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부산독립영화의 네 가지 단상, 그리고 놀라운 주인공들
올해 이상하게도 영화제 예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무수한 영화들을 보면서 당연히 한국독립영화의 경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부산에서 제작되는 영화들과의 차이도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올해 11월이 되면 열아홉 번째를 맞는 ‘부산독립영화제(이하 부독제)’의 예심만 남아 있다. 부산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만으로 경쟁작을 선정할 만큼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해마다 공모작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제작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가 부산영화의 특질로 이어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기회가 된다면 차근차근 생각해볼 만하다는 사실만 밝힌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할지 모를 부독제 예심을 앞둔 지금 부산독립영화의 몇 가지 단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첫째. 영화를 만드는 인력의 층과 경로가 다양해졌다. 1980년대 중반 경성대학교 영화학과의 졸업 작품이 상영된 이후 각 대학에서 제작된 영화들과 시네마테크부산, 영화의전당 아카데미 워크숍을 통해 극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간혹 교육제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영화를 습득하고 직접 카메라를 든 경우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과 편수가 축적된 셈이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김수정, 2015)
둘째. 독립영화 배급의 주목할 만한 확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배급과 상영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공동체 상영이나 대안 공간에서의 상영을 시도했었지만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하지만 올해 봄 20대 청년들이 모여서 부산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영화배급협동조합 ‘시네소파’을 만들었다. 이들은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개봉시켰고 후속작으로 김수정 감독의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제에 소개됨으로 인해 미약하나마 상영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화가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확장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지금까지 어렴풋이 잡히는 부산영화 고유의 정서와 특징들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1999년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가 첫선을 보였을 때는 말 그대로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의지가 최우선이었다. 독립영화를 알리려는 열망과 이곳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모으고 기록한다는 뜻도 포함된 첫 영화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이름이 발견되거나 다채로운 생기를 품은 영화들과 만나게 되었다. 16mm 필름에서 출발한 부산독립영화는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는 동안 꽤 긴 명단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부산영화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흔히 부산영화의 특징을 말할 때 인물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감수성의 표현이나 삶의 여러 층위 중에서도 유독 부재와 상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자주 거론된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 특수성과 개인의 삶과 정서가 교차하거나 만나는 장소로 영도나 산복도로, 태극마을이 등장하는 영화도 심심찮게 만났다. 바다가 제공하는 풍광은 인물의 경험과 감정을 품거나 뱉어내기도 하고 유동적이고 임시적이었던 장소가 정박된 곳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삶의 맥락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철거되는 지역의 스산한 현장과 좁은 골목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빈곤과 부재, 떠남과 애도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네 번째 단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흐름에 대해서다.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가 뿜어내는, 거칠지만 순전한 기운과 새롭고도 낯선 감각들, 다른 태도로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을 그 앞에 세운 영화들이다. 김휘근 감독은 고등학생 때 만든 <이빨>(2013), 스무 살에 혼자의 힘으로 꾸려나가 완성시킨 <하얀색은 더럽다>(2014)에 이어 <뿔을 가진 소년>을 완성했다. <파수꾼>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시나리오와 연출, 촬영을 맡은 첫 단편에서부터 그는 직접적인 표현과 상징을 사용함에 주저함이 없다. 다양한 인물들이 특정한 사건에 연루되는 드라마를 위해 장르를 활용하거나 비관습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스타일도 포용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본능적인 감각,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일과 영화의 병행 안에서 쉽사리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수정 감독은 <이매진>(2011), <달을 쏘다>(2013)를 만든 후 부산에 돌아와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는 비슷하다’는 전제와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새롭다. 관객의 호감마저 배척한 인물들, 매정하면서도 차가운 현실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거리감, 관람하기 편하게 조율된 요소들에 저항하는 방식이 곧 영화가 된다. 현재 그는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제작하는 부산여성감독들의 단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올해 부독제에서 김수정 감독 특유의 신중하지만 단호한, 느린 호흡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부독제에서 만난 이상환은 가장 흥미로운 감독이다. 부산에 터를 잡은 후, 형과 가까운 친구들과 품앗이를 하듯 만들어낸 영화가 작년 한 해 동안 여섯 편에 이른다. <오두막>(2016)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청년의 고단하고 흉포한 삶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집요하게 쫓으면서 인물을 둘러싼 편견을 직시하도록 촉구한다. 너무나 직설적이기 때문에 인물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 이 영화의 힘은 그들의 필사적인 탐색과 속도전에 가까운 생산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세 감독의 영화에 담긴 부박한 삶은 때론 도전적인 테마,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편집, 공감하기 힘든 까다로운 캐릭터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관찰하고 모색하는 영화의 다양한 방법 즉 충동적인 감각과 낯설고 막다른 길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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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독립영화

