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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②안녕, 내일 또 만나

내 마음대로 각색해보는 영미문학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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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십몇 년 전의 일이다. 싸이월드 방명록에 내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한 줄 글이 올라온다. 그 누군가는 십 대 초중반 시절의 내 정신을 지배했던 이웃집 형이다. 고3 수험생이 되어 그만둘 때까지 한때 나의 수학 과외 선생이었던 그는, 매년 새로 배정되는 우리 반 담임에 관해 꼭 필요한 논평을 해주던 졸업생 선배였고, 일요일 새벽이면 오락실 셔터문을 두드려 가장 먼저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기 앞에 나란히 앉던 친구이기도 했다. 한 살 차이도 괜히 주눅 들곤 하는 어린 시절에 한 번도 같은 건물로 등하교해본 적 없는 세 살 터울의 사이였지만, 우리는 5층짜리 아담한 아파트의 아랫집 윗집에 사는 이웃이었고, 엄마들끼리도 친했으므로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형이 없었고 그가 외동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형제처럼 지냈다. 

형은 야구를 좋아해서 집에 야구장비가 많았다. 그와 취미를 공유하는데 내 운동신경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그다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형은 인내심이 많았고 나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말해,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 단순히 공을 주고받는 행위에 어떤 우주적 의미나 숨은 재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현재,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형과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 시간에 내가 단순히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만 쓴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캐치볼이 건전한 취미라고 한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그 형의 위험한 습관이었다. 높고 폭이 좁은 담장이나 담벼락, 펜스나 철봉을 발견하면 굳이 그 위를 억지로 기어올라 아슬아슬 걸어보곤 했다.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아이인 나는 그를 따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생각은 1도 없었지만, 위험천만하게 땅으로 착지하며 별일 아닌 척하던 형은 내게 절대로 자기를 따라 하지 마라고만 했다. 그것만 제외하면, 형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운동도 다 잘하고, (일부러 져주지 않으면) 스트리트 파이터에 관한 한, 동네 레전드급이었기 때문에 십 대 초중반의 내 정신을 지배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였다.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당시 내가 되고 싶어 하던 유의 아이였고, 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닮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는 얘기다. 

“너 칼라 보노프 알아?” 어느 날 저녁, 과외 수업 도중에 형이 묻는다. 나는 그게 뭐냐고 질문으로 대답하고, 그는 가방에서 AIWA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며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칼라 보노프는 사람이고, 가수야.” 곧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우리는 잔잔한 기타 반주와 함께, 영롱한 목소리의 여자가 나지막이 부르기 시작하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다. 마치 영어 듣기 평가할 때처럼의 집중력이라, “배 먹어라” 하면서 들어온 엄마가 책상 위에 배 두 쪽을 깎아놓은 접시를 놓고 가도 우리는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당시의 내 귀엔,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를 붙여놓은 것처럼 들리는 그 곡은 ‘The Water is Wide’라는 제목의 노래다. 

지금부터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 So Long, See You Tomorrow」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윌리엄 맥스웰

윌리엄 맥스웰은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약 40년간 「뉴요커」 매거진의 편집장이었고,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그가 일흔두 살이 되던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 함께 논 적이 있던 친구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비극을 대체로 담담하고 아주 사려 깊게 전달하는 이야기지만, 그 아래로 짙게 드리워진 노작가의 회한 섞인 어조는 이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메타픽션’이라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더 구슬프게 들린다. 

