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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커튼콜

류훈, 2016

[초이스]커튼콜 대표 이미지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를 기억하는 영화 팬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배우, PD, 작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무용담(?)을 리얼타임에 가깝게 그린 코미디로 벌써 17년 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 극작가/각본가/감독인 미타니 코키의 이름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새겨준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인물들이 점입가경의 상황에 한데 뒤섞이는 소동극 장르의 재미와 가치를 각인시켜준 코미디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 개봉한 류훈 감독의 <커튼콜>을 보면서, 이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공간만 연극 무대로 바꿨다뿐이지, 의도치 않게 점철되는 악조건을 뚫고 작품을 마쳐야 한다는 주인공들의 그 의지와 노력은 분명 최근의 상업영화나 독립영화 모두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배경과 시선이었다. 

세상은 ‘삼류’라 칭하지만, 그들에게도 꿈은 있기 마련이다. 대학로에서 ‘19금’ 연극을 연출 중인 민기(장현성)가 그런 부류다. 지금은 생계에 쫓겨 야시시한 연극을 쓰고 연출하지만, 마음속 한편엔 예술이, ‘햄릿’이 자리하는 예술인이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으니, 컴퓨터 게임을 하던 극단주의 “이러니 요즘 누가 연극을 보냐”는 한 마디에 극단 해체가 결정된 것. 실의에 빠진 민기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과거 학생 시절의 꿈을 떠올리고, 동반자와 같은 프로듀서 철구(박철민)와 극단 배우들을 설득해 <햄릿>을 연극제 무대에 올리기로 맘먹는다. 물론 극단주에게는 이 사실을 극비로 남긴 채. 

영화적인 톤은 민기의 판타지에서 잘 드러난다. 연극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찼던 10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도 모자라 <햄릿>을 연출하라고 추동하는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주인공 민기의 심적 알리바이를 위해 마련된 판타지다. 여기에 <커튼콜>은 또 한편으로 민기와 배우들의 가족들을 등장시켜 훈훈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커튼콜>은 예술과 사람에 대한 주제적인 관심을 코미디라는 외피와 무대라는 공간에 접목시켰다고 보면 맞다. 그리하여 배우진이 완성되고, 연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상황이 펼쳐진다. 각각 사연을 품은 배우들은 무대 안팎에서 황당한 실수와 반전과도 같은 장기(?)를 터트리고, 민기와 철구의 번뇌와 임기응변은 <햄릿>이 내용마저도 바꿔놓게 된다. 그럼에도 연극은 계속돼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커튼콜>은 시트콤과 같은 상황을 버무리고, 캐릭터들 간의 반목과 화합을 조율한다. 악역은 없다. 선의나 열정, 각자의 입장이 빚어내는 한바탕 소동이 존재할 뿐이다. 민기의 스승인 노배우는 치매를 앓고 있고, 그토록 말이 없던 아이돌 출신 여배우는 흥분하자 사투리를 쏟아내며, 배우들 간의 애정사가 <햄릿>의 이야기마저 바꿔 버린다. 카오스가 되어 버린 이 무대를 민기는 어떻게 마무리하고, 무사히 ‘커튼콜’에 이를 수 있을까. 

중, 후반부를 고스란히 채우는 무대 상연 장면이야말로 <커튼콜>의 핵심이며 제작진이 가장 공을 들인 긴 시퀀스다. 그만큼 코미디로서 <커튼콜>의 형식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그 <햄릿>의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변모하는 가운데, 해프닝과 연결되는 캐릭터 간의 관계, 성격, 전사들이 촘촘히 엮여 있어야만 영화 안팎의 관객들에게 그 설정을 납득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커튼콜>은 이 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산에 봉착한다. 연이은 배우들의 슬랩스틱과 실수가 <햄릿>의 이야기를 변모시키는 와중에 객석을 지킬 충성도 있는 관객이 실제로 얼마나 되겠는가. 더욱이, ‘현실성’을 가장 중시 여기는 영화 밖 현실의 한국 관객들이 그러한 설정을 감내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와 <커튼콜>의 결정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라디오 창작드라마 생방송에 관객은 없다. 목소리만 듣는 청취자만이 존재한다. 배우들과 제작진이 그 어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목소리만, 이야기만 흘러가면 그만이다. 대신, 그 해프닝을 스크린 밖에서 관람하는 현실의 관객들은 포복절도할 수 있다. 반면 <커튼콜>은 망가지는 <햄릿>을 관람하는 스크린 안 관객들의 인내를 스크린 밖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지를 간과했다. 

영화는 배우들의 ‘커튼콜’로 마무리된다. 다시금 무대 안팎을 그려낸 영화의 형식미가 강조된다. 극 속에서 고생한 배우들의 노력이 마치 무대극을 실제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자아내는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커튼콜>은 독특한 형식의 코미디를 만들기가 얼마나 악전고투와 같은지를 영화 안팎으로 보여줬던 작품이라 할 만하다. 더욱이 저예산의 제작비로 대형 투자/배급사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서 작년 연말 극장가에서 흥행의 쓴맛을 봐야 했다. 코미디란 장르 자체를 점점 쉬이 만나기 어려워지는 극장가에서 분투했던 <커튼콜>은 분명 곱씹을 만한 희귀종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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