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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잊혔던 목소리의 귀환 : <파랑새><수리세> 디지털 리마스터링 노트

[칼럼]잊혔던 목소리의 귀환 : <파랑새><수리세> 디지털 리마스터링 노트 대표 이미지

지난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제가 기획 중인 홍기선 감독 특별전과 관련하여 우리 원이 소장하고 있는 <파랑새> <수리세>의 8mm 필름 유일본을 디지털 리마스터링하여 공개하기로 협의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원은 100년에 가까운 기간에 제작된 한국영화 자료를 모두 관리하는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작품 취향에 따라 단시간에 디지털 상영 본으로 보고 싶어 하는 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로감의 상당 부분은, 최대 다수가 만족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을 고심하여 그해의 디지털화 대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들, 이를테면 독립영화 같은 유형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금년에는 <파업전야>를 비롯한 독립영화의 디지털화 작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으니, 이런 시점에 영화제와의 공동 추진 결정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국내에는 8mm 필름을 스캔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적절한 해외 작업처를 찾는 일이 골칫거리였는데, 8mm 필름은 프로페셔널 규격이 아니고 수요가 많지 않다 보니 신뢰할 만한 품질로 작업하는 곳을 찾기가 곤란했다. 더욱이 필름의 사운드트랙 규격이 마그네틱이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곳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마침 우리 원에 기술교류 차 내방한 이마지카 웨스트(IMAGICA WEST)사 관계자와 빠른 협의가 돼서 스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마지카 웨스트는 오사카에 있는 전통의 현상소답게 8mm 스캔용으로 기존의 광학 인화기를 개조한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있었으니 변경된 일본의 통관 규정상 필름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뿔싸. 그러나 운송업체를 통해 수차례 확인한 결과 8mm 필름에 한하여 반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아마도 16mm, 35mm 필름에 대해서만 제한 규정이 명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 예외 사항으로 적용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지만 이제 필름의 시대가 정말 끝났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수주 후, 우리는 일본에서 2K 화질로 스캔 된 화면과 음향 데이터를 받게 되었다. 이제부턴 우리 차례였다. 

첫 관문은 최초 촬영속도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파랑새>와 <수리세>는 슈퍼 8mm 규격의 필름으로서 초당 18프레임 속도로 촬영되었다. 이를 오늘날의 아카데미 규격인 초당 24프레임 속도로 영사하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빨라지고 음향도 피치가 올라가는 동시에 음색이 변한다. 현 24프레임 영사 시스템에서 18프레임 속도를 구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는 속도 간의 비율(24/18=1.3333...)만큼 프레임을 복사, 생성하는 방법을 적용했고 이 작품의 경우 자연스럽게 변환되는 것을 확인했다. 
 

<파랑새> 캡쳐 화면들


<수리세> 캡쳐 화면들

8mm 필름을 2K 디지털 화질로 리마스터링한 것은 아마도 국내 최초일 것으로 생각된다. 일각에서는 낡고 훼손된 소규격의 필름을 굳이 2K 화질로 디지털화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타성에 젖어 낭비적인 결정을 내렸거나 전시성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필름을 무시하는 소리다. 비록 35mm 필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빛과 반응성 입자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질감, 필름 특유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계조 표현력은 8mm에서도 제한적인 수준으로 나타난다. 이 ‘제한적’인 8mm 필름만의 회화적 룩이 주는 감성적인 무언가가 누군가에겐 흐릿한 구시대의 감각으로 다가올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를 최소의 손실로 디지털 영역에 온전히 옮겨 담자면 2K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까다롭고 힘든 공정은 예상했던 대로 음향 작업이었다. 우선 화면과 음향의 싱크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혹시 제작과정에서 어떤 사정이 생겨서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믹싱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화면상의 입 모양과 대사 내용이 전혀 다르거나, 아예 없거나, 길이가 다르거나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경우 대사 단위, 심한 경우 단어 단위까지 세부 편집 작업을 통해 맞추는 것이 복원 윤리상 맞는가의 쟁점이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의 내용 전달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보고 최대한 수정하였다. 

반면 음향을 복원할 때는 이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예컨대 제작상의 오류가 있어도 이를 보존할 대상으로 보고 굳이 제거하지 않았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었다. 이를테면 ‘드르르르~’ 하는 영사기로 추정되는 기계의 작동 소음이라든지, 내레이션 배경음악이 시작될 때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재생 버튼을 누르는 ‘찰칵’하는 소리가 들어가 있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외의 환경음은 거의 소거되어 있고, 출연 배우와 성우가 다른 사람인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서 언급한 소음들은 촬영 시에 동시녹음 과정에서 발생했다기보다는 편집이 완료된 필름을 영사하면서 화면을 보고 후시 더빙하는 과정에서 삽입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제작 오류로 보기보다는 간직해야 할 제작 과정의 일부로 보았다. 이 소음들은 열악한 여건에 굴하지 않고 메시지 전달에 집중했던 초기 독립영화인의 자취이기도 하고, 당시 아마추어 규격인 8mm 제작시스템을 선택했던 현실적 상황과 철학적 동기를 연구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음을 제거하기보다는 대사 전달에 무리가 없도록 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사한 예로는 <파랑새>의 몇 장면에서 나오는 발걸음 소리의 처리 문제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액션 영화에서 타격음으로 쓰이는 ‘퍽’하는 음과 흡사한 효과음이 믹싱되어 있었다. 농부가 마당을 걷는데 ‘퍽! 퍽! 퍽!’하고 소리가 나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효과음으로 대체하지 않고 강한 음색만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 오히려 복원작업은 마그네틱 사운드트랙 전체에 걸쳐 담겨 있던 강한 광대역 험(hum) 노이즈와 강한 파열음을 제거하고, 중간중간 수시로 끊기는 짧은 묵음 부분을 복구하여 관람자의 피로를 줄이는 방향에 집중했다. 

결론적으로, 16mm, 35mm 극영화 작품, 즉 한때 상업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상품’이었던 필름의 작업에만 집중해 왔던 우리에게 독립영화, 그것도 8mm 필름을 작업한 것은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전설의 80년대 독립영화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메시지와 에너지 앞에서 우리는 지금껏 알고 있던 복원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면 외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반인으로부터 거의 잊혔던 <파랑새>와 <수리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다. 공권력에 의해 외침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후 거의 30여 년 만의 귀환인 셈이다. 너무 늦었지만 작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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