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군번없는 용사
이만희, 1966
“나의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고 나의 사명은 인류의 희망입니다. 부디 전해주시오. 인류의 희망은 자유라고!” - 송영호의 대사
광고 카피로도 쓰인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때는 전선(戰線)이 고착된 채 전쟁은 계속되던, 그리하여 후방에서의 게릴라전(戰)으로 혈육 간에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극이 되풀이되던 1951년 겨울 즈음, 장소는 북한이 점령하고 있는 마식령산맥 인근의 어느 마을이다.
<군번 없는 용사>는 인민군 장교 아우 송영훈(신성일)과 인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유격대 대장 형 송영호(신영균), 최고인민위원회의 대의원이지만 은밀히 형의 유격대를 지원하는 아버지(최남현) 사이의 비극을 다룬다. 아우에 의해 처형당한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한 형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사명’을 지속할 것을 대원들 앞에서 천명한다. 여기서 형의 사명이란 아우를 죽이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반동’ 아버지를 처형해야 했던 동생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형제는 이념의 반대편에서 서로를 적으로 삼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인류’를 위한 사명이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 그러나 같은 운명을 감당하는 형제에 대한 관객의 공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그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2시간의 러닝 타임을 끌고 가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와 같은 균형으로부터 나온다.
한국영화의 재현관습과 검열제도 아래서 이러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인민군이 혈육을 살해하는 것은 대개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비인간성을 표상하는, 관습적인 서사의 장치로 사용되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친살해에 대한 인민군 장교의 인간적 번민이 극을 끌어가는 한 축으로서 위상을 부여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이만희 감독은 불과 2년 전에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작품(<7인의 여포로>)이 난도질당하고 그 자신은 인신구속이 되는 수난까지 겪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유격대에 남몰래 협조하는 것으로 속죄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처벌받는 등 ‘반공’영화로서 받아들여질 만한 요소를 충분히 배치해두기는 했지만, 공감을 넘어서 매혹까지 느끼게 하는 인민군 소좌 송영훈의 캐릭터는 당시 한국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재현의 임계점에 육박한다. 이만희 감독 특유의 빼어난 미장센, 그리고 격정적이되 핵심을 찌르는 대사들과 정교하게 짜인 동선이 인물의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 송영훈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도 평균 이상이지만, 보위부 본부와 감옥, 그리고 보위부 부장(허장강)의 집안을 담은 실내 장면들은 특히 탁월하다. 예컨대, 영훈이 형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아버지를 취조하는 고문실과 바로 옆의 감방에 갇힌 채 소리로만 상황을 짐작하는 어머니(황정순)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교차편집을 통해 축적되어온 긴장감은 영훈이 아버지 대신 자신의 팔에 인두를 갖다 대는 순간에 폭발한다. 경악하는 어머니 얼굴의 미디엄 쇼트로 마감되는 이 장면은 히치콕의 심리적 스릴러를 연상시킬 만큼의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이것은 영훈의 내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장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들 가족의(더 나아가 민족의) 비극적 역사가 집약되어 표현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큰아들과 작은아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작은아들은 형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아버지를 죽음으로써 겁박해야 하며,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이 극단적 상황은 결국, 목격자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 홀로 살아남은 인간, 또는 적의 총탄에 동지를 모두 잃고 그 스스로도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에서부터 <군번 없는 용사>, 그리고 <1950 04시>(1972)에 이르기까지 이만희 감독의 전쟁영화를 번번이 마무리하는 이미지였다. 그와 같은 이미지는 역사로부터 출발했으되 종국에는 역사마저 초월해버리는 인간의 실존적 순간을 그려내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도리와 ‘인류’의 사명을 양립할 수 없게 만들었던 냉전 시대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인가? 감독 이만희를 때로는 검열의 피해자로, 또 때로는 국책영화의 감독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의 전쟁영화들을 관통하는, 그와 같은 모호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이 모호함이야말로 냉전의 최전선 한국에서 허용될 수 있었던 재현의 최대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