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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스트레인저: 무황인담

안도 마사히로, 2008

[초이스]스트레인저: 무황인담 대표 이미지

올해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 일본 개봉 10주년을 맞이했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이 국내 정식 개봉한 것은 2년 후인 2009년 이야기지만, 적어도 회고하기엔 적절한 핑곗거리긴 하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감흥은 아직도 선명하다.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박력과, 거기에 대비되는 서늘한 우수, 일말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활극 애니메이션이라고 할까. 엔터테인먼트 작품으로써도, 하나의 영상 작품으로써도 훌륭한 이 애니메이션은 200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을 수작이라 생각하며, 이런 애니메이션을 툭 하고 데뷔작으로 내놓은 안도 마사히로 감독은 분명 좀 더 주목받아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을 이루고 있는 재료는 뻔하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고독한 무사 나나시가 어린 아이 코타로의 의뢰를 받아 그를 호위하고, 코타로를 쫓는 색목인 무사 라로우와 숙명적인 대결을 벌인다. 아마 당신이 이 얼개를 들고 제작사나 편집자를 찾아간다면 “잘 먹히는 소재긴 한데 뻔하지 않냐”라고 들을 것이다. 1960-70년대 일본 어딘가 동시 상영관에 걸렸다가 사라졌을 법한 찬바라 영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할까. 아마 이 기획을 주도한 미나미 마사히코나 각본을 쓴 타카야마 후미히코 (<기동전사 건담 0078> <라제폰> <푸른 꽃>), 감독 안도 마사히로도 그런 점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장르 영화/애니메이션들이 그렇듯이,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그런 뻔함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그 뻔함을 뛰어넘는 힘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액션 퀄리티의 훌륭함을 언급할 것이다. 실제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에 드러나는 육체를 베어내고 해체하는 액션에는 강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에는 나카무라 유타카라는 일급 애니메이터가 참여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원펀맨> <카우보이 비밥> <천공의 에스카플로네>가 있으며 현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본 애니메이터라 할 수 있다. 그가 맡은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한마디로 굉장하다. 여기서 나나시와 라로우가 벌이는 검술 액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 예술이며, 카와지리 요시아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뤄낸 도검 액션 연출의 새로운 경지다. 비단 마지막 액션 시퀀스 뿐만이 아니라, 안도 마사히로와 나카무라 유타카, 그리고 애니메이터들은 가상의 카메라를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철과 살이 서로 맞닿는 극적인 순간에 인물들의 움직임과 환경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뻔한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정서’를 잡아내며 액션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독히도 클리셰적인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왕이 없던 시절''의 비정함과 그럼에도 온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석적이지만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관계는 나나시와 코타로처럼 계약 관계에서 시작했다가 순수한 우정으로 발전하기도 하며 나나시와 라로우처럼 강렬한 애증으로 뒤얽힌 라이벌 관계로 그려지기도 한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의 각본과 연출은 한 인물이 그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그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가지는 감정이 어떤건지, 그리고 이런 관계와 감정이 액션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타카야마와 안도는 농담삼아 이 애니를 남자들 간의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정확한 기술이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원형적인 관계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이 액션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애니다. 상술한 나나시와 라로우의 행위 예술적인 액션조차 뛰어난 감정 묘사가 없었다면 그저 작화 견본 쇼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인물을 감싸고 있는 색채와 공기가 가져다주는 분위기가 어떤 건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에는 쾌청한 날이 별로 등장하지 않으며 광량도 많지 않아 어딘가 텁텁하고 짓눌린 느낌을 준다. 이를 증명하듯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날씨는 더욱더 차가워지고 광량은 적어진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물들을 보여줄 때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어딘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마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며 강한 자와의 싸움만을 목적으로 삼는 라로우나 참혹한 과거에 괴로워하며 정을 숨기려는 나나시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쓸쓸한 색채와 공기는 상술했던 불같이 이뤄지는 액션과 만나 폭발한다.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이 그랬듯이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먹구름, 눈과 비가 가져다주는 엄혹한 이미지를 장르로 끌어와 이방인인 인물들이 서 있는 시대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그려내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점에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자극적이지만 총잡이나 칼잡이의 쓸쓸한 감정을 그려냈던 1970년대 서부극 영화나 찬바라 영화의 후예기도 하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이 이룬 성취를 일부러 과장할 생각은 타카야마와 안도의 대담에서도 그들은 자의식 없는 활극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 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캐릭터에게 무게를 부여하는 활극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은 그 쉽지 않은 일을 근사하게 해낸 활극 애니메이션이다. 그 점에서 타카야마 후미히코와 안도 마사히로는 그들이 좋아한다고 밝힌 돈 시겔 감독이 해냈던 성취를 애니메이션에서 이뤄내고 있다. 비록 그들의 현재 커리어는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에서 떨어져 있긴 하지만 (과도기적인 < CANNAN >을 거쳐 나온 안도 마사히로의 후속작인 <꽃이 피는 첫걸음>이나 <빨강머리 백설공주>는 화사한 색채와 밝은 감수성으로 소녀들에게 초점을 맞춘 애니메이션이었다.) 언젠가 그들이 <스트레인저 무황인담>이 이뤄냈던 그 순간을 다시 그려 내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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