맥스웰 본인인 내레이터 ‘나’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예민한 소년이다. 그러던 중에 잠시 평범한 며칠 동안을 함께 놀았던 친구 ‘클레터스’는 ‘나’가 겪은 것과는 다른 이유로, 그 또한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건을 겪게 된다. 여기서 두 아이가 겪은 일에 (독자들이 꼭 기억할 만한)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어느 겨울 새벽, 조용한 마을 농장을 울리는 한 발의 총소리로 시작한다. 죽은 사람은 ‘로이드 윌슨’이라는 삼십 대 남자, 총을 쏜 사람은 친구였던 ‘클레런스 스미스’라는 사십 대 남자였는데, 이들은 서로 이웃에 살던 가난한 소작농들이었다. 깊은 우애와 끝없는 권태를 함께 나누던 이들 가족 사이에 언제부턴가 비밀스러운 불륜이 있었고, 우애와 권태는 폭력과 살인으로 변질되어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린 것이다. 여기서 내레이터인 ‘나’와 함께 놀던 친구 ‘클레터스’는 살인자 클레런스 스미스의 아들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파토 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두 소년도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시카고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두 소년은 복도를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다. 하지만 ‘나’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그를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고, 그 후 평생 자신의 그런 행동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에 대한 윌리엄 맥스웰의 고백이 담긴, 책의 두 번째 챕터 첫 문단을 옮겨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작농의 피살 사건을 50년도 넘게 기억하는 건 첫째, 살인자가 내가 아는 이의 아버지였고, 둘째,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는 나중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사건을 아마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상록이란 이름을 이 글에 붙여도 된다면) 이 회상록은 그때 내 잘못을 우회적으로 사과하려는 헛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바로, 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 적어 그의 ‘헛된 시도’가 어떤 질문과 대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윌리엄 맥스웰이 이 오랜 이야기의 육중한 문을 어떻게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닫고 있는지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구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읽은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은, 윌리엄 맥스웰이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를 읽고 편집하고 만들어 오면서 해온, 자신의 작가적 고민을, 오래전 고등학교 복도에서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렸던 그 친구에게 보내는 회한 어린 사과문의 형태로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앨리스 먼로’ 같은 대작가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기가 썼던 모든 글들을 윌리엄 맥스웰이 해냈던 방식대로 완성하겠다는 말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이쯤에서,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았던 ‘The Water is Wide’를 한 번 더 리플레이 시켜놓고 이웃집 그 형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 일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그 형은 재수생이던 어느 가을날 밤에 일어난다. 몇 달 전 같은 아파트의 윗집 아랫집에 살던 지난 5년을 끝으로, 우리 가족은 버스로 2코스가량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천천히 걸어가도 이십 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곳인 데다 그 전에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수와 구조의 아파트인데, 왜 굳이 이사까지 간 건지 지금도 난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와서 “엄마, 라면!”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온 집안을 벨 소리로 흔들어대는 전화를 신속하게 받아낸 엄마는 잠시 뒤, 내 방문을 벌컥 열어 라면은 네가 끓여 먹으라며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이 밤에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다.

“502호 아줌마 죽었단다.”

502호 아줌마라면... 그 형의 엄만데. 

막 벗었던 교복 바지를 다시 추켜올린 나는, 라면은 됐고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어딜 따라 오냐고 막 소리치는 엄마를 기필코 따라나선 나는 그 어둑한 밤길을 미친 듯이 함께 달린다. 엄마의 입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리고 나서부터는 심장이 쿵쾅거려 뛰는 게 겁이 나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 세게 꽉 잡으면서 저 멀리, 텔레비전 뉴스에서 많이 본 것 같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자동차 불빛들을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잘 들리게 되는 누군가의 괴성 소리, 그것은... 형의 목소리다. 

아파트 주차장을 둘러싼 구경꾼들과 각층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수십 명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것은, 그 형이 누군가의 차 위에 올라가서 괴성을 지르며 야구 배트로 차를 내려치고 있는 장면이다. 창문이 박살 나고 지붕이 내려앉던 그 커다랗고 까맣고 비싸 보이는 차의 소유주는 502호 아저씨, 그러니까 그 형의 아버지다. 

지금 형은 타오르고 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다. 놀란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들에게 달려가 숨어버리지만 나는 구경꾼들 사이에 꼼짝 못 하고 서 있기만 한다. 미리 도착해 있는 경찰들도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형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보고만 있다. 그러다 곧 형이 미끌, 한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소리가 터진다. 바닥으로 쿵, 떨어진 형이 이내 구겨진 자세가 되자 순식간에 달려간 경찰들이 그를 제압한다. 그것도 내가 처음 본 모습이다. 높은 곳에서 형이 떨어진 것 말이다. 형은 이내 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로 울부짖으며 연신 쌍욕을 내뱉는다.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말이 내 귀에 꽂힌다. 형이 경찰들에 끌려가며 차에 태워지는 모습을 나는 점점 뒤로 물러가면서 끝까지 쳐다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나는 이제 뒤 돌아 걸어간다. 무섭고 타오르는 것은 절대로 못 본 사람처럼 조용히 걸어서, 집으로. 가로등 불빛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어두운 갓길로만 걸어서, 형을 태운 경찰차가 지나가더라도 어둠 속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갓길로만 걸어서 집으로 간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남편의 오랜 불륜 사실을 알고 난 502호 아줌마가 그날 저녁에 화장실에서 목을 맸으며, 그 모습을 학원에서 돌아온 형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네가 뭘 어떻게 하긴 하냐는 듯 의뭉스런 얼굴이 되었다. 502호 아저씨에 대한 내 기억은 마주칠 때마다 내게 용돈 하라고 만 원씩이나 주는 고마운 분이었는데 이제 고마움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바뀌었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곧 트라우마로 바뀔 참이었다. 

