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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의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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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했어.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물러난 후 누군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말에 내가 답하는 말이다. 그렇다. 너무 오래 했다. 오래 하고 있다는 생각도 오래전부터 했었다. 한 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을 15년이나 했다. 외국의 어느 영화제를 보면 누군가 프로그래머를 15년 넘게 하고 있다거나 20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존경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에서 선배들이 자의가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의 부당한 압력이나 애매모호한 이유로 타의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볼 때 나는 꼭 스스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스스로 물러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개인적인 영광일 뿐이다. 서울독립영화제가 나름 내실을 기하면서 안정적으로 열릴 수 있게 기여했고, 독립영화의 위치를 어느 정도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지만, 오랜 기간을 있으면서 독립영화의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새로운 창작자들의 작품과 그들의 목소리에 얼마만큼 귀 기울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영화제를 새롭게 꾸려갈 다음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했고, 변화와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창작자와 관객의 매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활력과 자극을 불어넣는 영화제의 순기능을 잘했는지도 스스로 평가하기 어렵다. 또한 공적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태생적인 구조 속에서 스텝들의 안정적인 고용상태와 적절한 활동비를 확보하는데도 큰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중간에 독립영화의 위기가 없었다면 내가 그만둘 수 있는 시기는 더 빨랐을 것이고, 서울독립영화제와 독립영화는 물론 나 역시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MB정부 들어서면서 혹독한 감사를 받고 영화제를 비롯한 많은 지원들이 부당하게 중단되고, 노골적인 탄압이 공공연해지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지금 이것만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독립영화가 정권 수뇌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존재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지만, 그 이유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탄압의 대상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상황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무력감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그저 버티기만 했던 부끄러운 시기. 그런 시기는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쁘고 환호할 일도 많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있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을 했지만, 더 많은 할 일을 두고 나온 느낌이다. 그렇기에 그닥 즐겁지도 않고 홀가분하지도 않고 무언가 어정쩡한 상황에서 2017년을 보내고 있다. 

돌아보면 독립영화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목표로 했던 것으로 하나하나 이뤄가는 재미와 성취감이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 수많은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고, 독립영화전용관이 만들어지는 것도 보았고, 독립영화들이 힘겹지만 기쁘게 수많은 관객들과 조우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삶과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지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그것을 접하고 분노하며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함께 했던 나를 포함한 동료들이 지금 행복한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동료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훔치기만 했던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삶과 투쟁의 현장을 지키면서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나는 자리에만 죽치고 앉아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많은 것을 이루고 지켜봐 왔다고 생각한 내가 해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영화와 관련된 영화제들, 사랑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초라하고 이게 다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누구 말대로 나는 그것을 진정으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좋아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니었는지. 슬픔과 우울함, 반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반성으로 그쳐서도 안 될 테고, 무기력과 우울에서는 빠르게 벗어서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이미 준비된 집행위원장과 스태프들이 있으니 똥차도 없어진 마당에 훨훨 잘될 것이라 믿는다. 독립영화 역시 쌓여왔던 적폐를 걷어내고 이전 정부 이전에 행해졌던 정책들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면서 창작자들의 창작권 보호와 독과점 문제 해결, 독립영화의 배급 유통 환경을 개선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울독립영화제는 내게 활동의 무대였고 활력소 자체였지만,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립영화가 창궐하는 시대에 큰 역할을 부여받고, 젊음의 패기만을 안은 채 기대와 주목을 받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그때의 시기가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많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과거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후배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독립영화 창작의 무대에서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서 여러 정책이 생산되고 실행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인의 정체성과 명예를 가지고 활동할 것으로 스스로 다짐해본다. 

끝으로 차마 SNS에서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 박종필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기를.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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