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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순교자

유현목, 1965

[한국영화걸작선]순교자 대표 이미지

<순교자>(1965)는 김은국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미국에 수출한 첫 번째 한국영화이다. 영화를 연출한 유현목 감독은 한국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제를 잃고 나머지 가족들과 남쪽으로 내려와 실향민으로 살아야 했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독교신자’가 되었고 자신의 신앙을 의심한 적이 없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실존주의가 크게 자리하게 된다. ‘인간들의 절망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건너간 김은국의 「순교자」(1964)는 이 절박한 질문의 답변 같은 소설이었다. 

1950년 10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은 평양에서 후퇴하기 직전에 목사 14명을 처형한다. 그런데 한국군에서 진상을 알아보니 한 목사와 신 목사가 살아있다. 포로로 잡힌 인민군의 증언에 따르면, 12명의 목사 대부분은 믿음을 부정하고 살려달라고 짐승처럼 애걸했다. 한 목사는 여기에 충격을 받아 실성을 했지만, 신 목사는 당당하게 맞섰다. 그래서 두 명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군이 12명의 목사를 순교자로 만들어 인민군의 만행을 부각시키려고 할 때, 현장에 있었던 신 목사의 증언이 절실해진다.

신 목사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이 대위에게 “일생동안 하나님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없다. 천당도 지옥도 없다. 전쟁의 비극과 학살에 희생당하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믿는 진실이 절망에 빠진 인간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인다.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에게는 진실보다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 ‘환상’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 목사는 12명의 목사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 속에서 순교했다고 증언하고 유다 같은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그는 진실 대신 거짓을 말함으로써, 기꺼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진짜 순교자’가 된다. 여기서 신 목사는 최후의 만찬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남아서 믿음을 전파할 의무를 떠안은 사도 바울에 가깝게 보인다.

 <순교자>는 한국전쟁을 매개로 해서 기독교의 믿음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유현목은 이 영화가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 사제의 일기>와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김은국은 기독교를 소재로 해서, 인간이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어떻게 절망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전쟁을 겪어야 했던 한국사의 비극에 방점을 두고, 극한의 고통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순((殉)’하는 인물 군상을 제시하려 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하려 했다. 유현목은 실존주의 문학에 속하는 원작에 이끌리면서도 기독교 신자로서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기독교의 신앙과 실존주의 사이의 불화를 미묘하게 봉합하는 각색을 했다. ‘인간의 구원’을 강조하고, ‘신을 위해서든 인간을 위해서든, 참된 믿음과 봉사를 선택한 사람이 곧 순교자’라는 점을 더 부각시켰다. 신 목사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의사의 경우처럼.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과 관람거부운동이 벌어졌다. 유현목은 방송에 출연해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꽃이나 나비를 보아도 거기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했다. 영화 내내 황폐한 화면 밖에서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와 끊임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유현목이 믿는 하나님, 존재하지만 숨어 있는 신의 현현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또 다른 제약은 반공영화가 아니면 한국전쟁을 다룰 수 없었던 시대의 억압이었다. 따라서 원작과 달리 영화는 ‘피에 굶주린 공산주의자들이 동족상쟁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는 이 대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대위가 ‘죽을 때까지 조국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제 한국전쟁은 오래 전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인간의 실존을 견디기 위해서는 비록 거짓이라 해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환상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원작과 영화가 여전히 의미심장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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