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재꽃
박석영, 2016
영화는 아직 어두운 새벽, 작은 소녀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화면 안으로 들어오며 시작된다. 이제 곧 소녀가 도착할 작은 마을의 아침. 하담은 대문을 활짝 열고 누군가를 맞듯 환하게 웃는다. 열 한 살인 소녀 해별은 일주일 전 엄마에게 버려졌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빠일지도 모를 사람을 찾아 시골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해별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하담. 하담은 해별의 캐리어를 대신 쥐고 마을로 안내한다.
<재꽃>은 박석영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들꽃> <스틸 플라워>에 이은 꽃 시리즈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들꽃>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던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스틸플라워>는 자립을 위해 일과 공간을 찾던 하담의 여정이었다. 이번 <재꽃>은 아빠를 찾는 해별과 그를 보듬는 하담의 이야기다. 세편은 각기 다른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의 형식에도 차이가 있다. <들꽃>에서 카메라는 인물들의 불안함을 대변하듯 클로즈업으로 표정을 담아냈고 <스틸플라워>는 핸드헬드로 하담의 여정을 뒤따랐다면 이번 <재꽃>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어 먼발치에서 인물들을 응시한다. 고요한 시골 풍경, 그 풍경의 일원이던 인물들이 감정의 파장으로 동요하는 순간 그로 인해 고요하던 풍경이 이질적으로 변화하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플롯과 형식의 차이를 보이는 꽃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집’이다. <들꽃>과 <스틸 플라워>의 아이들은 폭력의 공포로 쪽잠을 자야 하는 낡은 여관방과 칼바람이 새어드는 재개발지역의 빈집이 아닌 온전한 집을 얻기 위해 분투했고 <재꽃>의 해별 또한 몸과 마음의 안전을 위한 집을 찾기 위해 마을에 온다. 또 하나 세 편의 영화 속 아이들에게 부재한 것은 ‘어른’이다. 박석영 감독의 꽃 시리즈는 길에 내몰려진, 꺾여 버린, 버려진 많은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보내는 속죄이다. 물리적 시간으로 ‘어른’이 되었으나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은 못난 어른들. 미숙한 이 어른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획득한 권력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외면하고 곤경에 처하게 하는지 그 폭력성과 예의 없음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도 사실 무서운 것이 많다고. 그를 인정하지 않고 너희에게 상냥하지 않고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반성도 아무런 변명이 되지 못한다고. 우리의 미숙함을 너희에게 전가해서 미안하다”는 고백과 진정어린 사과. 감독은 이들에게 어떻게 사과하는 것이 옳은가, 태도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들을 연민의 대상이나 수혜의 대상이 아닌 온전한 주체로 대하며 자신이 지닌 영화적 언어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감독의 위와 같은 주제의식과 태도는 영화 속 ‘하담’이라는 인물로 구현된다. 영화에서 하담은 혜별보다 조금 클 뿐이고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하담이 두려움을 핑계로 아이를 외면해 버리는 어른들을 대신해 혜별을 보듬는다. 이러한 하담을 통해 영화를 보는 우리 또한 감독의 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엔딩의 해별과 하담의 뒷모습을 마주할 때 먹먹해지는 이유이다.
<재꽃>을 마지막으로 감독과 아이들의 여정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꽃 시리즈를 통해 감독은 시대적, 개인적 고통은 위로받고 보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상엔 함부로 잊혀서도 버려져서도 되는 건 없다고.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으로 이어진 장시간의 여정에 관객으로서 동참할 수 있어 고마움을 전한다. 어느새 우리 곁에 도착한 박석영 감독과 배우 정하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