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2025년 5월의 어느 하루
2025년 5월 19일, 아침에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종로에 간다. 예술영화 제작지원 심사 면접이 있다. 오늘 면접을 잘 치러야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다. 종로 3가에 내려 아담한 건물로 들어선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다. ‘한국독립-예술영화진흥위원회’. 8년 전인 2017년에 ‘영화와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이 개정되면서 새롭게 신설된 영화 기구다.
기존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독립-예술영화 진흥 사업이 통합되어 있었지만, 8년 전부터 따로 분리되었다. 영진위가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면, ‘한국독립-예술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발전기금의 문화적 공공성을 보다 긴밀하게 집행하는 기구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며 영진위가 독립-예술영화를 검열하고 축소 재편해왔던 10여 년의 폐허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원적 수립.
이 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전국의 독립예술영화관이 3배 이상 더 확장되었다. 제작지원의 반경도 더 넓어졌고, 배급 여건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독립영화제들의 단체 지원 사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진흥기구의 성공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벤치마킹되고 있을 정도다.
사실상 면접 심사위원들의 면면만 봐도 이 진흥기구의 신실성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계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영화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응모한 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한다. CG가 많이 가미된 SF 판타지 영화다. 한국의 예술영화도 이 장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땀나도록 피력했고, 심사위원들은 여러 요건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렇게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 곧이어 나는 종로에 있는 ‘독립영화관 X’를 방문한다. 작년에 제작한 내 영화의 배급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서다. 3개관으로 운영되는 이 독립영화관은 개봉과 각종의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서울에 독립영화관은 단 한 곳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에 다섯 개의 독립영화관, 전국에 걸쳐 30여 개의 독립-예술영화전문 상영극장이 포진해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영비법이 개정되면서 특정 상업영화가 독점하던 멀티플렉스 환경이 개선되었다. 상영의 1/5이 독립예술영화로 보장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장편영화의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 시장은 고작 1%밖에 되지 않았던 과거의 적폐가 타개된 것이다. 영비법 개정과 독립예술영화관 확충을 통해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들은 최소한 20%의 시장을 확보하게 됐다. 손바닥만 한 어망에 갇힌 채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바둥거리던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이제서야 어망을 벗어나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일 오후 영화 배급 일정을 상의한 뒤, 나는 곧바로 노동부에 간다. 이번에 찍은 영화의 크레디트와 ‘예술노동자 기본 소득’ 신청 서류를 접수해야 한다. 자신이 참여했던 영화의 크레디트와 간단한 자격 요건만 접수하면 6개월 동안의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예술노동자 기본 소득’ 제도가 3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감독뿐 아니라 해당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해당된다. 이 제도 덕에 그동안 퇴적층처럼 항상 월세와 생활고에 짓눌려 있던 내 가난한 삶은, 그나마 간신히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다. 쫓겨나듯이 생활고 때문에 꿈을 버려야 했던 다른 독립예술영화인들도 마찬가지다. 시혜와 온정이 아니라, 문화노동자들의 노동 가치와 그 공공성을 인증받아 뿌듯한 나날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부지런히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후 나는 집에 들어와 간단히 밥을 해 먹고 영화를 보러 인근 극장에 간다.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공공극장’이다. 고전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극장. 2017년부터 ‘문화 재생 도시’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는데, 문화 소외층을 위해 공공극장들이 서울에만 해도 30여개로 확장되었다. 낮에는 전시 및 공연이 이루어지고, 저녁부턴 고전영화들이 무료로 상영된다. 도시 전역에 미니 영상자료원, 미니 시네마테크가 밤마다 펼쳐져 시민들이 문화적 자산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 공공극장에서 오늘 상영되는 영화는 니콜라스 레이의 <쟈니 기타>다. 어제는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수도 없이 본 영화들이지만, 50년대의 총천연색 컬러영화를 동네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른하고 충만하다. 오늘 극장은 나이 자신 어르신들부터 재잘거리는 10대 후반 관객들까지 북적인다.
2025년 5월 19일 늦은 밤, <쟈니 기타>를 보고 페기 리의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극장을 나서면서 문뜩 2017년의 풍경이 떠올랐다. 만일 그때 이런 변화들이 시도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아직도 영화를 하고 있었을까? 한국에 독립-예술영화의 자리는 남아 있었을까? 또 시민들은 이렇게 다양한 영화적 궤적들을 향유할 수 있었을까? 그때, 독과점 영화 기업들과 영화계 보수 인사들, 보수층 반발에 직면해 모든 변화의 시도들이 좌초되었다면 2025년의 오늘은 과연 존재할까? 새삼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영비법에 가해진 몇 문장의 변화, 문화체육관광부의 간결한 의지가 나비효과처럼 만들어낸 오늘의 일상은 그저 소중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쓴 이 글이 SF라고 우기겠지만, 동네북처럼 정권 바뀔 때마다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해진 2017년의 한국 독립예술영화 처지가 훨씬 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나는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니라, 현실을 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