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신탄진
최정문, 2015
<신탄진>은 사회참여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무궁화호에 오른 팀원들과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는 승객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작가이자 연출자인 주인공 정문이 팀원들에게 공연의 엔딩 장면에 대해 의견을 구한다. 그녀는 걱정과 불안이 뒤엉킨 표정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가 흘리는 눈물이 과연 온당한가라고 묻는다. 밀양에 살고 있던 할머니의 죽음, 가까운 이웃과의 이별 때문에 눈물이 유효하다는 배우의 입장과 근원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관객들을 응시함으로써 맺음을 하자는 그녀의 의견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쉴 새 없이 덜컹거리면서 밀양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는 (이들이 무대에 올릴 공연의 방향인) 아방가르드와 사실주의, 처연한 응시와 폭발적인 눈물 사이에서 떠도는 생각의 갈래를 대신하는 장치가 된다. 더 난감한 상황은 팀을 떠나 직장인이 되어 있는 주인공의 옛 애인을 만나면서 생겨난다. 부유하는 의견들과 불확실한 결론은 예기치 못한 순간, 마주친 남자로 인해 감정의 급격한 흔들림으로 변이된다. 어긋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기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쫓는다. 감독은 역의 광장-택시-아파트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해 결론을 맺지 못한 연극으로부터 도망가는 동시에 한때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빠져나가 버린 무언가와 맞닥뜨린 인물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녀는 오로지 운동에 몸을 맡긴 존재처럼 필사적으로 움직이지만, 딱히 헤어진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확인하고 싶은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니다. 결정과 선택을 유예시키는 이 행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예술적 표현의 올바름에 대한 고민과 여전히 흔들리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 인물의 솔직한 표정이 된다.
이 영화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은 했으나 도착하지 못한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흔들림의 상태와 쉽사리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이어지는 부단한 운동성, 그로 인해 표출되는 잠정적 순간이다. 최정문 감독은 국가의 부당한 탄압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힌 개인을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인물의 노정이 실패와 성공으로 귀결되는 방식에 저항한다. 인물의 행위와 동기의 연관성, 불안한 공연과 실패한 연애의 상관관계, 말로 전달되는 의미와 붙잡아맬 수 없이 빠져나가는 일시적 감정의 폭에 집중함으로써 결론을 유예시킨다. 즉, 현실의 층위에 잠복해 있는 고질적인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적인 질문을 하거나 미세한 감정의 떨림이 충동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렇기에 <신탄진>은 운동하던 카메라가 어느 순간 멈춰 서는가, 시선의 엇갈림과 응시는 어느 순간 가능해지는가에 집중함으로써 인물의 생각과 행동, 머뭇거림과 결단, 실패와 재출발 사이에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영화의 핵심에 배치된 길거리-아파트 단지-놀이터-주차장으로 이어지는 5분 남짓한 시간은 두 인물의 마주 봄으로 채워진다. 기차와 택시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던 카메라가 이 지점부터 숨을 고르는 듯 차분해진다. 서로 마주 보다가 “애들 기다리지?”, “갈게.”가 고작인 대화를 나누고 남자가 프레임 아웃 하면 주인공의 시선만이 텅 빈 공간을 더듬는다. 이어지는 신에서 그녀는 역 광장으로 되돌아온다. 여전히 사람들의 분주한 일상이 지속되는 곳, 경부선의 중간 지점인 신탄진 역에서 그녀는 쪼그려 앉는다. 운동하던 인물과 카메라가 동시에 멈춘 마지막 쇼트에서 이 영화의 결심을 엿볼 수 있다. 클로즈업-롱쇼트, 핸드헬드-고정된 카메라, 객차 안의 사람들 무리-홀로 남은 그녀, 기차 안-광장으로의 이행은 카메라가 근접해서 드러낼 수 있는 것과 멀리 떨어져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순간을 체득한 자이기에 가능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과 희미한 불안, 견딜 수 없는 동요와 체념까지 껴안은 미완의 시간, 미정의 상태로의 여정이 곧 <신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