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위켄즈
이동하, 2016
2016년은 균질적이고 매끈해 보이는 다양한 표면들이 울퉁불퉁해진 해다. 정권 퇴진을 말하는 광장에 “나라 구하는 호모”와 “혁명하는 헬페미”가 등장했다. 이들은 30-50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상상되어 온 ‘시민’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캐롤>이나 <아가씨>, <연애담> 같은 영화에 대한 대중적인 호응은 마찬가지로 이성애 비장애인 남성들의 스펙타클로만 짜여졌던 한국의 지루한 스크린에 다채로운 구멍을 뚫었다. 한국 사회는 확실히 형질 전환되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 혁명의 완수는 아니지만, 변혁의 시작임은 분명하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20주년 기념 프로젝트이자, ‘친구사이’ 내부 소모임으로 시작해 “인권 운동계의 아이돌”이 된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의 10주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위켄즈>. 이 작품은 이런 형질 전환의 시대에 적절하게 찾아온, 그 변화를 견인하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놀라운 작업이다. <위켄즈>는 변화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 속에서 서서히 다가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친구사이가 버텨낸 20년, 지보이스가 목소리를 키워온 10년. 우리 앞을 가로막은 벽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밀어온 그 시간들이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위켄즈>는 1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래를 못하는” 지보이스 멤버들의 연습실에서 시작된다. 지보이스는 1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 중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모이는 것은 즐겁지만 고역이고, 생계를 위한 노동은 고단하며, 연애는 언제나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보이스의 대표곡들이 이런 “우리들의 평범한 게이들”의 삶을 노래하기 때문에, 그 노래들을 연습하는 과정은 단원들의 ‘자기고백’, ‘커밍아웃’, 혹은 ‘수다’와 자연스럽게 엉킨다. 그래서 <위켄즈>를 ‘음악 다큐’가 아니라 ‘뮤지컬 다큐’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다. 그들의 노래, 그 음악이 다큐의 서사이자 곧 형식이기 때문이다.
<위켄즈>가 따라가는 지보이스의 삶, 그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는 한 명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기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커밍아웃하는 것은 1인 영웅담으로 이야기되어도 부족함이 없기는 하다.) 그것은 서로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튕겨져 나가거나 지쳐 쓰러지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보이스의 10년을 함께 더듬고 있다 보면 홀로 영웅이 되기는 오히려 얼마나 쉬운지, 함께 ‘우리’가 되어 세계를 바꾸어 나가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된다. 그리하여 <위켄즈>는 관계를 위한 고군분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관계는 내부의 관계 혹은 친목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확장된다. 화음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합창’으로 완성되듯이, 지보이스의 활동은 게이인권운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운동들 위에 살포시 얹혀진다. 그렇게 지보이스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투쟁의 현장에 함께 했다. 팽목항에도, 쌍차 투쟁 현장에도, 혐오 세력들이 설쳤던 광장에도, 그리고 온전한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서울시민들의 점거투쟁에도, 지보이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래가 터져 나온 순간 세계의 공기에는 새로운 파동이 섞여 들어가고, 그리하여 그것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은 공기가 아니듯이. <위켄즈>가 섞여들어 간 한국의 스크린은 아마도 더 이상 과거의 스크린과는 같지 않을 터다. 그런 의미에서 <위켄즈>는 진정한 판타지이자 꿈의 장르로서의 뮤지컬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판타지는 ‘기만’이 아니라, ‘닥쳐올 미래’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