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현장
[영화현장]스크립터: 현장과 편집실의 연결 고리
현장과 편집실의 연결 고리
2016년 여름 나는 이송희일 감독의 중편 <미행>의 스크립터로 참여했었다. 굵직한 스케일의 상업영화도, 전문적 스크립터로서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하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영화 <미행>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정옥)가 경찰의 수색작업으로 출입이 통제된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고, 한 경찰(재원)이 정옥을 쫓는다. 영화 <미행>은 아이를 쫓는 정옥과 그녀를 쫓는 재원의 이야기다.
산에서 시작하여 산에서 끝나는 영화라 모든 촬영이 산에서만 이루어졌다. 가장 무더운 8월의 산에서 촬영을 했기에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은 더위에 지쳐있었다. 그럼에도 정옥 역의 조민수 배우는 본인이 나오지 않는 분량의 촬영에서도 항상 레퍼런스 음악을 들으며 현장의 스태프들과 함께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이제는 죽은 아들의 행복했던 모습을 정옥이 회상하는 장면을 찍고 있을 때였다. 정옥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정옥은 화면상에 출현하지 않았다. 그 분량을 다 찍고 스태프들은 다음 컷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모니터를 체크 하고 있었다.
다음 컷은 회상이 끝난 뒤 정옥의 격앙되는 감정을 보여주는 컷이었다. 조민수 배우는 모니터 체크를 하던 나에게 다가와 방금 전 컷의 오케이 테이크를 다시 보여 달라고 하였다. 조민수 배우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서 회상하는 것이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배우 조민수가 아닌 ‘아이를 잃은 정옥’처럼 느껴졌다. 정옥과 내가 같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참여하는 게 아닌 한 영화가 그대로 세상이 되는 순간 속에 있다고 느껴서였을까? 촬영이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처럼 스크립터는 감독 다음으로 배우와 화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스크립터의 실제적인 업무는 무엇일까? 스크립터는 프리프로덕션에 있어서는 시나리오를 포함한 모든 ‘문서’와 관련된 일을 한다. 각종 회의록 정리, 콘티 정리, 연출적인 디테일에 관한 변동 사항 체크 등을 말한다. 또한 프로덕션에서는 촬영된 데이터를 파악하고 정리하며 스크립 페이퍼를 작성한다. 스크립 페이퍼에는 이전 컷과 바로 다음 컷이 어긋나는 부분이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연결을 파악하고 기록한다. 예를 들면 영화 <미행>에서 지리산에 들어온 관광객들에 섞여 재원이 정옥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엑스트라가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였다. 촬영 여건상 엑스트라가 이틀 다 참여할 수 없어서 그 장면의 넓은 컷(엑스트라가 나오는 컷)은 촬영 첫날 찍고 타이트한 컷(재원 단독 컷처럼 엑스트라가 나오지 않는 컷)은 다음날 찍게 되었다. 첫날 찍은 넓은 샷에서 재원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움직임을 행했는데 타이트한 샷에서 그와 반대인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임을 행하면 두 컷 사이의 운동성이 맞지 않아 편집을 할 때 두 컷이 붙지 않게 돼서 나와 감독님은 첫날 찍은 영상을 핸드폰에 넣어 더블 체크를 했던 경험이 있다. 이처럼 스크립터는 화면에 출연하는 사물과 인물의 모든 연결을 체크 한다. 또한 현장에 따라 감독이 카메라로 촬영되고 있는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모니터와 연결에 필요한 모니터 라인을 스크립터가 들고 다녀야 곳도 있다.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에서는 정리된 스크립 페이퍼를 가지고 포스트프로덕션팀이 후반 작업을 할 때 함께 한다. 간단히 말해 현장과 촬영 후 포스트프로덕션팀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질문 말고 누군가 내게 “스크립터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연출전공으로서 나는 “스크립터란 감독의 또 다른 눈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는 사람” 이라고 대답할 것 같고 스크립터로서의 나는 “화면의 연결을 잘 파악해 편집할 때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물론 저 대답이 스크립터의 많은 업무를 통칭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심플하면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며 그렇다면 상업영화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스크립터란 무엇인가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문 스크립터를 하는 동생과 상업 영화감독인 선배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우선 전문 스크립터인 동생은 스크립터란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얘기하자면, 스크립터란 현장과 편집실을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대답했다. 스크립터를 하면서 좋은 점은 작품에 깊숙이 소속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지점이 부담이 된다고도 말했다. 상업 영화감독인 선배의 대답은 연결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쨌든 시나리오부터 콘티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계속 감독 옆에 있으니 영화 전체의 흐름에 있어 감정과 내용 면에서 어긋나거나 불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함께 보고 체크하여 감독이 최종 오케이를 내기 전에 참고할 수 있는 의견을 제공하는 역할인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이렇듯 나의 의견과 두 사람의 말처럼 스크립터는 영화 내 모든 컷의 연결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체크하고 고려하여 감독의 판단을 도움과 동시에 최종 결정권자인 감독 다음으로 작품에 가까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역할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부서보다 스크립터를 하고 싶다고 얘기할 것 같다. 역시나 그 이유는 현장의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투영되는, 그야말로 ‘영화적 순간’의 떨림과 감흥을 감독과 함께 가장 처음으로 만끽하는 역할이 스크립터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보고 방금 전 테이크가 너무 좋아서, 영화적 모멘트를 갖고 있는 그 순간에 도취되어, “감독님, 이번 컷 너무 좋아요.” 라고 말하고 감독과 나는 둘 다 황홀해 하는, 그러한 순간들이 스크립터로서 영화에 참여하는 내내 나를 감싼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험들이 내가 앞으로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의지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렇듯 스크립터의 역할은 영화에 참여하는 다른 스텝들의 역할 못지않게 멋지고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