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여고괴담4 - 목소리
최익환, 2005
<여고괴담>은 386세대의 <장화홍련전>이었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가련한 소녀가 귀신이 되어 떠돌고 있으니 어떻게든 위로하여 저승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단지 그 소녀를 죽인 건 사악한 계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무능하고 잔인한 교육제도였고 귀신이 그렇게 소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다르다. 이 영화의 희생자들은 그냥 귀신의 모습에 놀라 알아서 죽은 게 아니다.
<여고괴담>(1998)은 대성공작이었고 그 뒤로 세 편의 속편이 이어졌다(한 편 더 있다는 소문이 도는데 난 믿지 않는다.) 이 속편들은 흥미롭다. 속편이라는 것이 결코 1편에 의해 정의되지 않으며 시리즈는 종종 자기만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여고괴담 4 - 목소리>(이하 목소리)(2005)에 도착하면, <여고괴담> 1편에 있었던 것들 중 남은 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분노, 증오, 혐오는 이전처럼 중요하지 않다. 장르 호러물의 충격 효과도 점점 축소된다. 대신 학생들의 로맨스는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지고 또 일상화된다. 1편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고괴담’ 영화이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가 이 시리즈의 열성팬들이 생각하는 가장 원형적인 ‘여고괴담’ 영화라면 <목소리>는 그 와중에 스스로 생성된 ‘여고괴담’의 틀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완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을 볼까? 굳이 서브 장르를 따진다면 <목소리>는 ‘귀신 탐정’ 이야기에 가깝다. 음악실에 혼자 남아 노래연습을 하고 있던 영언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살해당한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깨어나 보니, 영언은 학교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는 지박령이 되어 있고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다행히도 단짝 친구 선민이 영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둘은 그날 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2인조 탐정물 시리즈의 파일럿이 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배경의 무국적성이다. 앞의 세 편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나라의 여자고등학교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동성애, 집단 따돌림, 질투, 경쟁의식은 세상 어느 학교에도 있겠지만, 그건 모두 이 나라의 특수성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야기되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그런 게 없다. 이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 가도 이식될 수 있다. 몇몇 조연들의 대사들을 제외하면 이들의 대사는 거의 외국 소설에서 번역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열심히 또박또박 ‘여고괴담’ 연기를 하고 있는 풋내기 배우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네” 같은 문어체 대사에 애를 먹는다.
이건 단점이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현상이다. <목소리>는 이런 한국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도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여고괴담’ 영화이다. 대한민국 학교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시리즈의 틀이 어느 새부터 원래는 의도하지 않았던 자기만의 모양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국적을 떠난 추상적인 보편성을 얻었던 것이다.
이 변형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교사들의 묘사이다. <목소리>에 나오는 교사들은 대부분 무개성적이고 하찮고 생기 없고 무력한 카드 보드 인형들이고 영화는 종종 이들의 존재 없음을 대놓고 놀려댄다. 1편에서는 영화 전체를 투자해 파괴해야 했던 증오의 대상이 그냥 몇 초 비웃는 대상으로 추락한 것이다. 주인공들과 얽히는 유일한 교사인 ‘음악’ 희연 만이 여기서 예외인데, 이 사람은 <제복의 처녀 Madchen in Uniform>(1931)나 <올리비아 Olivia>(1951) 같은 유럽 기숙 학교물에 나오는 로맨틱한 레즈비언 교사 같으며 한국인처럼 행동할 의무 따위는 느끼지도 않는다.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부패한 선생들이 떠난 이 빈자리에 들어온 것은 기억의 불안정함, 사랑의 유한성, 죽음처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망각과 그에 대한 공포이다. 시리즈 사상 가장 철학적이고 묵직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인 것이다. 종종 그 때문에 이야기를 멈추고 설명을 하느라 속도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심지어 이들 주제와 소재는 그렇게 여성적이지도 않다. 영언, 선민, 중간에 선민과 어울리게 되는 귀신 보는 소녀 초아, 희연은 여성이고 여성적인 인물이지만, 여성이기 전에 이런 추상적 주제를 풀어가는 디폴트 성의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목소리>는 가장 멀리 간 ‘여고괴담’ 영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여고괴담> 속편들이 그렇듯, <목소리>도 ‘무섭지 않은 호러영화’라는 욕을 먹었다. 어차피 <여고괴담> 시리즈는 호러보다는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 쪽에 가까우므로 이 반응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무섭지 않은 영화인가?’란 질문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냉담하게 그리는 순수한 악의 묘사와 권선징악의 파괴가 과연 섬뜩하지 않은가? 꼭 영화의 공포가 피상적인 충격 효과를 통해서만 전달되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