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개그맨
이명세,1988
압델라티프 케치체가 감독을 맡았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는 두 명의 레즈비언이 주인공이다. 한 명은 유명한 여배우 레아 세이두가 또 한 명은 무명의 여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연기했다. 2013년 그해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화는 황금종려상도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영화적 성과와 무관하게 단 하나에 시종일관 매혹되어 있었다. 아델의 입이었다. 아델의 저 육감적인 입이 무언가를 먹거나 상대방 파트너의 어딘가를 애무할 때가 그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다.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나의 감상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감독은 오디션을 위해 만났던 아델이 레몬 타르트를 씹는 모습을 보고, 즉 그 입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아델의 그 입뿐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개그맨>은 한국영화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다. 이 영화는 이명세의 연출 입문작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외양을 지닌 나이트클럽 삼류 개그맨 이종세(안성기)가 허름한 이발소의 무식하지만 착한 뚱보 문도석(배창호)과 야심에 가득 찬 미인 오선영(황신혜)과 함께 무장 강도짓을 하다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이종세가 이발소 의자에 앉아 꾸는 한낱 백일몽으로 밝혀진다. <개그맨>은 발상의 참신함과 인물들의 독창성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의 출현이라 인정받았고 지금도 그 빛은 바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그맨>의 이 정통적인 혹은 통사적인 평가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개그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면모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배우로서의 배창호와 그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유달리 빛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기 중에서도 특별한 연기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우물거리는 입으로 먹어대는 그 연기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이발사 문도석은 이종세의 꿈에서 함께 강도짓을 해나간다. 그는 그게 배우의 길이라고 착각한다. 당시 가장 뜨거운 인기 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연기력은 함께 등장한 전문 배우들 안성기나 황신혜를 압도하고 있다. 문도석을 연기하는 배창호는 그가 등장하는 거의 매 장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행위는 무언가 먹는 것에 대해 거론하거나, 먹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 영화배우 지망생으로서 영화도 꽤나 많이 보아 왔다고 자부하는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영화를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문도석이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는 것은 리차드 플레이셔의 영화 <바이킹>(1958)에서 커크 더글라스가 잔치를 벌이며 통닭을 씹어 먹는 장면이다. 이내 문도석은 말한다. 역시 보신탕은 똥개가 최고라고. 이건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문도석의 거의 모든 연기는 먹는 것으로 통하고 이 영화의 정점도 먹는 것으로 통한다.
예컨대 문도석이 출현하는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이종세는 만화방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 그때 문도석이 절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이종세의 옆에 앉아 말을 시킨다. 아이 같거나 혹은 어수룩하거나 하는 인물의 성격이 그 쪽쪽 빨아대는 입 모양만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린 그때 알게 된다. 만약 무언가 먹지 않으면 무언가라도 입에 물고 씰룩거려야 한다는 사실은 문도석이 등장하는 세 번째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종세 앞에서 오디션을 보듯이 샹하이 박의 흉내를 내는데, 이걸로는 무언가 모자라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를 얼른 주워 입가에 물고는 연기를 이어간다. 그때서야 그는 만족스럽다. 은행을 털기 위해 사전조사를 나간 자리에서 짝짝 껌을 씹어대는 그 입은 그의 천진난만할 정도의 우둔함을 표현하고, 의심스러운 문도석을 뒤따라 온 은행의 청원경찰 앞에서도 여전히 우둔하자 이종세는 문도석의 입에 만두를 쑤셔 넣는다.
화장실에서 통닭을 발라 먹고 해변에서 오선영에게 프러포즈하는 이종세에게 “감독님 인절미 좀 드세요”라고 엉뚱하게 말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도 될 것이다. 배창호가 연기하는 문도석의 먹는 행렬은 배창호의 그 연기에 힘입으며 점점 이 영화의 중요한 정점으로 우릴 이끌어 간다. 이 영화에는 유일한 사망자가 있다.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 일행의 차가 고장 났을 때 그 차를 고치러 왔다가 문도석에게 총을 맞게 되는 자전거 수리공이다. 그 때문에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도 꿈속에서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 수리공을 문도석 혼자 방문했을 때 그의 대사는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수리공은 라면을 먹고 있다. “야, 그 라면 참 맛있겠습니다. 계란을 안 넣어 드시는 걸 보니까 라면 맛을 아시는 분이구만. 괜히 맛 낸다고 계란이니 파니 집어넣으면 라면 맛만 버려요. 그저 라면은 민짜가 좋지요”문도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는 반찬 하나를 냉큼 주워 먹는다. 계란,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은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개그맨>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기차역 대합실 장면이다. 모든 것이 파국에 이르렀다. 문도석은 사람을 죽였다. 일행은 부산으로 도주하기 직전이고 여기는 새벽의 역 대합실이다. 그때 문도석은 흰 달걀을 먹고 있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를 머리에 깨서 먹고, 그리고 또 하나를 먹고. 오선영의 대사에 따르면 벌써 스무 개도 더 먹었다. 그러니 이때 달걀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파국의 운명이며 무너져 버린 꿈이며 다가올 불행이다. 