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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또순이

박상호, 1963

[한국영화걸작선]또순이 대표 이미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영광의 주역인 여자 핸드볼선수 임오경에게는 ‘투혼의 또순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어렵게 번 돈을 낭비하지 않고 모아 시골 사는 부모에게 송아지를 사주었다는 ‘버스 안내양’에게도 ‘또순이’라는 말이 훈장처럼 따라왔다. 그런가 하면 IMF 경제위기를 전후한 시기, 방송드라마에는 이른바 ‘또순이’ 형 캐릭터들이 ‘신데렐라’ 형 캐릭터를 밀어냈다. 

이 ‘또순이’들의 원형은 ‘김희창 작 HLKA 방송극으로 억센 함경도 기질 여성 또순이를 부각하여 만인의 갈채를 받은 <행복의 탄생>’의 영화화를 통해 실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웃으며 살아가는 또순 또순/즐겁게 살아가는 또순 또순/가슴에 태양 안고 희망에 꽃 피우며 슬픔도 괴로움도 세월과 같이/사랑만이 행복만이 꿈같이 벌려져/웃으며 살아가는 또순 또순”

라는 주제가가 ‘억척스러우리만큼 굳건히 생활을 개척해나가는 명랑한 여성상’으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청취자의 귀를 만족시킨 데 이어 영화 <또순이>(박상호, 1963)의 등장은 ‘백만 청취자의 심금을 울린 명작드라마의 영화화, 거센 세파를 휩쓸고 살아가는 함경도 아가씨 또순이의 눈물과 사랑’이란 내용으로 제작 전부터 대중의 관심과 화제를 몰고 왔다. 여성 청취자들의 수요에 부응해 방송드라마에서 영화화 되었을 <또순이>는 가정과 사회의 벽을 무너뜨리고 당시 가정 안에만 머물던 여성들에게 사회를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을 열어준 라디오 멜로드라마가 갖고 있는 친밀감과 근접성 그리고 공공성이 영화로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 <또순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파른 세파에 부딪히면서도 ‘남성을 능가하는’ 생활력을 가진 여성을 등장시켜 체념과 인종을 미덕으로 삼는 눈물짓는 여성상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이영일에 따르면 “이태리 영화에서 소피아 로렌이 그러했듯이 도금봉을 주인공으로 그려졌던 작품들은 지금까지 슬픔을 받아들이기만 했던 여성들의 생활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공했다. 이 영화는 도금봉의 스타성에 기반하고 있는데 여성 관객에게 도금봉은 이러한 다양한 역할의 총합이면서 자신들이 본 영화와의 상관관계에 따른 기억의 결과물이다. 도금봉은 황진이였는가 하면 류관순이었고 진성여왕이었는가 하면 심청이었으며 <동심초>의 부잣집 딸이었는가 하면 <또순이>의 억척스러운 함경도 처녀였기 때문이다. 

‘형이 순이인데 또 계집애가 나왔다 해서 또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녀는 애시당초 집안의 기대가 별로 크지 않았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서울놈’에게 시집가서 허구한 날 친정으로 돈을 꾸러 오는 언니(이빈화)와는 차별되는 60년대가 요구하는 생활형 인간이다. 더구나 한국 전쟁 후 일과 돈밖에 모르는 생활력과 무쇠 같은 성격을 요구했던 월남 피난민들을 대변하면서도 동시에 근대적인 새로운 아버지상이 요구되던 시대상 안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갈테니 십 오년 동안 뼈저리게 일해 온 월급을 줘야 할 게 앙이겠소.” 해서 자신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이나 짐꾼, 떡장수, 연탄장수 등, 일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자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창조한다는 신념’ 아래 부질없이 남을 믿거나 감상적으로 남을 돕지 않는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을 알린다. 

영화는 애인 심재구(이대엽)가 당한 타이어 사기는 물론 무슨 일이든지 해결해내는 또순이와 운전수로 취직하겠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만 소극적인 태도로 실패를 거듭하는 심재구를 대비하면서 결국 또순이가 심재구에게 새나라 택시를 안기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과년한 딸자식이 집을 나간 것에 대해서 걱정하던”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월남한 아버지와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애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대립과 반목의 완충지로서 국민 대통합에 대한 은유가 된다. 동시에 노동과 일을 통해 국가의 근대화에 통합되었던 미혼 여성들과 공적인 노동의 관계는 어차피 일시적인 것이며 평생의 정체성인 모성을 획득하기 위한 결혼은 당연한 귀결이 된다. 하지만 이성애 커플의 완성을 통한 핵가족의 구성이 근대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불완전함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명랑한 낙관성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희망 잃은 남편/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철저하게 미래의 남편에게 자리를 내주며 그동안의 억척스러움마저도 이를 위한 밑거름이 되는 설정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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