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매니멀즈
오지현, 2016
지난 한 해는 페미니즘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내에서는 쌓여가던 문제의식과 감정들이 몇 가지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고, 페미니즘은 가장 뜨거운 화두로 등극했다. 자연히 페미니즘과 관련된 콘텐츠 역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런 2016년을 뒤로 하고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KIAFA)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에서 준비한 일련의 웹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었다. ‘창의 인재 동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현재 웹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동그리니>는 임신과 육아의 현실적 공포와 고단함, 쓸쓸함을 비롯한 복잡한 감정을 담담하게 묘사했고 <츄츄랜드>는 성 이분법을 깨트리는 특징적인 디자인이 돋보여, 앞서 말한 맥락 속에서 페미니즘적 독해가 가능해 보인다. 이는 <매니멀즈> 역시 마찬가지다.
<매니멀즈>는 한 여성의 과거 남자친구들을 동물에 비유해 묘사하는 코믹한 시리즈물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한 동물이 그려지며 1편 토끼를 시작으로 돼지, 기린, 나무늘보로 각각 이어져 마지막 화는 유니콘으로 마무리된다. 동물의 특성과 도처에 있을 법한 지질한 남자 군상이 배합된 연애의 풍경이 주요 포인트다.

토끼, 돼지, 기린, 나무늘보
경망스럽고 촐싹대는 토끼, 식탐 많은 비만의 돼지, 키가 크다는 장점 하나로 헛된 자기도취에 빠진 기린, 게으르고 뭐든 한 박자 늦는 나무늘보. 모두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연애대상으로서의 남자다. 대비적으로 유니콘은 어디에도 없다는 ‘정말 괜찮은 남자’다.
흰 원피스에 긴 머리와 무표정의 특색 없는 여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연애의 풍경을 구성하는 정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여성의 자의식은 뒤로 물러나 있다. 아마도 기억하는 주체인 여자를 평균점으로 삼아야 남자 측의 과잉이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여성은 부지불식간에 콘텐츠 속에서 대상화된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여자는 남자의 연애 대상이나 보상으로 그려지곤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도식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문화적으로 공기처럼 당연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대상화를 역으로 뒤집기 위해서는 단순 뒤집기 이상의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매니멀즈>에서 보여준 어떤 방법들은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그것을 일정 이상 수행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매니멀즈>는 남자를 관찰대상으로 삼기 위해 모두 동물로 탈바꿈해야 했다. 일단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된 이상 얼마든지 공격적으로 묘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뭐라고 하든 신랄하게 묘사하든 어쨌든 결국 토끼고, 돼지고, 기린이고, 나무늘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같은 발언도 톤만 부드럽게 하면 욕인 줄 못 알아듣더라는 이치다. 그런데 잠깐, 남자를 동물에 비유한 것이 ‘남자는 짐승이다’는 식의 암시일까? 그렇게 읽는다면 일차원적이고, 오히려 <매니멀즈>가 주는 여러 가지 재미를 놓쳐버린다.
서두에 <매니멀즈>를 비롯해 <동그리니>, <츄츄랜드>가 페미니즘적으로 독해가 가능하다고 쓰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감상의 한 갈래일 뿐, 이들 모두 맥락 없이 보더라도 유의미할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다. 남성 필자가 여성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무조건 ‘페미니즘으로의 독해’로만 치환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에, 마지막으로 직접 작품을 보고 즐기기를 권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겠다.
<매니멀즈> 온라인으로 보기 http://tv.naver.com/v/1401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