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bomb! bomb! bomb!
김곡,김선, 2006
남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특수 집단, 학교와 군대. 폭력과 권력으로 대변되는 주류 남성성은 이 폐쇄적 남성공간을 통해 획득되고 구성된다. 말하자면 남자 고등학교는 ‘예비 남성’인 소년들의 병영체험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곳은 의리와 우정으로 대변되는 남성 결합의 공동체인 동시에 숭배, 질투, 분노의 감정이 오가는 잔인한 결투의 장이다. 왕성한 발육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의식상태는 잔혹한 공격성향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른바 왕따(집단따돌림) 현상은 그러한 정념의 발화일 것이다. 차이에 대한 이질감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그저 재미있으므로 강자는 약자를 괴롭힌다.
이 풋내기 수컷 문화로 점철된 남고에 마선과 마택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우팅 당한 마선은 급우들 사이에서 ‘호모새끼’로 낙인 찍혀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같은 반의 마택은 그에게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선듯 마선의 편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얼굴 가득 여드름 꽃이 핀 두 인물은 배우가 아닌 실제 고등학생이다. 반의 아이들은 마선을 향해 “호모새끼”, “더러워, 역겨워”, “진짜 저 새끼 너 애인이야?” 등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마초적 대사들을 시종일관 쏟아내는데, 그것이 뻔한 설정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그 또래의 문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또래의 비전문 배우로 캐스팅했기 때문이리라.
한편, 둘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으니 바로 음악이다. 마선은 드럼, 마택은 베이스를 연주한다. 출중한 연주실력을 지닌 두 사람은 나란히 교내 밴드부에 합격하게 되고, 밤새 연습을 하면서 미묘한 감정을 쌓아간다. 둘은 말이 아닌 음악의 언어로 교감하기 시작한다. 밴드 음악에서 전체적인 리듬을 형성하고 받혀주는 드럼과 베이스의 긴밀한 관계만큼이나 이 둘의 합주는 찹쌀떡 궁합을 보여준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이들의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긴 동물 왕국의 아이들은 둘을 연인으로 간주하여 공개재판을 연다. 마택은 자신마저 따돌림을 당할 상황에 놓이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선에게 배반의 장미를 던진다. “김마선, 니 애인한테 가서 똥구멍이나 핥아!”
영화는 학교 내 남성 동성애자의 현실을 다루기는 하지만, 성적지향에 따른 차이보다는 집단 괴롭힘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호모포비아라는 특정한 소재를 토대로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왕따 현상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마택이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가난, 외모, 장애, 성적 등으로 치환하여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이유들은 급우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겠지만, 동성애자란 정체성은 혐오와 경멸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일 듯이다.
이같은 경계의 불확실성은 둘의 관계와 정체성도 해당된다.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마선이 동성애자인지 아니면 단순 루머에 의한 따돌림의 피해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스스로 긍정도 부정도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선을 향한 마택의 감정이 약자에 대한 연민인지, 혹은 음악적 연대감을 나누는 우정인지 모호하다. 심지어 마택 역시 클로짓 게이로서 마선을 향한 묘한 애정을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가 마선을 특별히 신경 쓴다는 것 외에는 무엇도 확신할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의 모호성은 영화의 단점이기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흔히 우리가 확연하게 선을 긋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란 것이 실상 불명확하고, 또한 남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특수한 차별과 폭력의 문화를 보편적인 따돌림 현상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자면 자칫 영화가 평범하게 설명되는 듯하다. 분명 <Bomb! Bomb! Bomb!>은 관습적인 내러티브를 거부한 채 실험적인 영화를 제작해온 쌍둥이 감독 김곡, 김선의 이전 영화와는 달리 친절한 내러티브를 구사한다. 그러나 비타협창작집단 곡사의 인장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드러난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물원’의 제물이 된 마선은 홀로 책상에 앉아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소위 ‘동물원’이라 불리는 이 놀이는 교실에 왕따 한명을 가둬넣고 동물 취급을 하는 집단따돌림의 한 종류이다. 이 잔혹한 놀이는 광기에 사로잡힌 수컷집단에 의한 희생양의 정신적 화형식이다. 창문을 두드리며 광분하는 아이들을 비집고 이내 마택이 나타난다. 그는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교실문을 열고 마선에게 다가간다. 동물원의 동물로 만난 마선과 마택. 이때 침묵을 지키던 마선이 말한다. "마택아, 쟤들 다 죽여버릴까?" 그리고 정말 음악과 함께 모두를 죽여 버린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마지막 두 주인공이 선사하는 전복의 쾌감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 제의를 보며 분노에 휩싸여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 교실을 폭파 시키고 싶은 기분에 휩싸일 때, 카운트다운하듯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Bomb! Bomb! Bomb!)하며 안과 밖은 역전된다. 광분하던 창밖의 아이들은 마선과 마택의 연주에 열광하는 군중으로 변하고, 우리의 분노와 슬픔은 흥분과 전율로 뒤바뀐다. 윗옷을 벗은 채 그들만의 상상적 공간 속에서 발광하듯 합주하는 마선과 마택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폭발력있는 오르가즘을 발휘한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한 세계의 전복. 모든 아름다운 영화가 그렇하듯 < Bomb! Bomb! Bomb! >은 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PS:
<Bomb! Bomb! Bomb!>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시선 시리즈 중 <세 번째 시선>(2006)에 포함된 작품이다. 시선 시리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로, 2003년 <여섯 개의 시선>에서 시작돼 박찬욱, 류승완, 임순례, 장진, 김태용 등 총 52명의 쟁쟁한 한국 영화감독들이 참여했다. 알려진 바로는 2015년 정지우 감독의 <4등>을 끝으로 제작비를 구하지 못하여 잠정적 중단 되었다고 한다. 이 훌륭한 기획이 올해는 부활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