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Before&After
강민지, 2016
두 장의 사진이 있다. ‘Before’ 그리고 ‘After’. 지하철역이나 시내버스 안에서 가장 많이 보는 광고 유형이다. 서울 시내 몇몇 지역에서는 눈길 닿는 어디라도 걸려있다. 성형 시술 이전과 이후의 사진을 비교함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단지 결단의 문제일 뿐이다. 며칠간의 통증은 그간 받아온 심적 고통에 비할 바 아니며, 부담되는 금액도 일종의 투자 비용으로 여기면 받아들일 만하다. 성형외과 광고에 등장하는 ‘Before’와 ‘After’ 두 사진 속의 얼굴은 동일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달라야 한다. 같으면서도 달라야 하는 것, 그것이 성형 수술이 추구하는 미의 방향이다. 그런데 광고 속 사진으로 제시된 ‘Before’와 ‘After’ 사이에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변신의 과정이 빠져 있다.
강민지의 <Before&After>는 성형수술에 대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핵심은 성형수술에 대한 풍자나 비판, 야유가 아니다. 물론 그 지점을 다루는 기본 이야기는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강민지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에 얽매는 작업을 해오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재료가 지니는 특성을 고스란히 이미지로 가져오고 여기에 수작업을 가미하여 움직임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선보였다. 그래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즉흥적이기에 자유로운 생기가 넘쳐난다. 종이, 사진, 나뭇잎 등등, 작품에 쓰인 원재료가 지닌 물질성을 억지로 가공하는 대신, 거기에 봉인된 본래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도록 유도해내는 작업을 해왔다. 만약 스토리가 있다면 그 생기로운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입사 이력서에 사진을 붙여야 할 때, 주인공은 사진 속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채용 담당자의 시선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된 현실을 이미 주인공도 공유하고 있다. 취직을 위해서는 채용 기준이라는 잣대에 자신의 외모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늘 성형수술은 권력의 사회학이다. 그리고 성형수술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든 라이브 액션이든 소설이든 만화든 간에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공격하고 파국을 맞는다(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 있던가?).
강민지의 <Before&After>에도 성형수술에 대한 판단과 이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힘은 그것을 어떻게 애니메이션만의 방법으로 보여주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 애니메이션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간다. 바로 ‘애니메이터의 손’과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집중한다.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애니메이터의 손은 조물주의 손과 동급이었다. 그 손을 통해 캐릭터가 탄생하고, 움직임이 부여되었다. <Before&After>에서 애니메이터의 손은 수술장갑을 낀 성형외과 의사의 손으로 연결된다. 그 손에는 연필, 지우개, 그리고 칼이 쥐어진다. 그리고 조물주의 또 다른 역할이었던, 피조물의 처단까지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성형수술이 시도되는 장면이 다른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애니메이터의 작업 모습과 겹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내 그 손은 작품을 종결짓기에 이른다.
<Before&After>는 ‘애니메이터의 손’을 상기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를 위해 ‘Before’와 ‘After’ 사이에 ‘Between’이라는 구역을 설정한다. 바로 성형외과 광고에서는 생략된 ‘과정으로서의 사이’를 다루는 구역을 할당한 것이다. 그런데 ‘Between’은 그저 단순한 성형시술 과정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핵심은 제작 기법에 있다. 바로 각각의 프레임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낱장의 분리된 작화지 묶음에 한 장 한 장 따로 그리지 않고, 하나의 작화지 표면 위에 한 장면을 그린 후, 그다음 프레임 이미지를 위해서 이전의 이미지를 지우개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려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풀이하자면, 하나의 작화지 표면은 이전까지의 이미지와 이후의 이미지, 즉 특정 프레임 전체의 이미지들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누적되어가는 지층과도 같다. 이런 제작 과정을 거치면 작화의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작화지 묶음이 아니라 최종 프레임에 해당하는 이미지 하나이다. 그리고 그 최종 이미지에는 그 앞을 거쳐 간 이미지들의 흔적이 지우개 가루와 함께 어렴풋이 남겨져 있다.
<Before&After>의 제작 방식은 윌리엄 켄트리지의 목탄 드로잉 작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캐롤라인 리프의 샌드 애니메이션과 페인트 온 글래스 기법, 그리고 알렉산더 알렉셰이예프의 핀스크린 기법과도 물리적 기반을 함께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화 이미지가 스크린에 투사되는 원리와도 조응한다. 스크린은 온전히 하나의 유일한 표면이고, 영사의 시간 동안 무수한 프레임 이미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처럼 <Before&After>는 성형수술을 모티브로 삼되, 그것을 이야기의 소재나 결론, 혹은 교훈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예술 창작물은 차고 넘친다), 그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란 수술을 통해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 즉 ‘수술 전’과 ‘수술 후’ 사진이 생략한 과정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개입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드러낸다. 그 구체적인 행위의 주체는 의사이고, 애니메이터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둘의 행위는 미적이면서도 파괴적이다.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 형식이 작동하는 본질이기도 하다. 강민지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그 본질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엄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