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은 영화가 겪어야 했던 검열과 수난의 역사가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다. 각본 단계에서부터 극장에 걸리기까지 5차례에 걸친 사전검열에 의해 이야기가 마구잡이로 난도질 되었으며, 다섯 곳 장면 삭제, 네 곳 장면 길이 단축, 세 개 대사 삭제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바보들의 행진>의 현재 남아있는 네거티브 필름의 분량은 102분. 검열을 받기 위해 제출할 당시의 공식적인 러닝타임 117분에서 무려 15분이 잘려나간 것이다. 이에 감독은 심의를 통과한 직후, 삭제된 필름을 다시 붙여 원래의 판본을 국도극장에 걸었지만 이 또한 감시를 피하지 못하고 걸려들었다.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송창식의 ‘왜 불러’와 영철의 테마곡인 ‘고래사냥’은 공연예술윤리위원회에 의해 금지곡 판정을 받고 음원 판매도 금지당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서울 관객만 잡아 15만에 달하는, 당시 기준에서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두었고, (감독 본인은 자신의 대표작으로 <수절>(1973)을 꼽았지만) 하길종의 대표작으로 한국 영화사에 남게 되었다. 각본과 기록을 통해 더듬어 원형을 유추해볼 따름이지만, 남아있는 판본만으로도 <바보들의 행진>은 걸작이다. 정부의 탄압과 대중의 호응, 저주와 찬사를 오가는 이 양가적인 반응은 이 작품이 청춘드라마의 표면을 넘어 시대의 정곡을 관통하는 비판의식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입증한다. 지식인 감독 하길종의 예민한 감수성은 그렇게 당대의 시대정신(Zeitgeist)을 영화에 투영하며 활로를 찾지 못한 청춘들의 답답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70년대의 한국
일차적으로 <바보들의 행진>은 그 당시의 풍속을 조명하는 미시사적 자료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밤 12시가 넘으면 통행금지에 걸려 돌아다니지 못하고, 경찰만으로는 부족한 치안력을 보조하던 방범대원들이 통금 위반자를 적발해 파출소에 넘기는가 하면, 막 성년이 된 20세에 바로 군대로 징병 되기 위해 징병검사관의 눈앞에 거의 발가벗겨진 채 서야 했고, 미풍양속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경찰이 자를 들고 일정길이 이상의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다. 헤어스타일도, 옷차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행동, 거취의 자유도 제약되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침해가 일상적으로 치러지고 그걸 묵묵히 감수해내야 했던 억압의 시대. 이 작품에서 하길종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보’란 무기력하게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스스로 ‘바보-되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청춘의 모습을 잘 함축하는 표현인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는 1970년대라는 시대의 생경함. <바보들의 행진>은 병태, 영철, 영자 등 대학생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당시 청춘들이 처해야 했던 시대의 풍경을 조명한다.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생맥주와 통기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춘 문화의 기풍이 그나마 숨 쉴 틈을 열어주었고,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던 여성의 흡연이 자유와 반항, 파격을 추구하던 신여성의 아비투스(habitus)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군사적 근대화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사회의 기저에서는 은연중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야구경기 응원 간다고 학생들이 단체로 강의실을 나가는 장면은, 본래 데모에 참가하기 위해 수업을 빠져나가는 장면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신체 길들이기 - 파시즘적 상황과 산업전사의 탄생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작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적 인간의 탄생에 대한 계몽주의적 환상을 깨부순다.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합리적 이성, 주체적 개인을 키워내는 관념적 계몽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이란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신체를 길들이고 시스템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형을 찍어내고자 한 유물론적 과정의 산물이 근대적 인간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신체의 기계화, 규율과 감시의 시선, 그리고 처벌을 통해 일정한 패턴의 행동양식을 강제하고 몸에 각인시킴으로써 국가 권력의 필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표준적 신체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 산업혁명 이래 20세기 서구의 근대화 과정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 원리는 개발도상국에선 군사주의-전체주의적인 성격을 동반하면서 더욱 강압적인 형태로 발현되었다.
<바보들의 행진>은 징병 신체검사를 받는 대학생들의 행렬을 비추는 걸로 막을 연다. 징병검사관 앞에 발가벗겨지고 일사불란하게 구보하는 학생들의 모습. 체제에 적응하기 적합한 신체‘인가-아닌가’(합격/불합격)의 여부를 선별하는 일종의 입사식.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전통 없이 근대화를 경험한 국가의 군국주의적 사회상이 단적으로 드러낸다. 1930년대 독일과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에게 군대식 훈육을 강요하고 획일적으로 주입한 파시즘의 역사적 경험은 1970년대 한국에 고스란히 계승된 것이다. 군대가 아닌 민간에서도 ‘감시와 처벌’의 시선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개인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협하는 경찰, 캠퍼스 안에서 담배를 태운다며 학생의 뺨을 때리는 교수 등. 시위가 없더라도 경찰과 공안조직의 존재가 촘촘히 짜인 그물처럼 곳곳에 퍼져 개인의 신체를 ‘관리’하고 있고, 그런 갖가지 교정을 거쳐 ‘철이 든’ 한국인은 ‘군국주의-자본주의’ 시스템의 요구에 맞춰 군대(‘반공투사’)와 산업현장(‘산업전사’)을 떠받치는 부속이 되었다.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기계적인 신체의 생산. 이러한 군사적 훈육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 반사회분자로 몰려 탄압과 재사회화의 대상이 되었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징병검사에 불합격하고 철학과 출신으로 장래가 불투명했던 몽상가 영철의 자살은 한국적 근대화가 지닌 획일적 성격, 미세한 탈주와 일탈의 여지조차 빈틈없이 봉쇄하고 포획하려는 권력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 중 영자가 빗대듯 ‘동물원 우리의 사슴’과 같았던 70년대의 청춘들. <바보들의 행진>은 통제의 손길이 잦았던 시대를 산 억눌린 청춘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군관민일체(軍官民一體)’라는 표현처럼) 국가와 민간이 하나 되어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신체에서부터 파괴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 신체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군국주의의 맥락에서 산업화를 달성하려 했던 한국적 근대화의 특질을 고발하는 메타 텍스트가 된다.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미국 UCLA에 입학해 영화를 전공한 유학파 출신이었다. 재학 시절 만든 단편 <병사의 제전>(1969)으로 MGM이 미국 전체 영화학과 학생 4명에게만 주는 메이어그랜드상을 받았으며, UCLA 강사 자리가 보장된 상황이었음에도 귀국(이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의 귀국을 만류했다는 설이 있다)하여 38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7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가적 행보는 매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검열로 훼손되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수절>의 경우 20분이나 잘려나갔고 <바보들의 행진>의 삭제장면들은 반체제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유로 당국에 필름을 압수당한 뒤 불태워져 복구가 불가능하다. 인간성을 검열하는 체제를 비판한 영화 또한 검열의 손길에 짓밟히는, 이 지독한 비극적 아이러니. 권력은 자의적인 잣대로 영화를 검열하고 훼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로 시간을 봉인한 채 살아남아 역사를 증언하는 것으로 당대에 복수한다. <바보들의 행진>은 지금도 여전히, 10월 유신체제 시절 한국의 사회상에 대한 생생한 영화적 증언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