀는 어떻게 하여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낯섦,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유혹, 설명과 이야기에 대한 강박 속에서 이 같은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혹은 이러한 것들은 애초에 고민의 지점이 아니었고, 자신이 할머니에게서 본 것들을 어떻게 이미지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단 하나의 고민만이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장윤미 감독의 전 작품들,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2012),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를 다시 보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녀의 다음 영화들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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