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최후의 증인
이두용, 1980
“굉장한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몰입해서 봤다. 이두용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다 챙겨볼 생각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후의 증인>을 처음 본 베를린영화제 포럼 위원장 크리스토프 테레히테는 이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이두용 감독의 회고전을 준비한 입장에서 해외 영화제의 이런 반응은 일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영상자료원에서 때마침 디지털 복원한 <최후의 증인>을 완성, 부산에서 선보인 것도 해외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이 영화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이두용 감독 본인은 이렇게 <최후의 증인>이 다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데 큰 기쁨을 표했다. 그가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1980년 제작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검열 문제 때문에 40분 이상이 삭제된 채 개봉했고 완전히 잊힌 영화가 됐다. 2006년 삭제 이전 원본이 공개되자 비로소 이두용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가를 얻게 됐고, 다시 오랜 세월이 흘러 올해 화면과 음질이 개선된 복원판을 선보인 것이다. 국내외 영화인 가운데 많은 이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후의 증인>에 출연했던 배우 최불암, 동시녹음을 담당했던 배우 양택조 씨도 완성된 지 36년 만에 처음 <최후의 증인>을 봤다며 감격했다.
영화 외적인 화제가 많지만 <최후의 증인>은 작품 자체로 더 많이 논의돼야 할 영화다. 한국전쟁에 기원을 둔 비극의 사슬을 그리는 이 영화에는 2명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등장한다.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대변하는 듯한 이 두 사람은 손지혜(정윤희)와 황바우(최불암)이다. 지리산 빨치산 사령관의 딸인 손지혜는 토벌작전을 피해 숨어있던 곳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황바우 덕에 간신히 살아나지만 다시 몸을 빼앗기고 원치 않는 사람과 20년을 살아야 하는 고통을 당한다. 순박한 남자 황바우는 손지혜를 지키려 무던히 애쓰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출옥을 한 뒤에도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2명 모두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련 없는 인물이건만 그들은 철저히 짓밟힌다. 전쟁의 그림자 아래 숨어 있던 인간들의 욕심이 괴물 같은 형체를 드러내고 약자들의 몸과 마음을 찢어놓는다.
이들의 한 많은 사연을 파헤치는 인물로 형사 오병호(하명중)가 등장한다. 영화는 오병호 형사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통해 수십 년에 걸친 기막힌 사연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이두용 감독의 대담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능력이 십분 발휘된다.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힘과 무게가 대단한 영화인데, 그중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오병호 형사의 캐릭터이다.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낡은 코트를 입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시골 마을을 누비며 사건을 추적하는 이 남자는 처음부터 대단한 정의감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때로 야비한 느낌마저 준다. 그가 지리산 빨치산 부사령관이었던 강만호를 만나 그의 증언을 듣고 취하는 태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곧 죽을 것 같은 노인 강만호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줄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아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태도로 강만호의 집을 나서던 오병호 형사는 강만호의 죽음을 목격한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말로 사람이 죽었다. 오병호 형사가 나중에 손지혜와 황바우의 사연에 감정이입을 하며 그들 편에 설 수 있던 것은 자신이 강만호를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두용 감독은 오병호 형사를 정의감 투철한 영웅이라는 일차원적 캐릭터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어둠에 다가가며 결국 스스로 감당 못 할 진실에 도달한다. 역사의 진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역사의 희생자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를 오병호 형사는 최후의 증인이 되어 목격한다.
분단의 아픔을 다룬 수많은 영화 가운데 <최후의 증인>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직접 전쟁을 다루지 않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그리지 않고서도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준다. 가해자들은 단죄되지 않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더해만 간다. 영화는 이 비통한 사연이 대를 이어 유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후의 증인>이 제작된 1980년 광주에서 억울한 이들의 죽음이 있었다. 영화 속 비극은 다시 현실이 되고 세월호의 침몰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의 이기심, 욕망, 사리사욕이 빚어낸 한국 현대사를 <최후의 증인>은 증언할 뿐 아니라 예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