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
게리 골드만,댄 쿠엔스터,돈 블루스, 1989
어렸을 적, 어린이의 눈으로 막연하게나마 동양의 애니메이션과 서양의 애니메이션을 구별했던 처음 기준은 주역 캐릭터와 그림체였다. 날카로운 직선으로 그린 짙은 눈썹의 소년과 로봇들이 나오면 동양 것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린 의인화한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쪽은 서양 것으로 보였다. 흔히 동양을 곡선으로, 서양을 직선으로 보는 개념이 당시 내가 접하던 만화영화의 경우에는 정반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어린이 명작 동화’스러운 그림체는 국적을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1974), <플란다스의 개>(1975), <엄마 찾아 삼만리>(1976), <빨강머리 앤>(1979) 등의 ‘세계명작극장’ 시리즈나 <미래소년 코난>(1978)은 어느 나라 애니메이션인지 그림체만 봐서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과 함께 그 만화들이 정확히 일본 애니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미국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아닐 거란 나름의 확신이 있었는데, 그 기준은 바로 움직임이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 애니의 움직임은 일본 것에 비해 언제나 훨씬 더 ‘넘실거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동사 ‘넘실거리다’, ‘넘실대다’에는 ‘자꾸 부드럽고 가볍게 움직이다’의 뜻이 있다. 이 부드럽고 가벼운 움직임에 프레임 개수의 많고 적음이 있다는 것과, 애니메이션 기법에서 ‘풀’과 ‘리미티드’의 차이도 훗날에 알게 되었다. 아무튼 당시에는 만화 캐릭터가 뭔가 계속 움직이는, 그림이 넘실대는 쪽이 미국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이 움직임이 만화영화의 개인적인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넘실거리는 미국 애니가 싫었다.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러운 움직임이 처음 맛보았던 양식마냥 느끼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기품을 지닌 디즈니 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나는 ‘디즈니 만화 극장’보다는 <톰과 제리>나 <루니 툰>의 신랄하고 과장된 폭력을 훨씬 선호했다. 양식으로 치면 이쪽은 타바스코소스를 왕창 뿌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취향에 맞았다.
내게 디즈니보다 더 디즈니 적인, 대표적인 미국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되는 것은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돈 블루스(Don Bluth) 감독의 작품들이다. 부드럽고 가벼운 움직임의 미학에 있어, 그는 내게 넘실거림의 끝판왕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 앞에서 이런 표현은 무례할지도 모르겠다.
짝퉁 디즈니로 의심하거나 구태여 폄하할 필요 없이(그의 작품은 디즈니 것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그는 커리어를 디즈니에서 시작했다), 돈 블루스는 디즈니 밖에서도 디즈니 급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작가다. 그는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애니메이션으로의 사업 확장을 꾀할 때 프로젝트(<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1986)과 <공룡시대 The Land Before Time>(1988)의 중심이자 시작과 끝이었고,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던 작품 <용의 굴 Dragon’s Lair>(1983)을 통해 인터렉티브 무비의 기틀을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과 괴승 라스푸틴을 다룬 역사물 <아나스타샤>(1997)와 지구가 문자 그대로 소멸한 미래의 우주 개척을 다룬 SF <타이탄 A.E.>(2000) 같이 돈 블루스는 당시만 해도 디즈니가 쉽게 추진하지 못할 소재들을 가지고서 블록버스터급 장편 만화영화를 만들어왔다. 오랫동안 디즈니가 장악해온 미국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돈 블루스의 존재는 다른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앞세울 수 있는 일종의 대항마였다.
그러나 제작비 7천 5백만 불을 들여 만든 <타이탄 A.E.>의 흥행 실패로 20세기 폭스는 한동안 애니메이션 사업을 접어야 했고, 이후 오늘날까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한 돈 블루스는 잊힌 전설의 이름으로만 남는 듯했다. 하지만 <용의 굴> 프랜차이즈를 수십 년 만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작년에 크라우드 펀딩이 목표 금액의 두 배 이상 성공적으로 모금되었다. 오랜 동업자이자 주요 작품의 공동 감독이었던 게리 골드만과 함께 펀딩을 위한 홍보 동영상에 등장한 돈 블루스는 “우리가 예전에 뭘 만들었지? 아 그래 그 작품도 있었어!” 하는 식으로 만담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미국 애니메이션의 두 거장은 이제 호호할아버지가 되어 있었지만, 어쨌거나 반가운 모습이었다.
