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혼자
박홍민, 2016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은 보통 현실에서 살짝 빠져나와 범상치 않은 어떤 일들을 한도 없이 무책임한 자세로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우연치 않게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수민(이주원)으로 문을 여는 <혼자>는 범죄스릴러 영화로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들게 하다가 목이 없어져 버린 자기 자신을 보거나, 정면으로 비추진 않지만 망치에 머리가 박살 난 것이 분명한데 방금 전과 상관없어 보이는 어느 지점에서 눈을 뜨고 일어난다거나 심지어 발가벗겨진 채라든가 하는 식으로 관객의 얼을 빼놓는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본다. 빠져나갈 수 없는 악몽을 보여주려 한 것인가? 그나저나 테이크는 왜 이렇게 긴 것인가?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혼자>가 어떤 영화인지 말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체험은 그렇게 기분 좋지만은 않다.
박홍민 감독은 준비했던 영화가 중단되고 약 2년간 고립되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러던 와중에 자괴감도 심해지고 타인들과 교류하는 것이 힘들어질 지경이 되어가는 도중에 <혼자>를 기획했다고 한다. 원칙은 최대한 롱테이크를 쓸 것. 매우 적은 예산이라서 한 번이라도 NG가 나면 제작이 거의 빵꾸(?)가 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많은 리허설과 철저한 계산으로 어려움을 돌파했다. 그런데, 왜 꼭 롱테이크여야 했을까?
내가 본 <혼자>는 불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하여간 괴로운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상징적인 폭력과 괴로운 기억이 뒤엉킨 폭력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누군가의 상념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아주 간단히 말해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시작점에서 살해당하는 사람은 수민의 여자 친구 지연(송유현)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중간에도 등장하고 마지막에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혼자>는 어떤 계기로 인해 (일종의 버리고 싶은) 의식 속으로 진입해 이루어지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 자체가 일종의 관념이라는 것이다. 그 관념은 영화의 후반에 등장하는 수민이 지연에게 들려준 꿈 이야기, 그리고 동네와 뇌에 관한 비유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점(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범한 커플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시퀀스)이 이른바 리얼리티를 담보한 세계냐? 그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 숏은 바로 마지막의 산동네의 전경을 비추는 숏이다. 불이 하나둘 꺼지면서 암전으로 진입하는 이 장면은 비로소 누군가의 생각이 멈추고 어둠으로 진입해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것을 수면이라고 부르든 죽음이라고 부르든 자유겠다. 이런 면에서 아마도 롱테이크라는 형식이 필연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 어떤 관념을 떠올릴 때 사건, 개념, 에피소드를 명확하게 핵심만 짚으며 찍어나가는 식으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최대한 영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37컷으로 90분을 채우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일컬어 ‘스릴러’라고 표현하는 글들을 본 일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쪽은, <혼자>는 ‘스릴러’를 포함한 어떠한 장르의 문법의 틀에도 몸을 구겨 넣을 의사가 전혀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되레 형식이나 문법에서의 제약을 벗어나면서 힘을 발휘하는 지점도 있다. 다소 거칠거나 지나친 것 아닐까 하는 설정이나 촬영들이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지만 감독의 비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납득이 간다. 맞다고 느끼는 쪽은, 보고 나오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내 기분 탓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데 그것이 오히려 영화를 통해 본 내 머릿속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영화에 표현되는 많은 이야기들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자기혐오와 그것이 기어코 나를 뒤덮는 것에 대해 도망칠 수 없다는 불가피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문득 과거의 상념들을 호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무섭다. 그것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