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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시집가는 날

이병일,1956

[한국영화걸작선]시집가는 날 대표 이미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계몽주의 시대의 풍자 코미디다. 코미디인데, 보는 내내 약간 긴장을 느끼는 것은 당대 귀족의 권위를 대단히 같잖게 보고 있어서다. 곧 지배층이 여기선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인 커플(피가로와 수잔나)과 주인 커플(백작과 백작 부인)의 역할의 역전에서 빚어지는 소동이 이 코미디의 백미다. 주인은 소인배 같고, 하인이 관용을 베풀어서다. 그런 소동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가 바로 ‘변복(變服)’이다. 백작은 부인이 하녀 수잔나의 옷을 입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걸다, 상대가 아내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용서를 빈다. <피가로의 결혼>이 은근히 ‘위험한’ 것은 용서를 비는 장면을 객석에서 보면, 화려한 의상의 귀족 남자가 수수한 복장의 하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서다. 귀족은 무릎을 꿇고, 하녀, 곧 시민은 관용을 베푸는 이 장면에서 프랑스혁명의 전조를 읽기도 한다(슬라보예 지젝, 믈라덴 돌라르 지음,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의 주요한 모티브도 변복이다. 졸부로 보이는 맹 진사(김승호)는 김 판서 댁의 아들 미언(최현)과 혼사를 성사시켜 결혼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소문에 그 아들은 ‘절름발이’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사회적 신분이 필요하지만, 장애인에게 딸 갑분(김유희)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맹 진사는 딸 대신 딸의 몸종인 입분(조미령)을 딸처럼 꾸며 결혼식장에 내세운다. 입분은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명령대로 갑분처럼 변복하여 신랑 앞에 선다. 그런데 장애인인 줄 알았던 신랑은 훤칠한 청년이고, 멋진 옷을 입은 입분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부로 비치는 것이다. 맹 진사와 딸은 자신들의 경솔함을 뉘우치지만, 이미 신랑은 입분의 비밀까지 모두 이해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뒤다. 신랑은 ‘참된 마음’을 가진 신부를 원했고, 그래서 일부러 나쁜 소문을 냈는데, 마침내 천생배필을 찾았다며 입분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피가로의 결혼>과 <시집가는 날> 두 작품 모두 사회적 제도와 통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피가로의 결혼>은 신분제도라는 것 자체를 무시하며, <시집가는 날>은 부(富)와 관용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분과 부를 표시하는 것은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복장인데, 따라서 누구나 다른 복장을 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뭇 공격적인 풍자를 담고 있다. 그만큼 물려받은 신분인 귀족, 인품이 따르지 못한 부자는 인정할 수 없으며, 금방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는 서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백작은 그들이 입은 옷에 따라 부인을 하녀로 하녀를 부인으로 오인한다. <시집가는 날>에서 하녀 입분은 주인의 딸 갑분의 옷을 입었는데, 여성스럽고 조심스런 태도를 가진 입분은 누가 봐도 더 품위 있어 보인다(전통적인 미모를 가진 조미령의 스타성이 한몫했을 테다). 백작부인과 하녀, 갑분과 입분은 항상 대체 가능한데,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는 냉소인 것이다. 

 <시집가는 날>이 발표될 때는 한국영화가 비로소 전화(戰火)의 상처에서 벗어날 때다. 영화사가 이영일에 따르면 해방과 전쟁의 질곡을 넘어 한국영화가 중흥의 발판을 마련할 때다(「한국영화전사」). 아마 당대의 경제적 변화에 올라탄 졸부도 많았을 것 같다. <시집가는 날>은 사회적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는 당시의 신흥계급에 대한 통렬한 냉소를 시대극의 형식을 빌려 그리고 있다(영화의 배경은 졸부들이 족보를 사던 구한말이다). 맹 진사는 며칠 머물기를 원하는 어느 선비의 부탁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구두쇠로 표현돼 있다. 자기 이익에만 눈이 먼 부자인 맹 진사, 사람에 대한 이해는 하녀보다 훨씬 얕은 주인집 딸, 이들처럼 사회적 역할을 외면하는 기득권층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뜻일 테다. 

 <시집가는 날>이 유난히 강조하는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옛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빼어난 동양화 같은 마을 풍경은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향수(과거) 또는 염원(미래)으로 보인다(촬영감독은 임병호). 과거의 상징은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양반인 판서 아들 미언, 그리고 미래의 상징은 맑은 마음을 가진 하녀 입분으로 표현돼 있다. 인정의 대상에서 현재의 기득권자인 맹 진사댁 사람들은 배제돼 있는 데서도 <시집가는 날>의 세태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런 냉소는 지금도 대단한 효력을 가질 것 같다.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의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가 강조돼 있어서다. 아마 이런 반제도적인 풍자가 <시집가는 날>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주목하게 하는 이유일 테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애인에 대한 이 영화의 성찰 없는 태도다. 보기에 따라서는 잔인할 정도인데, 사실 우리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공격성을 갖고 있었다. 과거를 읽는 하나의 중요한 테마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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