그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성적에 만족하지 못했던 형은 재수생의 길을 선택해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이 왜 걸어서 이십 분 거리의 똑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사를 가게 되면서 형과 내가 드물게 마주치는 일은 더 드물어 졌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초, 중학교와는 달리, 형이 다니지 않았던 학교여서 담임선생에 대해 형이 내게 해줄 논평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씩 별말 없이 멀어지고 있었고, 엄마는 사람 사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한 번씩 들리는 얘기로 형은 그해에 대학에 가지 않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나도 몇 년 뒤에 대학에 가고 얼마 뒤에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형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내 싸이월드 방명록에 그 형의 이름이 한 줄 글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 며칠 동안이나 답글을 달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형의 이름을 본 순간, 언젠가 불길에 활활 타오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던 내 몸짓이 생각났다.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형은 ‘내가 아는 백승빈?’ 이라고만 물었지만, 사실은 그 뒤에 ‘경찰차 안에서 이름을 몇 번이나 외쳤는데, 갓길에서 모른 척 고개 숙이고 걷던 그 백승빈 맞아?’ 를 생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걸 두고 죄책감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내가 그때 형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경찰차 앞을 가로막고 창문을 두드리며 형을 울부짖었어야 했나? 그러다 다치니까 차 지붕에서 그만 내려오라는 얘기 정도나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갓길의 어둠 속에 숨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에 확인해본 방명록엔 형의 글이 삭제되어 있었고, 나는 그가 며칠 전 글을 남겼을 때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혹시 내가 아는 백승빈?’ 뒤에 생략되었던 말은 (‘너 칼라 보노프 기억하냐?’) 정도였을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참 얄궂기도 하지. 그래서 그날 나는 아마 울었던 것 같다.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곡이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만 대충 붙인 것만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내게 이 노래는 분노와 포효, 비탄과 오열을 예쁘게 숨기는 듯한 가사와 담담한 척하는 목소리에 꾹꾹 눌러 담아낸 아픈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듣지는 않는다. 그 형도 생각나고, 이젠 세상에 없는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달려갔던 그 밤길도 생각나고, 뭐... 그렇다.

윌리엄 맥스웰은 나이 든 노인이 되어 오래 전 자신이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친구에게 소설의 형태로 아름다운 사과문을 남겼다. 죽기 전까지 수십 년 간, 나보코프, 업다이크, 샐린저, 치버, 오코너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읽고 쓰고 만들게 했던 그의 작가적 고민이 고스란히 마지막 장편소설 「안녕, 내일 또 만나」에 들어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 우리는 삶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는 것일 터이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Too many conflicting emotional interests are involved for life ever to be wholly acceptable, and possibly it is the work of the storyteller to rearrange things so that they conform to this end. In any case, in talking about the past we lie with every breath we draw.’ 


이 책을 내 마음대로 각색해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의 주인공은 그 형이었다. 지난 시절에 관한 내 기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재배치한 것도 있고, 상상에 가까운 짐작도 있다. 하지만, 형의 AIWA 워크맨을 통해 ‘칼라 보노프’를 같이 듣던 장면은 가짜일 수 없고, 차 지붕 위에서 활활 타오르다 떨어져 땅바닥에 구겨진 채 울부짖던 그의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내 기억 속의 화신으로 남을 것이다. 

형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그와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이 글 도입부의 내 마음을 형이 짐작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윌리엄 맥스웰의 방식을 감히 한 번 흉내 내며 이런 글을 써보았다. 내가 각색한 이 영화 안에서 형은, 언젠가 높은 곳에서 쿵, 하고 한 번 떨어졌지만 어떻게 해서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지금처럼 잘살게 되었는지를 기필코 보여주는, 당차고 아름다운 주인공일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라면 분명히 내게 다시 연락할 것이다. 그래서 별 말 없이 캐치볼을 하게 되는 거지. 그때 깔리는 사운드트랙이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라면 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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