옆에 앉은 오선영이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도 말을 못 알아듣고 문도석은 흰 달걀을 건네준다. 배우가 되겠다는 문도석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괴리를 바탕으로 한 우화의 가장 정점에 바로 이 흰 달걀이 있으며 그 흰 달걀을 무아지경으로 먹는 문도석이 있고 그 문도석을 연기하는 신들린 배창호가 있다. <개그맨>이 뛰어나다면 바로 이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았을 때도 내게는 배창호와 그의 입과 그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흰 달걀만 보였고 기억됐다. <개그맨>은 놀랍게도 문도석의 영화이며 배창호의 영화다. 이 장면으로써 이 영화는 내게 걸작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그맨>은 한국영화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다. 이 영화는 이명세의 연출 입문작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외양을 지닌 나이트클럽 삼류 개그맨 이종세(안성기)가 허름한 이발소의 무식하지만 착한 뚱보 문도석(배창호)과 야심에 가득 찬 미인 오선영(황신혜)과 함께 무장 강도짓을 하다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하는 이종세가 이발소 의자에 앉아 꾸는 한낱 백일몽으로 밝혀진다. <개그맨>은 발상의 참신함과 인물들의 독창성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의 출현이라 인정받았고 지금도 그 빛은 바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그맨>의 이 정통적인 혹은 통사적인 평가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개그맨>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면모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배우로서의 배창호와 그의 연기가 이 영화에서 유달리 빛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연기 중에서도 특별한 연기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우물거리는 입으로 먹어대는 그 연기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이발사 문도석은 이종세의 꿈에서 함께 강도짓을 해나간다. 그는 그게 배우의 길이라고 착각한다. 당시 가장 뜨거운 인기 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연기력은 함께 등장한 전문 배우들 안성기나 황신혜를 압도하고 있다. 문도석을 연기하는 배창호는 그가 등장하는 거의 매 장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행위는 무언가 먹는 것에 대해 거론하거나, 먹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자. 영화배우 지망생으로서 영화도 꽤나 많이 보아 왔다고 자부하는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영화를 보아왔다고 자부하는 문도석이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는 것은 리차드 플레이셔의 영화 <바이킹>(1958)에서 커크 더글라스가 잔치를 벌이며 통닭을 씹어 먹는 장면이다. 이내 문도석은 말한다. 역시 보신탕은 똥개가 최고라고. 이건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문도석의 거의 모든 연기는 먹는 것으로 통하고 이 영화의 정점도 먹는 것으로 통한다.
예컨대 문도석이 출현하는 두 번째 장면을 보자. 이종세는 만화방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 그때 문도석이 절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이종세의 옆에 앉아 말을 시킨다. 아이 같거나 혹은 어수룩하거나 하는 인물의 성격이 그 쪽쪽 빨아대는 입 모양만으로도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린 그때 알게 된다. 만약 무언가 먹지 않으면 무언가라도 입에 물고 씰룩거려야 한다는 사실은 문도석이 등장하는 세 번째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이종세 앞에서 오디션을 보듯이 샹하이 박의 흉내를 내는데, 이걸로는 무언가 모자라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를 얼른 주워 입가에 물고는 연기를 이어간다. 그때서야 그는 만족스럽다. 은행을 털기 위해 사전조사를 나간 자리에서 짝짝 껌을 씹어대는 그 입은 그의 천진난만할 정도의 우둔함을 표현하고, 의심스러운 문도석을 뒤따라 온 은행의 청원경찰 앞에서도 여전히 우둔하자 이종세는 문도석의 입에 만두를 쑤셔 넣는다.
화장실에서 통닭을 발라 먹고 해변에서 오선영에게 프러포즈하는 이종세에게 “감독님 인절미 좀 드세요”라고 엉뚱하게 말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도 될 것이다. 배창호가 연기하는 문도석의 먹는 행렬은 배창호의 그 연기에 힘입으며 점점 이 영화의 중요한 정점으로 우릴 이끌어 간다. 이 영화에는 유일한 사망자가 있다.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 일행의 차가 고장 났을 때 그 차를 고치러 왔다가 문도석에게 총을 맞게 되는 자전거 수리공이다. 그 때문에 이종세, 문도석, 오선영도 꿈속에서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 수리공을 문도석 혼자 방문했을 때 그의 대사는 여지없이 다음과 같다. 수리공은 라면을 먹고 있다. “야, 그 라면 참 맛있겠습니다. 계란을 안 넣어 드시는 걸 보니까 라면 맛을 아시는 분이구만. 괜히 맛 낸다고 계란이니 파니 집어넣으면 라면 맛만 버려요. 그저 라면은 민짜가 좋지요”문도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는 반찬 하나를 냉큼 주워 먹는다. 계란, 그러니까 어쩌면 그것은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개그맨>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후반부 기차역 대합실 장면이다. 모든 것이 파국에 이르렀다. 문도석은 사람을 죽였다. 일행은 부산으로 도주하기 직전이고 여기는 새벽의 역 대합실이다. 그때 문도석은 흰 달걀을 먹고 있다. 하나를 먹고, 또 하나를 머리에 깨서 먹고, 그리고 또 하나를 먹고. 오선영의 대사에 따르면 벌써 스무 개도 더 먹었다. 그러니 이때 달걀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파국의 운명이며 무너져 버린 꿈이며 다가올 불행이다. 옆에 앉은 오선영이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해도 말을 못 알아듣고 문도석은 흰 달걀을 건네준다. 배우가 되겠다는 문도석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그 괴리를 바탕으로 한 우화의 가장 정점에 바로 이 흰 달걀이 있으며 그 흰 달걀을 무아지경으로 먹는 문도석이 있고 그 문도석을 연기하는 신들린 배창호가 있다. <개그맨>이 뛰어나다면 바로 이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았을 때도 내게는 배창호와 그의 입과 그의 입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흰 달걀만 보였고 기억됐다. <개그맨>은 놀랍게도 문도석의 영화이며 배창호의 영화다. 이 장면으로써 이 영화는 내게 걸작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