돈 블루스의 작품 중 내가 특별하게 기억하는 건 국내에 ‘찰리의 천국 여행’이란 제목의 비디오로 나왔던 <모든 개들은 천국에 간다>이다. <공룡시대>의 성공 후 돈 블루스는 스필버그와 계속 함께 작업하는 대신 다시 독자적인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물이 바로 이 작품이다.
건달 ‘찰리’는 충직한 부하 ‘이치’의 도움으로 교도소에서 탈출한다. 뒷골목 세계로 돌아온 찰리를 동업자였던 ‘카페이스’가 반기는 척 하지만, 그는 공동으로 소유한 카지노의 이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심복 ‘킬러’와 함께 찰리를 차에 치여 죽인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의외의 방향으로 향하는데, 죽은 찰리는 천국에 도착한다. (응?) 천국에서 자기 생명의 시간이 담긴 시계를 훔친 찰리는 다시 죽는다면 절대로 천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멈춘 시계의 태엽을 다시 감아 지상으로 되돌아온다. (으응?) 카페이스에게 복수하고 카지노를 되찾으리라 다짐하는 찰리는 카페이스가 감금하고 있는 고아 소녀 ‘앤-마리’를 구해낸다. 앤-마리가 가진 특수한 능력(어어?!)을 알게 된 찰리는 부모를 찾아주겠다며 거짓으로 약속하고,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벌어 더 큰 카지노를 건설한다. 소녀는 찰리에게도 크게 실망하게 된다.
스토리를 이렇게 써놓고 보면 필름 누아르 배경에 판타지 요소와 어린이를 이용하는 신파를 뒤섞은 신종 조폭물로 보이는데, 건달 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갔던 이유는 간단하다. 찰리는 독일산 셰퍼드에 부분적으로 콜리와 리트리버 등등이 섞인 잡종… 그러니까 ‘개’이고, 당연히 모든 개들은 천국에 가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 역시 의인화된 동물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세계다. 갱스터 견공들이 인간의 돈을 쓰고 도박을 하고 총을 쏘아댄다. 완전히 인간을 대체한 건 아니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기들끼리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다. 앤-마리의 특수한 능력은 바로 사람이면서 이러한 동물들과 말이 통하는 것. 우습게도 이 세계관에서 개 찰리는 하수도에 사는 드랙퀸 악어와는 말을 하지만, 스포츠 도박의 대상인 쥐, 말(馬), 개구리, 거북이 등과는 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등 제멋대로인데, 앤-마리는 이 모든 종(種)과 대화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의 작가 로버트 타운이 플롯을 다듬어줬다는 일화가 있는데다, 버트 레이놀즈가 찰리의 목소리를 맡아서 뮤지컬 노래까지 부르는 이 애니메이션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모여 익숙한 세계를 구성하는 이 작품은 만화에선 모든 것이 가능함을 증명하는, ‘하이브리드’ 그 자체인 애니메이션이다.
그렇지만 작품의 결말은 기존 돈 블루스 스타일의,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영화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다. 고아는 다시는 그녀를 버리지 않을 새로운 부모를 찾고, 고결한 희생을 한 주인공은 다시 천국으로 갈 기회를 얻는다. 앤-마리의 목소리를 담당한 아역배우 주디스 바시의 비극적인 삶(그녀의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10세 나이에 사망했다)까지 알고 나면, 그녀에게 헌정한 곡 ‘Love Survives’가 흐르는 엔드 크레디트의 여운은 더욱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미국식 가족영화 따위 폄하하고 싶다가도, 그것이 현실에 불가능한 까닭에 돈 블루스의 애니메이션에서 그 가치를 끝까지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국 ‘비’현실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초’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그 얼마나 넘실거리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